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별 가족 위에 조폭 있다.

[미디어 비평] 별의 별 가족 위에 조폭 있다.
사회가 변하고 가족이 변하고 있다. 전통적 형태 가족이 핵가족화 된 이후 우리 가족은 점점 개인화되고 해체되고 가족 아노미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9시 뉴스가 끝나고 시작하는 홈드라마는 하나의 소재로서 새로운 가족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때 아닌 가족드라마 열풍에 KBS는 ‘별난 여자 별난 남자’, ‘소문난 칠 공주’를 통해 중산층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SBS는 가족의 의미를 한 단계 넘어 혈연을 강조하는 ‘하늘이시여’와 결혼이라는 제도에 갇혀, 가족이라는 무게가 상실된 중년 남녀의 ‘연애시대’를 선보이고 있다. 가족의 실체가 그렇다고 말하는 보통의 홈드라마와 달리 KBS ‘굿바이 솔로’는 집이라는 공간성 보다 해체된 가족을 전면에 부각한다. 하지만 ‘굿바이 솔로’와 ‘불량가족’은 완벽한 ‘equal’로 볼 수 없다. ‘굿바이 솔로’가 온통 자신밖에 없는 사람들의 슬픔과 이를 보듬어주지 않는 비정한 이웃 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량가족’은 우리 시대 가족과 가족 관념에 대해 어떠한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

교통사고로 진짜 가족을 잃어버린 초등학생 이영유(백나림 役)의 기억을 회복시키기 위해 일회용 가족인 유사가족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드라마는 단 한 번도 가족을 가져본 적 없는 조폭 김명민(오달건 役)이 가족을 통솔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진짜 가족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과 가족애를 그린다. 달건 뿐만 아니라 ‘불량가족’의 가짜가족은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빚도 있고, 퇴직도 당한다. 부모와의 관계가 소원하고, 자식을 먼 곳에 보낸 기러기 아빠도 있다. 여기서 ‘나’의 첫 번째 가족이 문제가 된다.

