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캔/과학향기】“삼촌, 재미있는 얘기 좀 해주세요.”


“우리 과학이가 심심하구나. 어디 보자, 무슨 얘기를 해줄까? 과학이, 오늘 점심으로 꽃게탕 먹었지? 꽃게 이야기해줄까?”


“꽃게 이야기요? 좋아요.”


“그럼 이제 시작한다. 잘 들어보렴.”




서해 앞 모랫바닥에는 꽃게들의 나라가 있었어. 꽃게들은 모래에 몸을 묻고 있다가 밤이 되면 먹이를 잡으러 나오곤 했어. 겨울이면 깊은 바다로 여행을 떠나 겨울잠을 잤지. 꽃게들이 사는 모랫바닥은 사람들이 사는 육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어. 인간들은 꽃게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해마다 더 많이 꽃게를 잡으러 왔지만, 꽃게들은 여전히 봄이 되면 육지 가까이 왔어.




꽃게 나라에는 철없는 꽃게 공주가 있었단다. 꽃게들은 어려서부터 인간을 가까이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 왔어. 인간에게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를 배우고, 잡히지 않는 방법도 배웠지. 하지만 꽃게 공주는 수업시간이 너무 지루했어.




“여러분, 우리 꽃게들은 무슨 색깔이지요?”




과학선생님이 질문을 던졌지. 꽃게 학생들은 저마다 자기 몸을 돌아봤지만, 누구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지. 꽃게들은 뭐라 딱 꼬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색깔을 하고 있었거든.




“우리 꽃게들은 어둡고 조금 칙칙한 색깔을 하고 있어요. 암컷은 어두운 갈색이고 수컷은 초록빛을 띤 갈색이죠. 갈색이라고 해도 회색에 가까운 탁한 색깔입니다. 우리 몸의 색깔은 한 가지 색깔로 부를 수 없을 만큼 오묘하고, 저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 색을 잃어버리면 우리 꽃게의 생명은 끝나는 겁니다. 부디 이 색깔을 자랑스럽게 여겨주세요.”




꽃게 공주는 자기 몸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조개처럼 희거나 먼 바다의 산호초처럼 붉은색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꽃게 공주는 과학선생님이 하는 말은 귀담아듣지 않았어.




“학생 여러분, 혹시 빨간색 꽃게를 보신 적이 있나요?”


빨간색 꽃게? 꽃게 공주의 귀가 번쩍했어.


‘나도 빨간 꽃게가 되고 싶어!’




“여러분이 빨간색 꽃게를 본 일이 없는 건 정말 다행입니다. 빨간색 꽃게를 본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니까요. 그건 우리 꽃게들에게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몸속에는 아스타산틴이라는 색소가 있어요. 우리와 같은 갑각류나 어패류가 적외선의 악영향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갖고 있는 색소지요. 이 색소는 단백질과 결합해 있을 때는 청록색을 띠지만 분리되면 붉은색으로 변합니다. 단백질이 분리된다는 건, 우리를 삶거나 구웠다는 얘기죠. 70℃ 이상이 되면 단백질과 아스타산틴 색소의 결합이 끊어집니다. 인간들은 우리 몸이 붉게 변하면 군침을 흘리며 덤벼들죠. 그들은 붉은색을 보면 식욕이 돋는다고 합니다.”




꽃게 친구들은 두려움에 떨었어. 우리를 삶거나 구워 먹는다고? 우리가 죽은 걸 보면서 군침을 흘린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었지. 하지만 불행하게도 꽃게 공주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 예쁜 빨간색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특히 암컷 꽃게들은 주의해야 해요. 6월 암컷의 맛을 최고로 치기 때문에, 우리 꽃게 암컷들은 항상 몰살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수업을 마친 꽃게들은 어떻게든 인간에게 잡히는 것을 피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집으로 돌아갔어. 하지만 꽃게 공주는 반대로 빨간색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지.




‘한번이라도 아름다운 빨간색 몸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게 공주는 인간의 그물에 잡혔다가 가까스로 그물을 뚫고 살아 돌아온 늙은 꽃게를 만나러 갔어.




“나도 붉게 변한 꽃게를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붉게 변한 새우는 본 일이 있지. 인간에게 잡혀서 붉게 변하는 건 우리 게만이 아니다. 새우도 바닷가재도 우리와 같이 아스타산틴이 몸에 있어, 뜨거운 열로 가열하면 붉어진단다. 연어나 숭어 같은 물고기의 살색도 같은 성분 때문에 붉지. 그래, 그 색은 한번 보면 잊을 수가 없어. 물론 아름답단다. 하지만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데, 아름다운 게 무슨 소용이겠니. 내가 인간의 그물에 그대로 잡혀갔다면 너를 만나서 지금 이런 얘길 해줄 수도 없을 게 아니니.”




꽃게 공주는 죽는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어. 빨간색으로 변하면 어떨까? 호기심을 멈출 수 없었지. 그래서 오늘도 꽃게 공주는 인간들이 사는 곳 가까운 모랫바닥에서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단다.




“삼촌, 그럼 내가 오늘 먹은 꽃게가 그 꽃게 공주일지도 모르겠네요. 어쩐지 슬퍼요.”


“이런, 과학이가 심각해졌구나. 꽃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꽃게는 너무 맛이 있잖니. 게다가 몸에도 좋단다. 꽃게에 많은 타우린은 혈압을 정상적으로 유지해주는 역할을 해. 또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에 당뇨병 치료에도 좋단다. 꽃게가 멸종될 정도로 마구 잡아서는 안 되겠지만, 적당량을 고마운 마음으로 먹는 것은 괜찮아.”




“삼촌, 그런데 색깔이 변하면 게의 성분도 달라지는 게 아닌가요?”


“기특한 질문이구나. 신기하게도 껍질이 붉은색으로 변한다고 새우나 게의 영양성분이 달라지지 않는단다. 먹음직스러운 색으로 변하면서 성분도 그대로니까 인간에겐 참 고마운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이 아스타산틴 색소는 항산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단다. 비타민 E보다 550배에서 많게는 1천 배의 항산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 그래서 건강 보조제나 화장품 등의 성분으로도 사용되지. 아까 아스타산틴은 붉은색을 띤다고 했지? 그런 특징 때문에 색소로도 사용되고 있어. 양식어류의 색상이 더 붉게 보이도록 사료에 첨가하기도 하고, 합성 아스타산틴은 관상용 물고기의 색상보조제로 쓰이기도 해. 합성 아스타산틴은 천연과는 성분이 달라 먹을 수는 없단다.”




“우와, 꽃게 등껍질 색깔 하나에도 정말 많은 과학적인 지식이 담겨 있네요. 앞으로는 꽃게를 먹을 때마다 삼촌 얘기가 생각날 것 같아요. 삼촌, 고마워요.”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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