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품행제로에는 품행제로

[미디어 비평]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품행제로에는 품행제로
일요일 오후 5시 55분 지상파 3사는 웃음 핵폭탄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SBS는 토요일에 방송되던 ‘X맨’을 ‘일요일이 좋다’로 편성, 시청률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MBC ‘일밤’은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부활 이후 시청률 따라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4월 9일 13.2%로 시청률 1위 탈환).

SBS, MBC가 연예인을 기용 2시간 동안 웃음을 주도하고 있다면, KBS ‘해피선데이’는 어린이, 청소년, 연예인구성의 세 코너로 평균 12.8%(TNS미디어코리아 조사)를 기록, 일요일 저녁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방송으로 제작되고 있다.

‘해피선데이’는 연예인이 집단으로 출연하는 순수 오락 버라이어티 ‘여걸식스’를 제외하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6년 1월 22일 종료)’를 필두도 현재 ‘품행제로’까지 리얼리티 쇼를 차례차례 선보이고 있다. 미국의 리얼리티 쇼가 자극적인 설정을 통해 출연자 개별의 매력을 부각 시켰다면, ‘품행제로’는 최민수, 김제동과 품행제로 6인방 간의 긴장감 속에 진행된다. 한국식 리얼리티 쇼라 볼 수 있다.

‘품행제로’는 기존의 국내 리얼리티 쇼와도 그 성격이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자가 즐겁게 감동하며 보던 기존의 방식과 달리 ‘품행제로’는 긴장감과 아슬아슬한 경계선이 프로그램을 지배한다. 단, 긴장감과 경계선은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자, 프로그램이 안고 있는 최대의 문제점이다.
이 시대 고교생들의 파란만장한 리얼 성장기를 그리는 ‘품행제로’는 막나가는 6명의 사부로 최민수를 기용했다. 유행처럼 붉어지고 있는 연예인 교편 잡기에 제작 초반 KBS가 시청률을 지나치게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허나 독특한 학생들을 다루기에 독특한 사부로 최민수만한 이가 또 어디 있을까. ‘품행제로’는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같이 전문적인 솔루션을 통한 교육 방식이 아니라, 말 안 듣는 아이, 매로 다스린다는 식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품행제로에는 품행제로인 것이다. 얼마 전 민언련이 선정한 ‘2월의 유감 방송’으로 뽑히는 등 솔루션 프로그램으로서 의도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사람의 품행이라는 것이 일종의 체벌이나 사부의 카리스마로 제압되는 사안이 아님에도, 이 방식을 강행한 데에 있다.
국내외적으로 리얼리티 솔루션 프로그램은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문제는 ‘품행제로’가 성격상 기존의 리얼리티 솔루션 프로그램을 그대로 답습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기존 리얼리티 솔루션 프로그램이 개인이 가진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관련 전문가가 당사자 개인적인 삶에서 문제점을 개선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 했다면, 품행이란 객관적 지표가 애매한 사안은 방향을 달리 할 수밖에 없다. 품행제로 6인방 김동현, 박태양, 이준혁, 계리사, 이환, 정기욱만 보더라도 품행의 기준은 지극히 모호해 지며, 주관적이 된다.

그 결과 교육 방식은 큰 차이를 보인다. 검도로 심신 수련하고 번지점프, 얼음물에 들어가기를 통해 삶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목장에 가서 노동의 가치를 배우고, 사부와 함께 목욕을 하며 인생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사부와 6인의 중재역할을 하는 김제동과 거침없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어 노현정과 함께 언어의 세대 차이를 줄이고, 서로의 언어습관을 이해하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접근 방식과 교육의 방법은 다르지만, 교육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 말 그대로 눈높이 교육이다. 누군가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머리로 깨우치는 것이 ‘품행제로’의 산교육이다.

행동이 거칠고 단정하지 못하다 하여 학생들을 품행제로라 명하고 품행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문제 학생들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그램인지, 불량 캐릭터와 카리스마 사부의 대결을 통해 극적인 쇼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인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프로그램 ‘품행제로’가 스스로 ‘품행제로’라 결정타를 날린 것은 지난 4월 2일 방송분이다. 교육과 단합을 위해 지어진 합숙소 록산관에서의 첫날밤, 학생들은 사부와의 약속을 어기고, 새벽에 술을 마시기 위해 여섯 명 전원이 록산관을 빠져나갔다. 학생들의 일탈 행동도 문제지만, 이를 다룬 ‘품행제로’ 제작진의 품행도 의심된다. CCTV로 촬영된 내용을 모자이크 처리만 한 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고, 학생들의 사생활은 여과 없이 공개되었다. 제작진은 록산관 밖에서 학생들의 일탈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주위한번 주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통해 학생들에게 각성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라 해도, 오락 프로그램이라는 전제하에 프로그램의 성격을 벗어난 데에는 문제가 있다. 제작진은 이에 “나아진 모습을 잠시 동안 보여주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들이 겪고 있는 노력과정을 보여드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편집 과정에서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기존 계획가 어긋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결국 스스로가 ‘품행제로’ 제작진임을 시인한 셈이다.

방송은 시청자에게 Need와 Want를 적절히 제공해야 한다. 방송은 ‘품행제로’여선 안 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청하는 시간대인 만큼 제작진은 시청자의 다양한 시각을 고려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인 솔루션 방송(Need)과 재미있고 유익한 리얼리티(Want)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번지 점프, 얼음물에 뛰어들기 같은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를 추구하는 쪽이 뜨거운 반응을 끌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출연 학생들의 문제가 무엇이고, 변화하기 위해 어떠해야 하는가도 명백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현재 일약 스타덤에 오른 여섯 학생의 10대 캐릭터 강조와 사부와의 맞대결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솔루션(전문적 의견)과 사부의 가르침 방식이 적절히 배합되어야 한다. 어설픈 해결책과 공익성 포장을 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을 것을 알기에 제로에서 하나하나 쌓아가도록 해야 한다.

변화를 보지 않고 결과만을 보게 된다면 ‘품행제로’는 취지를 상실한다. 학생들이 순식간에 품행이 단정해져서도 안 되며, 금세 해피엔딩을 맞이해서도 안 된다. 어떻게 해피엔딩을 이끌어 낼 것인가가 미지수이지만, ‘품행제로’는 지금의 긴장감을 고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의 반감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학생들의 노력과정을 보여주는 제작진의 노력도 필요하다. 공익적 오락 프로그램의 적정한 위치를 찾는 실험을 통해 더 이상 ‘품행제로’를 품행제로로 보지 않도록, 과연 프로그램의 품행지수가 몇 점인지 묻지 않도록 해야 한다. ‘품행제로’가 한때 뜨거운 감자이긴 했지만, 품행제로였다고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

정혜림 / inyun03@naver.com

정혜림 기자
저작권자 © 뉴스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