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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호목사 빛된교회


 






1:8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10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 11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12음부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13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14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15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16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17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 18그들의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19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부모는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참 많다. 젊을 때는 몰랐는데, 자식을 키워보니까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이해가 간다. 우리 어머님은 금년에 여든 다섯이신데 지금도 오십이 넘은 딸의 귀가 시간이 자정을 넘기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시고, 예순을 바라보는 아들이 외국 나가서 전화 하지 않는다고 노심초사해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면 딸이 면박을 주기 일쑤이다.


“엄마는 참, 그냥 주무시면 되지, 어련히 안 들어오려고 청승맞게 그래요!”


 


자기도 자식을 키우면서 그런 모습이 싫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내 아내가 똑 같이 자식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 이것이 세상의 부모 마음이다. 시집 장가 안 간 자식들은 부모의 심정을 잘 모른다.


본문은 뭐라고 시작하는가? 히브리어 성경에는 “들어라, 내 아들아 …”로 시작한다. 영어 성경(NIV)에서는 “Listen, my son,” 하고 시작한다. 참 애절함이 베어 있는 말이다. 특별히 “내 아들아”라는 말 속에는 한없는 자애가 담겨 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들을 부를 때 이름 대신 “아들아!” 하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우리 아내도 아들을 부를 경우 간혹 이름을 부를 때도 있지만, 대개 “아들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조금 닭살이 돋는 느낌이 든다. 잘 아는 서울의 한 권사님도 아들을 부를 때 꼭 “아들아~” 한다.


 


성경에서 부자지간의 대화 가운데 “내 아들아”란 호칭이 가장 극적인 장면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이다. 어렵사리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라보는 재미로 사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네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다. 번제물로 바친다는 것이 무엇인가? 제단에 불을 피우고, 그 위에 올려놓고 죽인 다음 칼로 각을 뜨고, 피를 제단 주의에 뿌리고, 완전하게 불살라서 제물로 바치라는 말 아닌가? 그것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이나 하는 못된 짓이다. 이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일체 군말 없이 그대로 순종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묵묵히 앞장서서 모리아 산을 향하여 걸어갔다. 아들 이삭은 등에 땔감을 지고 뒤를 따랐다. 둘은 아무 말이 없다.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계속된다. 드디어 아들이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아버지!” “그래, 내 아들아!” “불씨도 이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얘야,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이 말 후에 다시 침묵이 계속된다. 그 다음 이야기는 창세기 22장을 보면 잘 나와 있다. 아들이 아버지를 불렀을 때에 “그래, 내 아들아!”고 한 대답 속에 형언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탁월한 주석가인 카일(C. F. Keil)은, 선생이 제자에게 아버지같이 다정하게 한 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옳은 주석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8절의 전문을 다시 보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8절).


아버지로부터는 훈계를 듣고, 어머니로부터는 그 들은 법에서 떠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부모의 훈계와 가르침에서 떠나지 말라는 말씀이다. “내 아들아”라고 하였다고 딸들이 섭섭해 할 이유는 없다. 아들 속에 당연히 딸도 포함된 ‘자녀’의 개념이다. 어떤 여권운동가들은 성차별적으로 번역하였다고 쌍심지를 키며 여성신학을 주창하는데,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부모들은 누구나 자식들이 훈계(訓戒)와 법에서 떠나지 않기를 소원한다. 그렇게 소원하는 훈계와 법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지키도록 하여야 한다. 생명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행 5:20 ; 빌 2:16 ; 요일 1:1 ; 계 2:7)을 지키면 마치 머리에 아름다운 관을 쓰고, 목에 순금 목걸이를 한 것과도 같다.


 


부모들의 첫째 되는 걱정은 자식이 악한 자들의 꾐에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자식이다. 어느 듯 훌쩍 성장한 자식을 인정하기 보다는 아직도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같아 보인다. 그래서 걱정이 떠나지 않다. 아직 사리분별력이 부족한데, 너무 물러 터져서, 마음이 여린데 혹시라도 누군가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달콤한 말로 꾄다면 어쩌지? 이런 염려가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신신당부를 한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10절).


