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푸른 물결(5)

희망의 푸른 물결(5)
권력이 교만해지면 민심이 떠난다. 민심을 잃은 권력은 불의(不義)의 권력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이 불의의 권력은 말기증세를 보이며 무너져 간다.

며칠 전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선출한 모양이다. 툭하면 지도부가 퇴진하고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은지 주말 드라마를 연출하듯 천문학적 비용을 쓰며 정치 쇼를 벌인다. 국민들이 큰 흥미를 느낄 까닭이 없다. 자기들 스스로도 이번에는 흥행이 되지 않았다며 코가 빠진 모습이다. 참으로 가관(可觀)이다.

나는 우연히 당 의장에 당선된 사람이 취임 연설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귀를 의심케 하는 내용이 흘러 나왔다. 부패한 지방권력을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사원이나 검찰이 즉각 수사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은 것으로 기억된다.

‘지방권력의 부패를 척결하자!’ 일반 주민의 요구라면 당연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바로 노 정권의 핵심이 당의장에 취임하면서 국민을 향해 소리소리 지르는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이 정신이 있나, 나는 참으로 머리 속이 혼란해졌다.

보자, 부패란 무엇인가. 돈으로 권력을 왜곡시켜 부당한 이익을 취할 때 부패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큰 권력이 있는 곳에 큰 부패가 있고, 작은 권력이 있는 곳에 작은 부패가 있다. 이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이다. 그러면 우리 국가권력은 모두 어디에 있나. 대부분 중앙에 집중되어 있다. 지방자치라고 하지만 지방정부에 위임된 권력이란 중앙권력에 비할 때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하다.

노 정권이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국민들은 본능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방권력의 부패가 있다 하더라도 노 정권의 부패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그런데 감히 노 정권의 핵심이 지방권력을 향해 손가락 짓을 한다. 성경의 말씀이 생각난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보는 것이다. 우리 속담처럼 무엇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 볼견의 추태를 보인다.

한 마디로 궁지에 몰린 노 정권의 선거전략이다. 지방권력은 대부분 야당이 장악하고 있다. 노 정권이 쥐고 있는 감사와 수사의 칼을 가지고 지방권력의 부패를 들추어 자기들의 부패와 무능을 감추려는 것이다. 국민을 속여 지방선거를 돌파하려는 이들의 얄팍한 정략에서 이런 추한 모습을 보인다.

당의장이라는 사람이 처음 찾아간 곳이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의 묘소였다. 그리고는 한나라당을 향하여 ‘공공(公共)의 적(敵)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물론 인혁당 사건은 냉전의 시대상황에서 빚어진 비극적 사건이었다. 나는 젊은 날 요란하게 언론을 장식하던 이 사건의 전말을 잊지 않고 있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자마자 피고인들이 다음 날 아침 바로 처형되었다는 뉴스를 보며 경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죽음으로까지 책임을 물은 당시 집권세력의 행위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혁당 관계자들이 반체제운동을 하였던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소위 집권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국립묘지가 아닌 인혁당의 묘를 찾아간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이 집권당의 의도일까, 아니면 대표 개인의 노림수일까.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은 야당을 가리켜 공공의 적이라고 서슴없이 내뱉는 그의 언동이다.

공공의 적(public enemy)란 원래 미국 사회에서 공산주의자를 일컬어 부른 호칭이다. 최근 공공의 적이란 영화가 나왔는데, 여기서는 사회의 거악(巨惡)을 지칭한 것으로 기억된다. 어찌했든 여당의 대표가 야당을 가리켜 공공의 적이라 한다면, 그 여당이 바로 공공의 적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일 것이다. 민주주의도, 정당정치도 다 버리지 않는 한 도저히 할 수 없는 망언이기 때문이다.

이런 망언을 보고도 한나라당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너무 자신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 망언의 중대성을 잘 몰라서일까. 우리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집권세력의 도발도 문제지만 그 도발 앞에 무기력한 한나라당의 모습도 한심하기만 하다. 이래가지고 우리 정치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어떻게 해서든 이러한 상황을 타파해야만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노 정권이 어떻게 나올지 여당 대표의 위와 같은 행태를 보면 짐작이 간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속을 국민은 없다고 말이다. 그들이 대도(大道)와 원칙(原則)으로 돌아오면 그래도 국민들이 길을 열어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단말마(斷末魔) 같은 언행을 계속하면 그들의 종말만 재촉할 것임을 명심할 일이다.

2006. 2. 23

이 인 제

이인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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