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푸른 물결(12)

희망의 푸른 물결(12)
잊을 만 하면 또 터져 나오는 끔찍한 뉴스가 이유 없는 연쇄살인이다.

어제 저녁 TV 뉴스를 통해 두 딸이 살해당하고 본인은 머리를 다쳐 불구가 된 채 병원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행복했던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고 그 어떤 노력도 시간도 이 가정을 살려낼 약(藥)이 되지 못한다. 무슨 수로 그 가정에 다시 미소를 돌려줄 수 있을까. 가슴이 미어져 온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한 범인은 누구일까. 그에게도 그를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들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소중한 꿈과 사랑도 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삭막한 사막처럼 모든 것이 사라졌다.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단죄(斷罪)만을 기다리는 그에게 남아있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계속되는 이 끔찍한 범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또 어떨까. 돈이나 치정(癡情)같은 동기(動機)가 있는 살인의 경우 우리는 분노나 동정의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그 사건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유 없이 닥치는 대로 저지르는 살인을 보노라면 그저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 밖에 없다.

그렇다. 이런 살인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증오나 적대감을 갖기 이전에 망치로 뒤통수를 맞을 때 느끼는 충격과 그 충격 뒤에 오는 공허함을 느낄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야수(野獸)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다른 짐승의 목숨을 끊지 않는데, 무엇이 저 젊은이를 야수보다 못한 흉악범으로 만들었을까.

나는 우리 사회를 엄습하는 허무(虛無)를 본다. 이대로 가면 어느 누가 사람을 믿고 그 믿음 속에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언제 어느 사람으로부터 아무 이유 없이 공격받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거칠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따뜻한 시선으로 다시 우리 사회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유 없는 살인은 우리 사회의 연대(連帶)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이다. 이 무너진 연대를 다시 묶어내지 않는다면 끔찍한 살인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회는 사람과 사람의 연대로 구성된다. 연대의 단위(單位)는 가정, 직장, 학교, 지역, 국가, 민족 같은 것들이다.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는 유대감(紐帶感)이 이런 울타리에서 나온다. 그런 울타리가 붕괴되면 연대는 깨지고 사람들은 사회적 소외(疎外), 즉 고립으로 나아간다. 이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범죄가 발생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자.

이혼율이 세계 최고이다. 가정이라는 연대의 울타리가 붕괴되는 것이다. 실업률이 사상 최고이다. IMF 이후 직장들이 급속히 붕괴되고 거기에서 고립된 사람들이 새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역사회는 대립과 갈등으로 날이 지새고 구성원들에게 고립감만 더해준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나 위엄도 땅에 떨어졌다. 월드컵이 없었다면 어디에서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을 들을 수 있었을까. 그러니 국가나 민족의 구성원이라는 유대감도 고립화 되는 사람을 붙잡아 줄 힘이 되지 못한다.

이 모든 연대의 붕괴와 고립의 심화(深化)는 노 정권에 이르러 극(極)에 달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자살과 살인은 고립의 끝에서 벌어지는 약한 사람들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연대의 회복과 강화는 정신과 물질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 나가는 갈밖에 없다. 성장발전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연대의 울타리가 온전할 수 없는 법이다. 우리 사회가 다시 성장의 고삐를 틀어쥐어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의 분배를 원활하게 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정신을 바꾸어야 한다. 창조정신과 개척정신이 그것이다. 사회의 기풍이 신선하고 사람들이 나름의 목표를 추구한다면, 그 곳에 소외(疎外)나 고립은 자리 잡기 어렵다. 자연히 그런 끔찍한 범죄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불행을 당한 분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라가 그 분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한다. 법이 있기는 한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걱정이다.

오, 이런 불행한 사태에 대해 진정 책임을 통감해야 할 위정자(爲政者)들이여, 나를 포함한 그대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2006. 4. 26

이 인 제

이인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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