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 청주성모병원 내과

“객관식 시험이 학생들에게 요구하고 강요하는 노예의 길은 크게 두 가지 기술로 이루어진다. 공부하는 기술이 그 하나요, 시험 보는 기술이 그 다른 하나이다. 전자는 주인이 준 것을 충실히 기억하는 기술이요, 후자는 주인이 묻는 것에 충실히 답변하는 기술이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실수는 처벌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자유로운 개인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식과 사유가 자리할 여지가 조금도 없다. 모든 것은 오답을 피한다는 목표로 수렴된다. 노예는 주인이 원하지 않는 것은 피해야 한다. 가장 좋은 노예는 주인이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내놓은 노예이다. 명령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 인간과 같은 노예가 가장 좋은 노예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분화된 공부 기술과 시험 기술을 충실히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개인의 자유로운 인식과 사유를 최소화하고 무력화시키며, 궁극적으로는 무화시켜야 한다. 이른바 공부 기술과 시험기술은 ‘노예 행동수칙’이요 ‘기계 인간 수칙’이다.”


 



- 독일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김덕영님의 글로 전교조에 대한 발전을 촉구하시는 전교조 교사 이기정선생님의 글에서 재발췌했습니다. (출처 링크: 입시개조론-내신을 바꿔야 학교가 산다. 이기정)



 


사례1 : 열나고 설사를 하는 고등학생, 부모들과의 면담.


2일전 두통과 열, 근육통으로 개인의원을 방문하여 감기 증세이니 진통제를 처방 받고, 어제부터 설사를 10여 차례하고, 오늘 아침 제 외래에 방문하였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식중독에 의한 장염이고, 그 다음에는 감기 바이러스가 장에 들어가서 생긴 바이러스성 장염일 수도 있겠죠. 어쨋든 치료는 안아프게 해주고, 탈수가 되지 않도록 수액을 공급해주는 것이죠. 고열이 아니면 굳이 항생제를 쓸 필요도 없고, 1~2일 기다리면 좋아지기 마련입니다.”라고 설명을 하고 약을 처방해주었는데…



 


이 학생과 부모 모두 같은 반응을 하더군요.



 


“확실히 왜 아픈지 모른다는 건가요?”



 


“???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2가지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이를 규명하려고 검사를 굳이 할 필요도 없고, 현재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토하지도 않아 탈수도 되지 않았고 해서, 집에서 죽을 먹으며 지켜보면 저절로 좋아질 것 같다는 이야기죠. 다시 설명하면, 약한 식중독 또는 바이러스성 장염일 가능성이 높고, 오늘 지나면 회복될 것 같으니 기다려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왜 설사를 하는 건지 왜 몰라요?”하고 학생이 다시 물어봅니다.


 


“???”



 


아빠, 엄마, 고등학생 아이. 모두 다 제 말을 이해를 못합니다. 그리고 저를 돌팔이 쳐다보듯 하면서, 이런 것도 모르냐는 듯… 다시 설명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귀찮다는 듯, “알았어요.”하고 돌아갑니다.




 


사례2 : 90세 노인을 언제까지 종합병원에서 모시고 있을까?


노인요양병원에 있던 90세 할아버지가 식사를 못한다고 저희 병원 응급실로 왔습니다. 일단 입원해서 검사를 해보았는데, 위암 말기네요. 중풍으로 전혀 걷지 못하시는 분이고, 의식도 안좋은 이 고령의 할아버지를 수술하거나 항암 치료할 것도 아니죠. 아드님께 설명을 드리고, 다시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자연스럽게 임종하시는 것을 권유 드렸죠.



 


“왜 환자를 쫒아 냅니까?”



 


“??? 저희는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종합병원입니다. 지금 당장 나가시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몇 달, 몇 년을 계속 저희가 모시고 있을 수는 없고, 특별히 치료할 것도 없으니, 이런 할아버님들을 모시는 요양병원으로 가시는 편이 할아버지에게도 더 좋지 않을까요?”



 


“아니 그러니까 나는 그 요양병원이 마음에 안 든다니까?”



 


“그러니까 미리 마음에 드는 요양병원을 알아보시란 이야기입니다.”



 


“왜 환자를 쫒아냅니까? 의사가 이래도 돼요?”



 


“아니, 지금 병원에서 나가라는 것이 아니라, 요양병원을 알아보셔야지 마음에 드시는 곳에 몇 주일 뒤에라도 가실 것 아닙니까?”



 


“난 요양병원이 마음에 안 들어 복지부에 고발할 거요.”



 


“??????…”



 


같이 회진을 돈 전공의에게 ´내가 불쌍한 건 저 아저씨의 자식들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대화를 하려면 얼마나 속이 터질까요?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형제분은 대화가 가능하더군요. 워낙 저 분은 집안 내에서도 대화가 불가능하다며 저에게 미안하다고 하네요.



