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우렁각시’ 이야기로 유명한 논우렁이의 슬픈 얘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우렁이 어미는 난태생으로 알을 자기 몸 안에서 낳고 부화시켜 새끼까지 성장하면 세상에 내보내는데, 그동안 새끼들은 그 어미의 몸을 뜯어먹고 자란다고 한다. 결국 새끼가 나올 때쯤 되면 어미는 빈 껍데기만 남아 물 위에 동동 떠다닌다는 것이다. 알을 보호하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살다 마침내 죽는 가시고기의 부정처럼 애처롭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 모정을 표현할 때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자료를 뒤적여 본 결과, 논우렁이는 난태생이 맞는데 새끼 어미 모두 무사히 살아서 태어나고 먹이(잡식성)가 충분하면 모자간에 전혀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먹이가 부족하거나 갇힌 환경일 경우 주로 어미가 새끼들을 잡아먹고 만일 어미가 약하면 외부에서 새끼들의 집단 공격이 이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 흔히 논에서 인공적으로 키우는 왕 우렁이는 외래종으로 알을 모두 몸 바깥에 낳는다.

이전에 속은 이야기 중에서 살모사 이야기가 있다. 살모사 새끼는 이름 그대로 자기 어미를 죽이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이나 살모사의 출산과정을 지켜본 결과 살모사 새끼는 절대 어미를 해하지 않았다. 어미는 완전한 새끼를 5~6마리 난 직후 꽤 수척해 지지만 서로 간에는 어떤 상호작용도 일어나지 않고 따로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했다. 정작 불쌍한 건 세상에 덜렁 내맡겨진 살모사 새끼들이었다. 이렇듯 동물이야기는 제대로 알지 못하면 감성적인 측면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사실과 혼동될 소지가 많다.

연체동물로 분류되는 패류는 앞서 말한 우렁이와 같은, 원뿔형인 복족류(복부에 다리가 있음)와 조개 같은 이매패류(뚜껑이 두 개)로 나눈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무거운 짐을 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한편으론 평생 걱정 없이 자기 한 몸 의거할 멋진 집을 가진 행복한 족속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집 형태와 색깔 또한 먹는 것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령 열대바다의 패류는 다양한 먹을거리로 인해 한대지방의 것들보다 색깔이나 크기가 훨씬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들 패류는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끼니에 도움이 되었으며 한때는 그 패각이 화폐로까지 유통되기도 하였다. 그 모양에 반해 아직도 수많은 수집가들이 해변이나 바다 밑바닥을 뒤지기도 하고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한다.

조개들은 나무처럼 나이테를 가지고 있다. 여름, 겨울 같은 기후의 변화에 따라 자라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굴이나 재첩 조개의 뚜렷한 가로무늬는 이렇게 해서 생겨난다. 온대지방의 것들은 당연히 계절에 따른 나이테가 확연하지만 계절이 없는 열대 지방에서도 규칙적인 무늬가 나타나는 일이 있는데 이를 ‘산란윤’이라고 한다. 생식 활동에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함으로써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조개의 무늬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들의 아름다운 무늬는 어쩌면 이들의 삶의 고통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주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사람처럼 나이가 들수록 패류의 성장속도는 달라진다. 가령 거대 전복인 California Red Abalone(적 전복)이 처음 7인치 크기까지 도달하는데 12년 정도 걸리고 그리고 또 1인치 더 자라는 데는 5년이 걸리고, 그다음 1인치 자라는 데는 13년이 걸린다고 한다. 현재 최대 크기의 기록은 12와 3/4인치(약 30cm)인데 100살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패류는 주로 해초나 플랑크톤 그리고 연체류를 먹고살고 수많은 바다생물들의 먹이가 된다. 대표적인 천적은 문어나 낙지 같은 연체동물이고 다시 문어는 큰 고기들의 훌륭한 단백질원이 된다.

그러나 이들에겐 수평적인 먹고 먹히는 관계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때론 그들의 포식자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 조개들은 산란철이 되면 자기를 노리는 물고기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출수관에 대기하고 있던 ‘글로키디움’이란 유생을 대량으로 물고기 몸에 쏜다. 일부 유생은 그 과정에서 물고기의 먹이가 되기도 하지만 많은 유생들이 물고기의 지느러미에 천연 갈고리를 이용해 꽉 달라붙어, 2주 정도 성체로 성장할 때까지 이 물고기는 꼼짝없이 함께 있어주어야 한다. 반대로 줄 납자루 같은 물고기는 조개의 입수관에 산란관을 넣어 자기 알들을 쏟아 붇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장소만 빌릴 뿐 서로에게 거의 피해를 주지 않으므로 편리공생 혹은 상생이란 용어를 대입시키기도 한다.

굴들은 어쩌면 그렇게 돌 위에, 단단한 돌마저 깎아 내리는 파도를 이기고 붙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그건 바로 우리가 집의 기초를 세우는 것과 하나 다를 게 없다. 이 패각을 만드는 외투막에서 나온 액체성의 탄산칼슘(시멘트 성분)이 고스란히 돌 표면에까지 스며들어 바로 그 돌과 그리고 옆의 동료들과 한 몸이 되게 해주는 것이다. 홍합은 굴과는 다른 부착 방식을 취한다. 영구히 한 곳에 머무르는 대신에 일시적인 거처로 이 돌을 활용한다. 이들의 부착 방식은 닻줄과 같은 패각 끝의 족사다. 비록 견고하지만 이 족사는 홍합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결합을 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요즈음 새만금 간척지에 가면 백합이나 동죽 같은, 갯벌 생태계와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해오던 조개들의 껍데기가 무수히 굴러다닌다. 단단해진 갯벌에는 도대체 생명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건강한 갯벌은 그 조개들과 게들이 지나다닌 무수한 흔적들로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다. 갯벌의 개척자이자 생명의 원천은 바로 이 무수한 조개와 고동들이다.

우린 미물이란 이유로 이들의 가치를 소홀히 하다 보니 갯벌에 죽은 조개껍데기가 산처럼 쌓여나가도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고동과 조개는 인류가 태어나기 훨씬 머나먼 옛날부터 우리 지구의 생명력을 지탱해왔다. 일시적으로 한곳에서 사라지더라도 어디선가 분명히 그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살아남을 것이다. 이것이 조개들의 무한 생존 방식이다.

글 : 최종욱 수의사(광주우치동물원)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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