악한 자란 이미 하나님께 죄를 지은 죄인들을 말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그것이 곧 죄이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 하는데, 마치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가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서 삐딱하게 살면 죄인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 죄 씻음 받고 구원받지 않으면 아담으로부터 이어받은 원죄에서 해방될 수 없다. 원죄의 씨를 갖고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의 상태는 철저하게 부패되어 있고, 철저하게 타락한 상태에 있다.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오직 악을 행하고자 하는 자유의지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공중권세 잡은 사단의 악한 지배 아래 있기 때문이다. 사단이 하는 짓이란 원죄의 씨를 갖고 태어난 인간을 조종하여 끊임없이 죄를 행하도록 충동질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악한 자(하타임)라고 한 것이다. 이런 악한 자들이 꾈지라도 거기에 기울어져서 좇아가고 어울려서는 안 된다.


 


11-14절에는 악한 자들의 전형적인 수법이 나온다.


“함께 가서 숨어 기다렸다가, 이유를 묻지 말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자. 스올처럼 그들을 산 채로 삼키고, 무덤이 사람을 통째로 삼키듯이, 그들을 통째로 삼키자. 우리는 온갖 값진 것을 얻게 될 것이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의 집을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너도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모두 돈주머니는 하나만 두자”(표준새번역).


악당들은 미끼를 던지면서 그들의 모의에 끌어들이려 한다.


“이유는 묻지 마라. 대상이 죄가 있든 없든 그건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다. 후한이 없도록 점찍은 대상은 아예 죽여 버리자.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무덤을 파서 산채로 생매장 시키자. 그러면 그 사람의 모든 재산은 우리의 소유가 될 것이다. 빼앗은 재물은 공평하게 분배할 것이다. 그리고 통장 하나만 만들어서 공동재산으로 관리할 것이다.”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탈취한 재물의 공동소유는 그들 범죄 조직의 결속력을 더욱 강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점점 더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질 것이다.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15절).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언어가 눈물이 되어 하나님 자녀들의 가슴을 적신다. 악인들의 유혹을 철저하게 거절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한다. 그들의 꾐에 넘어가면 함께 악인이 되고 만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한다. 죄인들의 걸어가는 길에 동행하지도 않는다. 오만한 그들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 그러면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때를 따라서 과실을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무성한 것같이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된다. 그러면 악인들의 바람에 멀리 날려가는 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인들의 모임에 들기는커녕 마지막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시 1:1-5).


 


시편 26:4-5은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고 하였고, 시 119:101-102은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고 하였다. 예레미야 14:10에서는 죄의 길에서 떠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고 하였다.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16절).


악한 자들은 악한 일을 꾸미고 추진하는 데는 선수들이다. 머리가 잘도 핑핑 돌아간다. 그런 곳에는 잔머리를 기가 막히게 잘 굴린다. 그 좋은 머리로 좋은 일 하는데 사용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보편적 죄성이다. 사단 마귀가 가져다 준 악한 마음이다. 사단 마귀가 그렇지 않는가? 사단 마귀는 사자처럼 두루 뛰어다니면서 삼킬 자를 노린다(벧전 5:8).


 


이사야 59:4-8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규탄하는 내용이다.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잔해를 잉태하여 죄악을 생산하며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리울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이 있으며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이런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절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루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그것은 그들의 승리가 아니다. 서부 영화를 보면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이 나온다.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총잡이가 혜성처럼 나타나서 악당들을 하나씩 둘씩 쓰러뜨리고 통쾌하게 원수를 갚아준다.


“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 그들의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17,18절).


열심히 잔머리 굴려서 한탕 신나게 하려 하지만 결과는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왜 그런가? 악당들을 싫어하시는 하나님께서 가만 내버려 두시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시 55:23).


주님은 공정한 재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시고, 악한 사람은 자기가 꾀한 일에 스스로 걸려든(시 9:16).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조소하신다.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며 궤휼을 낳았도다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시 7:14-16).


 


부모들의 걱정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결론이 통쾌하고 멋있다.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19절).


바사 제국의 하만이 유다인들의 씨를 말리려다가 모르드개의 목을 매달기 위해 만들어 놓았던 나무에 자신이 매달려 죽었다. 19절과 관련하여 신약성경은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벧후 2:3).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사단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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