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석유 ‘키핑’에 ‘적립서비스’까지

[석유가스신문/뉴스캔]


 


유해메탄올 함량 갈수록 높아져
벌금내기 위해 또다시 불법 판매


 


이번이 3번째다.


전국적으로 길거리 유사휘발유가 가장 극성을 부린다는 일산 자유로나 강변북로 일대 조차 최근 들어 불법 판매상이 자취를 감췄는데 해를 넘겨 찾은 인천 남동구 일대는 예전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1~2년전 단속반원들과 수차례 동행했던 그 자리 그대로 유사휘발유 판매상들은 둥지를 틀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은 유사석유 사용자 처벌 법안이 시행되면서 돈벌이가 예전만 하지는 못하다는 점 뿐이었다.


22일 오전 9시.


인천 남동경찰서 앞에는 한국석유관리원 김월중 기술상무 일행을 비롯해 현지 경찰과 인천시·남동구청 공무원, 소방서 관계자들이 집결했다.


석유관리원과 경찰 합동으로 6월 한달 동안 전국적인 유사석유 단속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다 최근 유사석유의 심각성을 인식한 청와대에서도 강력한 근절 대책 마련을 주문한 터라 분위기는 여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특히 석유관리원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강력한 길거리 유사석유 판매상 단속을 벌인 끝에 일산 자유로 등 상습적인 취약지대의 불법 판매행위가 대부분 사라졌지만 유독 인천 남동구 일대만 끈질지게 살아 남고 있는데 대한 단속반원들의 스트레스도 적지 않아 보였다.


인천 남동구청 관계자는 남동구에 공단이 들어서있고 사통팔달의 지리적 영향 때문에 유동인구가 많아 유사석유를 찾는 수요가 줄어 들지 않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유사석유 판매를 생계형 범죄로 해석한 검찰이 가벼운 벌금형으로 종결하는 대목도 불법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기발한 고객관리


남동구를 중심으로 인천 전역에 총 6개로 편성된 단속반원들이 투입돼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한 결과 총 37개 길거리 판매상을 점검했고 이중 13개 업소가 적발됐다.


8개 업소는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나머지 업소들은 단속 사실을 통보받은 탓인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날 단속 결과 석유관리원은 주유 모터 5개와 유사석유 18리터 들이 145통과 10리터 들이 3통 등 총 2640㎘를 압수했다.


단속 과정에서는 이색적인 장면들도 목격됐다.

사진 위 우측의 도장은 단골고객에게 주유 횟수를 적립할 때 사용하는 도장이다. 아래는 깔대기로 만든 주유기


유사석유도 단골 고객이 있고 고객관리를 한다는 점이 일단 눈에 띄었다.


한 유사석유 판매상의 불법 가건물 안에서는 외상고객과 블랙리스트 명단이 적혀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외상리스트에는 구체적인 고객 차량번호와 미수금액이 적혀 있어 상습적인 유사석유 구매자인 것으로 판단된다.


블랙리스트의 경우 단골고객중 미수금을 회수하지 못한 경우로 해석된다.
이날 단속에서 적발된 또 다른 여성 판매상은 유사석유 용기를 압수하는 단속반원들에게 고객들이 보관해놓은 제품들은 남겨 달라고 항의했다.


일종의 키핑(Keeping) 개념인 셈으로 주유 용량을 넘긴 일부 고객들은 유사석유 용기의 겉면에 자신들의 차량 번호를 기록해 놓고 보관해놓고 있는 것인데 이 제품은 판매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이미 팔린 만큼 압수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단속반원들의 대응은 완고했다.


‘유사석유 보관 사실을 남긴 고객들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이 경우 이곳 판매점에서 유사석유를 구입한 고객의 신원이 확인되면 석유사업법령에 근거해 유사석유 사용자로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유사석유 구입자가 줄어든 탓인지 주유소에 버금가는 고객관리 시스템도 도입되고 있었다.


한 유사석유 판매상은 자체 제작한 도장을 사용해 단골고객의 주유 횟수를 확인해주고 일종의 적립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유사석유 구매 고객에게 정체 불명의 첨가제도 무료 제공되고 있었는데 첨가제 용기의 보관상태나 겉모습 등이 조악하고 불결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어 실제로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한 유사석유 판매점에는 단골고객과 대금 미결제를 의미하는 블랙리스트 명단이 적혀 있었다. 사진 아래는 고객에게 서비스로 제공되는 야구르트와 첨가제


또 다른 유사석유 판매상은 아이스박스에 요구르트를 저장하고 고객에게 음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길거리 유사석유 판매상들도 나름대로의 고객관리기법을 동원하고 있는 셈으로 유사석유 판매 시장도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유사석유 품질 갈수록 조악해져


이번에 적발된 유사석유 판매상들은 석유사업법상 유사석유 판매 행위로 처벌받는 것 이외에도 위험물안전관리법상 무허가 위험물 저장 및 판매행위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또 최근에는 상습적인 유사석유 판매상들에게 이례적으로 벌금형을 뛰어 넘어 형사처벌이 내려지기도 하는데 이런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남동공단내 유사석유 판매상들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배경은 몇가지 이유로 풀이할 수 있다.


