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순영위원
[인터뷰]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
25년 전 유신독재정권과 공장폐쇄에 항의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였던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8월 11일을 가슴 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YH무역회사의 노조지부장이었던 최 의원은 정확히 25년전 신민당사에서 경찰에게 끌려나오고 공장에서 쫓겨나면서 한 동지를 잃었다. 고 김경숙 열사.
최근 국가정체성 논란의 일환으로 박근혜 대표의 정수장학회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명되면서 남들보다도 속이 상한 이유는 그녀를 가슴에 묻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경숙 열사의 25주년 추모기를 맞아 최 의원의 유신독재와 박근혜 대표에 대한 성토를 들어봤다.<편집자주>
"박 대표는 홀로서기 해야 한다"
@P2R@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10일 <이지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얻고 정치를 한다며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최 의원은 "사실 박 대표도 개인적으로는 가족에 대한 어렴움도 있었고 많은 고통속에서 꿋꿋이 살아왔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렇게 꿋꿋이 살았으면 자신의 새로운 정치 철학을 가지고 올바르게 정치역사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새로운 정치 전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최 의원은 "그 아버지가 18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한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아버지의 후광을 얻고 있다는 것이 속상하다"며 박 대표에게 "냉정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홀로서기´를 하라고 당부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말이 나온김에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봤다. 최 의원이 ´공순이´였던 당시 상황을 되새기며, 6~7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의 주역은 저임금 여성노동자라는 것에 강조점을 뒀다.
"지금 경제가 여럽고 너무나도 빈부격차가 심하고 살기는 더 어려워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시절의 경제성장을 그러워하며 박근혜 대표를 보면서 아버지의 환상을 갖는 것에 문제제기 하고싶다"며 말을 꺼낸 최 의원은 한국의 경제성장은 "바닥에 토대도 없는 절름발이 경제성장"이었다고 꼬집었다.
최 의원은 "당시의 수출의존적 경제성장은 박정희가 아니었어도 세계 경제추세였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며 "새 민간정부가 들어서서 밑바닥부터 경제키우기를 했다면 오늘날의 IMF도 오지않았을 것이며 빈부격차도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수출위주의 경제성장의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내수안정을 이뤄내지 못하는 노무현 정부와 박근혜 대표에게도 쓴소리를 덧붙였다.
고 김경숙 열사, 민주노동당 명예당원 되다
몇일전 고 김경숙 열사에게 민주노동당에서 명예당원증을 수여한다는 것을 전해들은 최 의원의 감회는 남달랐다.
최 의원은 "79년 YH투쟁은 18년동안의 유신독재정권의 민중들에 대한 억압과 탄압에 대응한 최악의 투쟁이었고, 그런 투쟁들이 모아져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의 기반이 됐었다"며 "김경숙 열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11일 명예당원증 수여에 기쁜 마음을 전했다.
최 의원은 ´행복한 사람´이란다. 그는 "냄비 물이 끓다가 아무도 모르지만 순식간에, 눈깜빡할 사이에 물이 넘는 것"이 민중의 힘이라며 유신독재가 무너지고,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한 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최근 ´민주노동당도 국회 들어가니까 똑같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에 마음이 무겁다는 최 의원은 "유신이 무너질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결국 무너졌던 것처럼 열심히 하다보면 살아생전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는 것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B1@
다음은 최순영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에 대한 환상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는데 박 정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 경제가 여럽고 너무나도 빈부격차가 심하고 살기는 더 어려워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시절의 경제성장을 그러워하며 박근혜 대표를 보면서 아버지의 환상을 갖는 것에 문제제기 하고싶다.
당시 경제성장은 바닥에 토대도 없는 절름발이 경제성장이었다. 윗대가리만 커진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경제성장이었다.
당시의 수출 의존적 경제성장은 박정희가 아니었어도 세계경제추세였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특히 당시 새 민간정부가 들어서서 밑바닥부터 경제키우기를 했다면 오늘날의 IMF도 오지않았을 것이며 빈부격차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도 권력과 정권을 이어 잡는 것만을 생각하고 경제살리기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박정희의 경제성장 문제를 재평가해야 하는데 어떤 정권도 재평가하지 못했다. 수출위주의 경제성장의 문제점은 내수를 단단히해서 해결해야 하지만 정치권은 이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다.
지금의 박근혜도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서로 정체성을 놓고 정쟁만 한다. 집권정쟁이지 무슨 국민들을 위한 정쟁인지는 볼 수 없다. 민주노동당도 원내진출했지만 쪽수는 적고 "국회 들어가니까 같다"는 말을 들을 때는 가슴도 아프고 서럽다는 생각이 든다.
