북한의 군 최고통수권자인 국방위원회 김정일 위원장이 잠행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 개혁개방의 발원지인 심천을 위시하여 광동성 일대를 시찰하고 귀국길에 북경에서 중국의 군 최고통수권자인 후진타오(胡錦濤)를 인민대회당에서 만났다. 양국의 군대 최고지도자들의 만남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김위원장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시작한 광동 지역을 방문한 것을 보면 북한도 올해부터는 상당규모의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하리라는 전망을 해 볼 수 있겠다. 중국은 북한이 생존 할 수 있는 전략으로 개혁개방을 주문하고 자금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과 중국 두 정상의 공통 된 점은 모두 군의 최고 통수권자란 점이다. 물론 이번 회담에서 대미 전략과 현안인 “6자회담”에 대한 전략적 대안에 대한 깊숙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리란 짐작을 해 볼 수 있다. 북한의 권력도 군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 중국 권력의 핵심 기반인 “중국중앙군사위원회”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에 대한 정확한 시각을 가지려면 중국 권력의 핵심을 이루는 중앙군사위원회를 이해 할 필요가 있다.

1982년 헌법에 의해 신설된 중앙군사위원회는 중국 무장력의 최고 영도기관으로 전국의 군을 지휘하며 “주석 책임제”를 실시하고 있다.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전인대(全人大) 에서 선출되며 전국인민대표대회 및 그 상무위원회에 책임을 진다. 부주석과 위원은 주석이 지명하며 전국인민대표대회 혹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된다. 주석을 비롯한 위원의 임기는 5년이며 연임 제한 규정은 없다.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정권기반은 군대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마오쩌둥(毛澤東)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라고 한 것만 보아도 중국에서 군부의 영향력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짐작할 만하다. 중국공산혁명 이후 마오(毛)는 죽을 때까지 명칭은 달랐지만 전군의 통수권을 가지는 군사위 주석을 내놓지 않았다. 등소평과 장쩌민 주석도 군사위원회 주석직 만은 국가주석과 당 총서기에서 물러난 후에도 일정기간 유지했을 만큼 권력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중국의 중앙군사위원회는 군의 통수권을 가지고 있다. 물론 군사위 주석은 군의 최고 통수권자가 된다. 현재 중국의 중앙군사위원회의 위원은 주석 1명과 부주석3명 그리고 위원7명으로 도합11명으로 구성되어있다. 후진타오 (胡錦濤)가 군사위 주석이긴 하지만 아직도 위원들의 대다수는 장쩌민 계보에 속한 사람들이다.

중국의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은 총서기 겸 국가주석인 후진타오(胡錦濤)이다. 그는 중국의 제4세대 지도부로 분류되는 군의 원로나 내부에 핵심인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의 지지 기반은 청화대와 공청단 출신과 전문엘리트 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선임 부주석으로 구어버쓩(郭伯雄)상장은 1942년 협서성에서 출생하여 육군 제19군 총참모장 출신으로 장쩌민에게 충성을 다하는 인사로 분류된다. 그리고 국방부장인 차오깡추안(曹剛川) 부주석은 1935년 하남성에서 출생하여 주로 군내의 장비분야에서 복무하였다. 그리고 전 총정치부 주임인 쉬차이허우(徐才厚)는 1943년 요녕성에서 출생하여 주로 동북지방에서 복무하다가 중앙군부의 정치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중국 군대는 4개의 총부(总参谋部、总政治部、总后勤部、总装备部)로 구성되는데 각부의 부장은 중앙군사위의 위원직도 맡고 있다. 위원으로는 리앙광리에(梁光烈) 총참모장, 리아오시롱(廖錫龍) 총후근부 부장, 이지나이(李繼耐) 총정치부 부장, 천빙더(陳炳德) 총장비부 부장이다. 총참모부는 전군을 지휘하는 기관으로 작전, 정보, 통신, 군사훈련, 동원, 기밀, 외사 등의 담당한다. 총정치부는 조직, 선전, 기율, 경비 등을 담당한다. 총후근부는 재무, 군수, 위생, 군사교통, 연료 및 물자, 공병업무 등을 담당한다. 총장비부는 전군의 장비에 대한 종합계획 및 장비보장 등을 담당한다. 그밖에 챠오칭천(喬淸晨)공군사령관,쟝딩파(張定發)해군사령관, 찡저위앤(靖志遠)2포병(유도미사일부대)사령관도 위원으로 있다.

중국의 군대를 이야기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분으로 조선족출신의 조남기 선생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일제시대 한국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시던 선친을 따라 13세 때 만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중국군인으로 일가를 이룬 분이다. 그는 1988년 중국군의 상장(별3개)으로 진급하여 총후근부 부장으로 1989년11월 중국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 그는 중앙정치협상회의(政協)의 부주석도 역임하였지만 연로한 중앙 영도들에게 주는 정협 부주석의 자리 보다 중앙군사위원을 역임했다는 사실이 더욱 높게 평가 받을 만하다. 소수민족인 조선족으로 중국 권력의 핵심에 까지 진출한 인물은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조 장군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중국 정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대립각을 세우고 갈등 할 때마다 평화 공존을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기업들 중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는 등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11월 필자는 북경에서 만나 뵈었는데 여전히 건강하고 쾌활한 모습으로 운동을 즐기면서 유유자적 노년을 즐기고 계셨다.

조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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