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별에서 와도 똑같다.

어느 별에서 와도 똑같다.
한국은 드라마를 좋아한다. 가감 없이 거센 드라마 시대가 지나가고 안방 드라마가 새로운 판형을 제시하고 있다는 여론이 높다. ‘봄의 왈츠’, ‘굿바이 솔로’에 이어 MBC가 ‘넌 어느 별에서 왔니’를 선보이면서 이 여론을 증명하는 듯하다. 그러나 ‘넌 어느…’가 새로운 상을 제시 할 수 있을 지는 아직 의문이다.

강원도 오지 첩첩산골의 한 소녀가 엄청난 부잣집 따님으로 밝혀지며 펼쳐지는 이야기, ‘넌 어느 별에서 왔니’는 정려원(김복실 役), 김래원(최승희 役), 강정화(윤미현 役), 박시후(한정훈 役)를 부활카드로 내세우고, 이 세상 모든 이가 저마다 우주의 중심이며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서 재미와 감동을 주고자 제작되고 있다.

다행히도 방영 첫날 12.2%(TNS미디어코리아 조사)를 기록하며 산뜻한 출발을 보였지만, 전체적인 인물 구성과 스토리 라인이 기존에 선보여진 드라마와 별다른 차이점을 보이지 않아 “또?”라는 인상이다.

KBS ´풀하우스´로 유명해진 스타 PD 표민수가 메가폰을 잡아 주목받고 있는 ‘넌 어느…’는 하루아침에 인생 역전한 그녀가 과연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제시하고 그 ‘이면’을 파헤치고자 한다. 6화까지 방영된 지금, 아직은 시기상조라 할 수 있으나, 그 물음마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유리구두를 신은 그녀가 신이 잘 맞는지 아닌지 파헤쳐 보겠다는 의도는 좋으나,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 구도와 장기화된 트렌드(Long term Trend)를 어떻게 깰 것인가 의문이다. 또한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젊거나 늙거나, 곁에 연인이 있거나, 혹은 없거나(기획의도 발췌)’와 같이 모든 사람을 철저한 대립구도로서 범주화하고 이항대립 시키는 드라마가 과연 어떠한 변칙 범주를 제시할 것인가도 주목된다.

또한 ‘넌 어느 별에서 왔니’는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지적되는 출생의 비밀이 지적, 어느 별에서 왔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복실에서 혜림으로 극적인 신분상승을 해, 5화에서 유리구두에 발을 들여놓는 복실이 승희의 옛 연인의 동생이라는 점에서 어떠한 해결점을 제시할지도 의문이다. 가제가 ‘공주님’이었던 만큼 신데렐라 드라마의 틀을 철저히 지키기엔 다행히도 표민수 PD를 보는 눈이 많다. 그가 이번 드라마를 통해 전형적인 트렌드 드라마의 행보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과거 그의 전작과 같이 진한 감동을 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또?”라는 인상을 받기 쉬운 이유는 다른 곳에서도 발생했다. 바로 드라마의 배경이다. 무대는 크게 둘로, 호주와 서울-강원도로, 해외로케가 없으면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없다고 할 만큼 ‘넌 어느…’도 호주를 첫 무대로 삼았다. 호주는 승희와 죽은 연인 혜수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하나의 공간성을 갖고 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내용은 없고 영상만 남아있는 장면이 곳곳에 눈에 띈다. 드라마 시작 초반 시청자의 이목을 끌어보겠다는 얕은 심보가 느껴진다. ‘넌 어느…’뿐 아니라 대부분의 트렌드 드라마는 해외로케를 약방의 감초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또한 서울과 강원도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립시키고 강원도를 낙후된 지역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빈익빈 부익부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적용되고 있는 부분이다. 남성을 우월 된 위치에, 여성을 남성보다 낮은 지위로 설정하는 것도 수많은 지적에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부분이며, 이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와 사실상 동떨어져 시청자에게 상대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위에서도 지적한 것과 같이 세상의 변칙 범주가 철저히 무시된 드라마는 수도 없이 많다. 결말 또한 주인공의 사회적 지위는 상위에 있고, 공간성은 대부분 서울과 같은 대 도시로 끝을 맺기 때문에 비록 해피엔딩이라 할지라도 다수가 보기엔 결코 탐탁지 않은 결말이다.

다만 기대할 것이 있다면, 표민수 PD가 코미디와 정극을, 50대50으로 뻔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뻔하지 않게 그려 보고픈 욕심(9일자 한국일보 발췌)에 있다. 지금까지의 방송분은 그의 초심이 지켜져서인지 연인과 가족의 사랑이라는 뻔한 스토리가 뻔하게 웃기고 뻔하게 감동을 주고 있다. 스토리가 위의 초심을 지키고 있다면, 드라마의 새로운 시도는 비장의 무기이자 변수다. 복실을 키워준 어머니 순옥의 삶을 애니메이션으로 액자식 구성한 것(4화)과 간간히 들리는 효과음은 시도는 좋지만 걱정이 앞서는 부분이기도 하다. 같은 예로 MBC 드라마 ‘궁’을 들 수 있는데, ‘궁’은 드라마 초반 원작을 철저히 따르고자 모자이크 처리, 네티즌 용어, 채경체 등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다행이도 반응이 좋아 그 힘으로 고정 시청자(폐인)가 생겨났다.
그러나 드라마가 결말로 도달하면서 코미디를 전면 배제하고 정극으로 급변화 함에 따라 시청률에 발목이 잡혀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약이 독이된 것이다. 표민수 PD의 말처럼 욕심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반면 SBS ‘마이걸’의 경우 코미디와 정극의 비율이 대등하게 잘 지켜진 경우로, 상상scene, 마지막 회의 재희, 한채영 등장으로 끝까지도 즐겁게 끝이 났다. 비율적인 면에서 본다면 대등하지만 ‘마이걸’도 인물간의 갈등구조가 고조됨에 따라 이러한 시도가 뒷전이 되기도 했다. 표민수 식 코미디와 정극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 없이 사랑에 대한 무거운 질문 뒤에 밝은 이야기 풀기가 되었으면 한다.

‘넌 어느 별에서 왔니’는 어쩌면 전형적인 트렌드 드라마다. 즉, 볼만한 드라마이며, 아무리 드라마의 구성이 진부하다 해도 결국 시청자는 좋아라하는 드라마인 것이다. 하나의 드라마가 드라마에 대한 즐거움을 끝이 나고, 이것이 기억이 되어 나를 대신해 현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현실이 모이고 모여서, 또 다시 트렌드 드라마가 된다. 이 연속선상을 해소하고자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 새 얼굴이 나오는 드라마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도 트렌드가 장기화 될 때 마다 나오는 하나의 트렌드에 불과하다.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한국 드라마는 모든 것이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어쩔 수 없듯 시대가 지나고 세대가 바뀌어도 ‘사랑타령’은 계속된다. 문제는 한국 드라마가 내용의 일괄성은 있되, 내용의 독창성은 없다는 트렌드 드라마의 숙명에 있다.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메시지를 가공해야하는 지상파 방송이 사랑이라는 동일 된 코드를 제시한다 할지라도 독창성은 화면에서 보이는 것이 다인 경우가 많다. 독창성을 화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때론 유리구두를 벗어던지고 가죽구두, 운동화와 같이 사랑이 조미료가 된 액션, 추리 등 새로운 장르의 기회요인을 찾는 것이 시급한 때라 생각한다. 아무리 유리구두가 예쁘고 갖고 싶다 할지라도 유리구두는 오래 신으면 발이 아프고 자칫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정혜림 / inyun03@naver.com

정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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