@M4@
민주노동당이 故 김경숙 열사에게 명예당원증을 수여하기로 했다. 어떤 의미인가.
▲김경숙 열사 추모기 25주년이고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맞는 추도식이다. 79년도 YH투쟁은 18년동안의 유신독재정권의 장기집권이 민중들에 대한 억압과 탄압을 낳던 시대의 마지막, 최악의 투쟁이었고 당시에는 죽음까지도 각오했었던 투쟁이었다. 그런 투쟁들이 모아져서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들어올 수 있었고, 원내진출의 기반이 됐었기 때문에 김경숙 열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김 열사에 대한 애뜻한 마음도 있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벌써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에 노동운동하면서 살아생전에 유신정권이 무너질가 맨날 생각하면서 한탄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죽으면 지만이가 있고...그런데 박근혜가 나타날 줄이야...) 우리의 투쟁이 기폭제가 돼서 유신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봤다. 물론 광주항쟁이 일어나면서 다시한번 아픔을 겪었지만...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들어와서 이렇게 활동할 줄 알았겠나. 민중의 힘이라는 것은 냄비 물이 끓다가 순식간에 아무도 모르지만 눈깜박할 새에 넘는다는 필연성을 느낀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 때 당시에는 볼 수 있을까 했던 것들을 다 보고 있으니 말이다.
한편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국회에 들어오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암담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도 열심히 하다보면 살아생전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는 것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M2@
박근혜 대표는 유신에 대한 입장을 요구받고 있다. 박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박근혜 대표는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가족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고 많은 고통속에서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꿋꿋이 살아왔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 너무 화가 나는 것은 아버지의 후광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꿋꿋이 살았으면 자신의 새로운 정치 철학으로 평가를 해내고 올바로 정치역사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새로운 정치전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아버지가 또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인정을 하겠다. 그러나 그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한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18년동안 어떻게 했는데... 그런 아버지의 후광을 얻고 있다는 것이 속상한 거다.
(박 대표가) 냉정했으면 좋겠다. 홀로섰으면 좋겠다. 홀로서기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왜 탯줄을 끊지 못하는지... 친일청산문제에 있어서도 아버지가 친일파라는 것을 인정을 해야지, 아버지가 친일파라고 해서 딸까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걸 전전긍긍해하면서 주체성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것이 박 대표의 한계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다.
@M3@
총선전 박근혜에게 공개 편지를 써서 많은 당원들과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었다. 당시에는 어떤 심정으로 썼나. 지금 같은 국회의원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박근혜 대표는 육영수 여사 사고 이후 엄마의 모습으로 만들어져왔다. 그 때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머리모양으로 한복을 입고 아버지 옆에 서있었다.
정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인 것이다. 정말 우리와는 관계도 없이 청와대를 거니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 개인으로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삶이 안됐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편 속상하다. 지금도 옷을 그렇게 많이 갈아입는 여성의원은 못봤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한 당대표로서 말로만 할게 아니라 검소하게 실천해야하지 않나 싶다. 정수장학회 가지고 한달에 1000만원 넘는 월급을 받으면서 바로 돈이랑 연결되는 거 아닌가. 우리는 옷하나 사면 10년을 입고는 하는데. 박 대표는 볼때마다 다른 옷이 아닌가. 그렇게 많은 옷을 갈아입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웃음) 아무렇지도 않은 것같지만 예를 들어 삶의 가치가 다른 것이다. 환경낭비인 측면도 있고.
요즘엔 박 대표를 보면서 ´영애´였던 당시와 변하지 않고 살아온 것도 대단하지만 앞으로도 바뀌지 않겠구나 생각한다. 살아온 길도 다르고 가는 길도 다르니까. 국민들이 냉정하게 판단해주길 바란다. 70년대 유신독재와 경제성장을 재평가하고 선거속에서 평가해줬으면 좋겠다.
YH사건과 관련된 국회의원 중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가 있다. 김 대표는 당시 신민당 김영삼 총재 비서실장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나.
▲정치적으로 일단 철학이 다르니까 별다른 생각은 없다. 당시에는 김영삼 총재 비서실장으로 열심히 도왔고 우리도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그 이후에도 몇차례 만난 것 외에는... 왜냐면 정치적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얘기할 것도 없다.
단지 김 대표가 역할을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았다. 당시의 아픔을 생각해서, 젊었을 당시를 생각해서 잘했으면 한다.
김수현 기자
온라인 뉴스팀
webmaster@newscan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