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 청주성모병원 내과
























 


한정호 청주성모병원 내과


몇년전 몸이 안좋아 약간의 수술과 약간의 항암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암이란 재발하면 죽는다. 일반인들은 만약의 희망을 걸지도 모르지만, 내 직업이 암환자들과 부딛히며 사는 것인데 그런 가망없는 희망에 관심이 있을리 없다. 그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당시 항암치료가 끝나고 몇달 안되어 다른 지역의 대학병원에 교수로 근무하는 선배를 만나러 간 적이 있다. 답답한 마음에 그 선배에게 인생상담을 하러 간 것이다.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하였는데 오전 진료가 조금 밀려서 진료대기실에 기다리게 되었다. 혼자 있는 것이 안스러워 보였는지 선배가 옆 진료실의 다른 교수를 소개시켜주고 함께 이야기나 나누고 있으라고 했다.


 


잠깐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가 항암치료를 받은 암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 사정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임상경험을 물어보았? 불안한 내 심정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황당했다.


 


´제가 보기에 선생님(나) 같이 불안해 하는 환자들은 거의다 재발해서 (죽어요). 그냥 잊어버리시고 사세요. 뭐 마땅한 방법이 없쟎아요? 그렇게 이것저것에 자기 병에 관심이 많으면 재수없어서 ......´


 


헉, 정말 기운이 쏙 빠졌다. 나이 90 먹은 할아버지의 보호자에게 ´사실 만큼 사셨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라는 것도 아니고, 아주 귀챦다는 티를 내며 냉소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이 젊은 의사의 말을 듣고, 도저히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다행히 바로 선배가 와서 그 선생님과는 헤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점심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이후로 얼마 동안 그 선생님의 말이 영화에서 메아리와 영상의 반복재생처럼 떠올랐고, 지금도 그 사람의 냉소적 말투와 약간의 빈정거림이 선명하게 기억된다.


 


나도 상당히 냉소적인 면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환자에게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니, 대부분의 내가 만난 의사들은 그랬다. 보호자에게는 차갑게 이야기해서 필요없는 희망에 목을 메느니 환자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지, 환자가 가져야 할 희망과 의지를 꺾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냉소적인 말 한마디는 공격적인 말보다 훨씬 가슴을 후벼파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삶의 질곡에서 허둥대고 발버둥 치는 사람에게는 험악한 욕보다, 냉소적인 말과 빈정거림이 더 큰 상처를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은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더 선명하고 오래가는 모양이다. 내가 의사가 아니라면, 모든 의사들에 대한 기억이 이 한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치환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이 대학병원에서 세미나가 있어 다시 찾게되었다. 마침 세미나실로 가는 통로 옆에 그 선생님의 진료실이 있었다. 당시에는 화도 많이 나고, ´당신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고 충고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런 생각이 지워진지 오래다. 삶이란 누군가 억지로 가르쳐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선생님도 지금은 변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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