 


사례 3 : 조직검사를 하지도 않았는데, 조직검사 결과를 묻는 사람


간기능 수치가 올라갔다고 개인의원에서 전원된 대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왔습니다. 일단 혈액검사를 해서 간염이 있는지,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을 해봐야겠죠? 그리고, 초음파나 CT검사를 해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간에 혹이 있으면 조직검사를 하는 수도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은 혈액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일단 관찰하고 더 이상의 검사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궁금해하는 것이 많아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럼 처음부터 한 번에 조직검사를 하면 될 것을 이렇게 복잡하게 해요?”



 


“간에 혹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어디다 데고 조직검사를 하죠?”



 


“그걸 알아맞히라고 있는 게 의사 아니에요?”



 


지금 대화의 모드(mode)는 절대 기분 나쁜 상태가 아닙니다. 그냥 순수하게 이해를 못하여 물어보는 상황입니다.



 


“입장바꾸어, 보호자(학생의 어머니)가 초등학교 입학식날 담임교사인데 ´우리 자식이 명문대에 갈 수 있을까요? 확실히 말해주세요.”라는 학부형에게 뭐라고 하시겠어요? 지금 제 입장이 비슷할 것 같지 않으세요? 일단 혈액검사라도 결과를 봐야 저도 다음 단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아직 피도 안 뽑았잖아요?“



 


이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말을 이해할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혈액검사 결과의 이상이 있어 CT 등의 검사를 하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처음부터 왜 CT를 안 찍었냐고 원망을 합니다. 만일 CT를 찍어서 조직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되면, 또 다시 처음부터 조직검사를 안했냐고 따집니다.




 


사례 4 : 방금 했던 질문과 대답을 계속 반복하는 사람들


건강검진에서 간기능검사의 이상이 있어, 재검사를 하고 왔습니다. 간의 염증수치가 약간 올라가 있고, C형간염보균자이거나 지방간에 의한 원인 일 수 있으니, 간초음파검사와 C형간염항체검사를 해야 한다고 설명을 제가 설명을 합니다.



 


이때까지는 ´어머 그래요.´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과장되게 잘 이해한 것처럼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질문이 “재검사 결과가 어떻게 되었어요?”



 


“예??? 방금 전까지 설명 드린 것이 재검사결과인데요.”



 


“그럼 그렇다고 말씀을 해주셔야죠. 그래서 이상이 있다는 건가요?”



 


“휴~. 다시 천천히 설명드릴 테니, 잘 들어보세요.”



 


“어머, 그래요. 호호, 예. 알겠어요.”



 


“예, 그럼 검사하고 다음 예약을 잡아드릴께요.”



 


“어, 그런데요. 왜 재검사를 했는데, 다시 검사를 하라는 거죠?”



 


“???”



 



왜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대화가 이어질까?


 


다른 의사들의 경험을 봐도, 저렇게 대화가 안 되고, 이해를 못하는 분들은 가족내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쩜 형제, 부모, 자식들이 비슷할 수 있을지 신기하죠. 유전적인 영향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가정교육이 비슷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이런 분들은 교육수준/지식수준과 별로 연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70 먹은 할머니가 30살 먹은 손자 보다 훨씬 이해를 잘하시는 경우를 종종 보죠. 저희들의 경험으로는 직업과는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교수, 공무원, 교사, 가정주부, 성직자의 순으로 앞에서부터 그 정도가 심한 것 같다는 것이 주변 의사/간호사들의 지인들의 중론입니다. 어떤 직업적 특성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더구나 내 주관적 경험이니, 이를 절대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것을 제한점으로 남겨둡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난독증, 즉 책이나 문장을 읽고 이해를 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낮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러한 문제도 가정교육과 마찬가지로 학교교육에서 연원한 것은 아닐까요?



 


유학이 유교가 되어버리고 관상, 풍수지리가 판쳐 금수강산을 무덤이 점령한 나라, 음양오행으로 천지만물에 꿰어 맞추는 무지와 오만함이 의학의 영역까지 버젓이 횡행하는 한방의 나라, 거대 개신교 교회와 여타의 각종 종교단체의 거대 권력화, 각종 사이비 종교의 난립…. 아직도 열심히 on-off활동을 하시는 황빠의 나라.



 


상대적이며 변화가능한 모든 세상의 이치와 과정을 이해 못하고 암기하고 이에 꾀어 맞추려만 들고, 또한 상대를 적(악)으로 규정하는 속편한 투쟁만을 하는 인간을 만들어온 것은 아닐까요?



 


객관식 교육이 점령한 학교, 객관식 사고가 점령한 머리, 그 머리들이 점령한 사회는 객관식 정답이 없는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지 못하고 먹통 윈도우처럼 ´블루화면´이 뜨며 모든 것이 정지(stop)해 버리지는 않을지 살짝 걱정됩니다.


 





한정호 청주성모병원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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