생계형 범죄라는 이유로 여전히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 첫 번째 이유다.


동일인이 수차례 적발될 경우 가중 처벌되는 점을 감안해 아르바이트생들을 동원하는 경우도 목격되고 있다.


유사석유 판매행위로 한번 적발되면 추가적인 판매행위에 나서더라도 연속범에 대해 추가 기소를 하지 못하는 한계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도 문제다.


확정 판결 이전까지 검찰이 공소권을 행사하지 않는 점을 악용해 그 기간동안 마음 놓고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영세 판매상들은 벌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또 다시 유사석유를 판매할 수 밖에 없다는 속사정도 털어 놓는다.


실제 이날 단속과정에서 적발된 한 여성 판매상은 “벌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며 또 다시 유사석유를 판매할 수 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이와 관련해 이번 단속에 동원된 경찰과 구청 관계자들은 옥외광고물법 등 다양한 법률을 적용해 유사석유 판매 거점의 흔적을 모두 없애는 작업까지 병행했다.


단속 이후 판매 관련 설비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경우 언제든지 재 영업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입간판과 주유 장비 등의  시설물을 모두 압수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관리원 김월중 상무가 압류 유사석유를 점검하는 모습(사진 위), 고객이 보관해놓은 유사석유를 표기하기 위해 차량 번호를 적어 놓은 모습


이 경우 옥외광고물법에 근거한 불법 광고물 설치 혐의까지 적용하면 최고 5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사용자 처벌 방식 변경 고민돼야


유사석유 사용자들이 근절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유사석유 사용자도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점이 폭넓게 홍보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최근의 고유가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위법인줄 알면서도 상습적으로 유사석유를 사용하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판매상들의 진술이다.


유사석유 사용자들을 현장에서 적발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경우 담당 행정관청의 불필요한 행정 수요를 불러 온다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날 단속에 동행한 남동구청 관계자는 “유사석유 사용자에게 과태료 스티커를 발부하는 경우 담당자가 과태료 징수를 독촉하고 징수하는 업무까지 떠 맡게 되면서 불필요한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며 “유사석유를 구입한 차량 소유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등 보다 효과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시중에 유통되는 유사휘발유의 성분은 갈수록 조악해지고 있다는 것이 석유관리원측의 분석이다.


유사휘발유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인체와 환경에 극히 유해한 메탄올을 함유하는 경향이 짙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에 적발되는 유사휘발유는 메탄올 함량이 20~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석유관리원 신성철 수도권지사장은 “과거 전형적인 유사휘발유는 톨루엔과 솔벤트가 5:5의 비율로 혼합됐는데 유사석유용 용제 소비가 늘어나고 중국 석유화학 수요가 팽창되면서 값싼 메탄올을 혼합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5월 기준 톨루엔과 솔벤트 유통 가격은 각각 리터당 986원과 600원 정도로 형성되고 있는데 반해 메탄올은 253원으로 상대적으로 크게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적발되는 유사휘발유의 조성을 감안해 메탄올과 톨루엔을 각각 25%씩 혼합하고 나머지 50%는 솔벤트로 채울 경우 제조원가는 리터당 약 605원 정도로 계산된다.


만약 메탄올을 혼합하지 않을 경우 유사휘발유의 제조원가는 더욱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셈인데 문제는 메탄올의 유해성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모든 알콜은 기본적으로 부식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메탄올의 부식성이 가장 높다.


일본에서도 1980년대 메탄올이 함유된 연료가 많이 유통됐지만 자동차 연료계통의 탱크나 파이프 등에서 부식이 발생됐고 고무가 재질인 호스에 변형을 일으키는 등의 부작용이 보고된 바 있다.


그 심각성이 알려지면서 일본내 유사휘발유 제조업자들조차 메탄올은 사용하지 않을 정도다.


메탄올은 시력을 잃게 하거나 심하면 혼수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유독성도 강하다.


메탄올이 과다 혼합된 유사휘발유를 주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증기에 운전자가 노출되거나 주행중 미연소된 메탄올이 차량 내부에 흡입되는 것만으로도 유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석유관리원 신성철 수도권지사장은 “과거와 달리 최근 유사석유 제조상들은 값싼 원료들을 단순히 혼합, 공급하는 추세로 특히 메탄올의 함량이 높아지고 있는 점은 인체나 환경에 대한 위해는 물론 차량 운전자의 안전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강도 높은 단속 활동을 벌이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 스스로가 유사석유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구매를 자제하려는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석유가스신문 김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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