‘불량가족’을 ‘하나의’ 가족 드라마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인물들의 첫 번째 가족이 한국 사회 가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가족박물관’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빈자리를 느끼며 살아온 김명민과 남상미(김양아 役)를 비롯하여 이혼 후 생활고에 찌든 임현식(장항구 役)과 여운계(박복녀 役), 아내의 불륜에 이어 캐나다에 아이들을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 강남길(조기동 役), 남편 없이 키운 자식을 잃고 힘든 날을 보낸 금보라(엄지숙 役)를 통해 가족 파편화와 해체화의 심각성을 피로한다.
1인 세대, 편부모, 소년소녀가장, 기러기 아빠의 사회적 현실을 고대로 드라마에 올려놓고 드라마는 대안가족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의 해체된 가족을 비록 돈 때문이지만 나의 두 번째 가족으로 만들게 한다. 억지로 엮인 가족은 한 집안에 출퇴근하면서 제법 가족 같은 모습으로 원래 가족 해체의 원인이 되는 사회 현실에 일침을 놓는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인생은 고달프고 매달 빚까지 갚아야 하는 대안가족의 식구들 위에 ‘조폭’ 김명민이 있다. 어떻게 보아도 콩가루 집안인 가족을 통솔하는데 문제는 왜 조폭이냐는 거다. 굳이 조폭이어야 할 이유가 있냐고 한다면, ‘불량가족’에는 조폭이 없으면 얘기가 안 통한다. 조폭은 ‘가족 이데올로기’ 환상에 젖어있던 시청자에게 주먹과 들이대기로 단순 명쾌한 논리를 제시하기에 ‘딱’이다.
‘불량가족’에는 자본주의에 존속하는 조폭(독고사장)과 존속하지 않는 조폭(달건)이 있다. 시청자는 달건의 손을 들어준다. 달건이 지배 권력인 백화점에 대항하는 미리내 시장 사람들 편에 서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갖는 독점 지대를 비판하고 빈익빈 부익부를 해소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게다가 달건은 가족에게 화목할 것을 강요하고 ‘흙냄새 맡게 해줄까’라며 협박까지 한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의 문제에 가장 단순하게 다가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가족을 통솔하며 그는 가족에게 ‘화목’을 요구하지만 ‘화목’을 알지 못한다. 일방적인 ‘화목’강요로 시청자는 웃을 수 있지만, 따끔한 질문을 받게 된다. 가족의 필요조건이 있는데 당신네 가정은 왜 화목하지 않느냐고. 드라마에서도 가족 구성원은 모두 있다. 하지만 화목하지는 않다.
변수는 대안가족이 얼마나 친 가족 같은지 확인하는 나림의 진짜 가족 외삼촌이다. 가장 우리네 옆집 아줌마와 가까운 이 변수는 가족의 화목을 간접적으로 강요하는 요인으로 인위적으로 가족의 화목을 조성한다. 반대로 브라운관 속 가족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화면 속(나림 삼촌에게는 매일 밤 9시에 찍어 보내는 가족사진) 이데올로기를 쫓다 내 가족을 돌보지 못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의 존재다. 외삼촌은 가족으로서 역할 할 수 있지만, 가족의 존재는 될 수 없다. 외삼촌이 대행업체를 운영하는 달건에게 부탁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나림을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달라. 이론적으로는 쉬운 말이지만 ‘불량가족’에겐 내 가족 건사도 어렵다. 생전 남이었던 그들이 정말 가족이 되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현실도 그렇다. 한 가족이 행복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가족의 구성원이나 의식주 등은 갖춰질 수 있다. 그러나 필요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SBS ‘긴급출동 SOS 24시’를 보더라도 전제조건은 있지만 충족되지는 못한다. ‘화목’을 알지 못하는 달건의 입장에서 조건은 갖춰져 있는데, 왜 화목하지 못하냐는 질문은 당연하다. 결과적으로 ‘불량가족’을 결성시키는 인물로 조폭을 지목, 우리사회의 가족 제도를 풍자하기에 달건의 입을 빌린다. 또한 조폭은 권력과 권력 간의 문제(백화점과 미리내 시장), 조직과 개인 간의 문제(가족 구성원과 개인)에 대해 사회적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어렵지 않게 멜로라인을 형성한다. 피아노와 요리를 배우는 조폭처럼 적절히 가미된 코믹에 시청자는 유머를 느끼고 민감한 직업군이 아니기 때문에 과장과 희화의 자유도 부여된다.
조폭은 조폭인데 또 굳이 ‘오달건’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가족이란 경험의 부재로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서 가족에 대해 백지의 시선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이라는 패러다임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지기만 하면 단란해야 한다는 허구에 대해 통렬한 풍자를 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뒤에 감춰진 가족제도와 사회 풍자를 하여 시청자의 허를 찌르지 위함이다. 사회가 변화하고 드라마는 그때그때 사회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역사 교과서 같이 담아낸다. 급격하게 변화한 가족의 형태에 가족드라마 열풍이 분 이유도 서로 비슷한 처지다라며 너도나도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불량가족’에는 시대의 단편만 있지 않다. 노년층, 중년이 겪어야 했던 가족도 있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젊은 세대 가족도 있고, 아직 어린 새싹이 겪고 있는 가족의 부재도 있다. ‘불량가족’은 사회 변화와 가치관 변화 그리고 가족 변화를 폭넓게 그리고 있다. 당연하게 가족의 모습만이 아니라 가족이 된 서로가 서로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고마움과 어려움은 남이기 때문에 직설적이다. ‘불량가족’에는 가족이 많다. 가족에 대한 불온하지만 참신한 생각이 만들어낸 ‘불량가족’은 ‘너무 안 불량한’ 드라마로 새삼 가족이라는 단어와 그 의미를 떠올려보게 한다.

정혜림 / inyun03@naver.com

정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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