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간이식 포기, 절망 속에 찾아온 희망-잠든 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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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간이식 포기, 절망 속에 찾아온 희망-잠든 간암
  • 온라인 뉴스팀
  • 승인 2009.01.0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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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 청주성모병원 내과

B형간염에 의한 간경변(HBV associated LC)으로 저에게 진료를 받는 4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남편과는 사별하고 직장을 다니며 고등학교를 다니는 둘째 딸과 막내아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3년 전부터 간기능이 급격히 안 좋아져서 직장을 다닐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간경변이 너무 진행하여 간성혼수(hepatic encephalopathy)와 자발성 복막염(spontaneous bacterial peritonitis)으로 잖은 입퇴원을 반복하게 되었죠. 기초생활수급자(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 근근이 생활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B형간염에 의한 심한 간경변과 간암


나이도 젊은데 이대로 두면 몇 년 살지 못할 것이어서 간이식을 권유하였죠. 일단 서울의 간이식을 많이 하는 센터로 소견서를 써서 보내어 간이식 대기명단에 올렸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말에는 급기야 간암까지 생기더군요.



 


간동맥 색전술을 시행하였고 다행히 2cm 크기의 한 덩이만 있었습니다. 완치를 위해서는 간절제술을 해야 하는데, 가뜩이나 남아있는 간기능이 부족한데 수술을 하여 부분적 간절제를 하고 살 가능성이 없더군요. 또한 간기능 자체로도 큰 수술을 하고 사망할 확률이 거의 100%였죠. 가능한 최선의 방법은 간이식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장기이식 공여자는 많지 않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교통사고 등으로 뇌사가 되고, 장기기증을 하는 사람을 실제로 주변에서 보셨나요? 또는 여러분이 장기기증을 서약하셨거나, 서약을 하셨어도 유가족들이 그 상황에서 실제로 동의를 할까요? 여러 가지 이유로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체장기기증을 기다리는 것은 그냥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과도 비슷한 현실입니다.



 


혈액형이 같으면 간이식이 가능합니다. 일단은 가족에서 찾아봐야겠죠. 하지만, 저는 가족 내에서 장기기증을 하는 것을 잘 권유하지 못하겠더군요. 내 도덕관념이 고결하다고 해서, 남에게 같은 수준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일 수 있습니다. 가족들은 장기기증을 생각해보지 않겠어요? 환자 본인은 얼마나 살고 싶을까요. 그 환자가 자칫 장기기증에 머뭇거리는 가족들을 원망할 수도 있는 일이랍니다. 또는 가족들이 환자를 짐으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죠. 생체 장기기증이란 너무도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지와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기대하던 간이식, 그러나….


어찌되었든 이 가족에서 둘째 딸이 혈액형이 같았고 간이식 공여자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검사가 진행되었고 항바이러스제제와 이뇨제 등을 타러 저에게도 2주~4주에 한 번씩 방문했기 때문에 진행되는 대략의 상황은 전해 들었죠. 그런데, 간이식 예정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주머니가 오셨습니다.


 



"어? 수술 받고 이렇게 빨리 퇴원했어요?"


"아…. 예…. 수술 못 했어요. 딸아이가 수술을 너무 무서워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오다가 우울증이 심해져서…."



 


19살 젊은 여자가 복부에 15cm가 넘는 흉을 남기는 수술을 감내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을 해보세요. 가족관계가 깨질까 걱정이 되었는데, 얼마 뒤 간동맥색전술을 하러 입원했을 때 한 침대에 둘이 같이 올망졸망 이불을 덮고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더군요.



 


하지만, 유일한 희망이 없어진 마당에 아주머니의 우울과 불안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어느 날은 저에게 ´선생님, 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막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는 것은 봐야하는데….´라고 하실 때는 참 대답하기 힘들더군요. 그래도 현재 치료하는 색전술에 반응이 좋으니 힘내자고 말을 했지만, 보통 반응이 좋아도 2~3년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은 아주머니도 이미 알고 계셨죠.



 


그리고 지난여름 예약된 진료일에 차트는 제 진료실에 있건만 아주머니는 오지 않으셨습니다. 아마 서울의 병원으로 다니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조금 불안하더군요. 병원에 잘 다니던 분들이 안 오시면 대부분은 사망하셔서 안 오시는 거거든요.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희망, 신이 인간에게 준 마지막 남은 선물


몇 주 전, 예약명단에 이름이 보이더군요. 진료실에 따님과 같이 들어오는데 살도 좀 찌고 얼굴도 많이 밝아지셨더군요. 반가워서 "그 동안 서울##병원으로 다니고 계셨죠? 얼굴이 너무 좋아 지셨네요."라고 물었습니다. 쭈뼛쭈뼛 대답하시는데, 그 동안 아무 병원에도 안다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싱겁게 먹고 소일꺼리하며 집에서 지낸다네요.



 


B형간염 바이러스의 활동 정도에 따라 이렇게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간암이 진행했을까봐 걱정이 되더군요. 조금 화를 내며 오늘 당장 혈액검사하고, CT 찍어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와~.


 


간암이 있던 자리에 전에 색전술하며 넣어놓은 방사선표시제가 그대로 꽉 차있을 뿐, 그 자리에 암이 보이지도 않고, 주변에 새로운 암이 생긴 것도 없더군요. 아주머니나 같이 온 따님이나 저나 너무 기뻤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B형간염바이러스도 비활동기이고, 간기능도 아주 많이 좋아졌고, 간암도 잠잠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정호 청주성모병원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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