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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연예스포츠] 1980년대 중반, 민방이 신설되고 CA-TV가 시험방송 되던 시절에 방송전문 프로그램 전문프로덕션의 역할이 중요시 되던 타임에, 정부에서는 방송법 시행령에서 외주 제작의 비율을 20%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발표를 하였다.
뉴미디어 시대의 소프트웨어를 담당할 프로덕션으로 ‘시네텔서울’이 탄생을 하였다.




TV전문 외부제작사로 84년초 출발한 ‘시네텔서울’(대표 전옥숙)은 MBC에 ‘나의 전쟁범죄 고백’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처음 납품하면서 우리나라의 프로덕션 시대를 연 최초의 제작사였다.
이후 ‘시네텔서울’은 85년에 ‘웃음소리’(최인훈 원작/심현우 연출)‘우리가 떠난 도시’알수 없는 일들‘등의 드라마를 계속적으로 방영을 하였다.

그리고 방송기자재(무비, ENG카메라, E-FLEX효과기계, 편집기, 스위처,등)를 방송시스템과 똑같이 구비를 하였다.
인적구성도 초창기 1기멤버로는 심현우,임학송,이동희 씨등 전속 연출진과 정지영,장선우, 필자,등 영화감독으로 참여를 하였다.
주로 ‘MBC베스트셀러극장’ ‘KBS TV문학관’등의 단막드라마와 ‘해외 촬영 다큐멘터리’등을 만들어 왔다.

필자는 ‘시네텔서울’이 84년도 창립 당시에는 MBC본사에서 ‘베스트셀러극장’을 객원연출로 20여작품 참여를 하다가 88년도에 ‘시네텔서울’에서 초빙하여 홍익대 앞에 있던 ‘시네텔’의 전옥숙 대표를 만나 인연이 되어서 그후 10여년간을 ‘시네텔서울’에서 방송일을 하였다.

‘시네텔서울’에서 만든 MBC베스트셀러극장은 ‘돈그리기’‘한소년’‘여느날의 실종’‘이 강산에 태어 나’등을 만들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드라마 제작의 외주발주는 거의 없어지면서 소위 교양물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 이유는 우선 방송사의 발주가 무계획적이고, 불규칙하고, 급히 ‘내던지기’식의 외주발주를 한 점이 있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작비가 방송국 자체 수준 보다 현저히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외주 프로덕션으로 말미암아 드라마의 경우에는 편당 방송사에서 나오는 제작비에서 10%내외의 이익을 가지고는 한편의 평균제작기간안에 프로덕션이 매달리기가 매우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인기 절정에 있던 단막극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며 ‘미니시리즈’시대가 도래 되기 시작하면서 외주 프로덕션의 자생력을 가지고는 드라마제작을 하기에는 힘에 겨워 갔다.

그래서 돌파구를 찾느라고 다큐멘터리, 드라마타이즈의 문학프로그램, 중계차를 이용한 교양프로의 활성화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내에 스튜디오를 짓고, 부조대신에 중계차를 구입하여 소위 스튜디오메이킹으로 전환을 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시도한 드라마타이즈 문학프로그램으로 91년도에 창립한 SBS에서 나는 ‘작가와 화제작’을 중계차로 이용하여 만들기 위하여 5대의 스튜디오 카메라의 스윗치를 넘기는 ‘큐’사인의 연습을 하고 실전에 임하였다.

그때 ‘SBS‘작가와 화제작’을 격주로 만든 파트너로 홍상수감독이 함께 하였다.
그후에 홍상수 감독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감독 데뷔를 하여 세계적인 감독으로 등극을 하였다.....

결국 우리는 ‘SBS작가와 화제작’으로 ‘제19회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상’을 받아냈다.....(계속)
<김문옥(영화감독/본지편집고문/(사)한국영화감독협회 부이사장)moonok07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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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옥기자 mr732177@esports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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