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소박했지만 풍요로웠던´ 유년시절을 찾아...경북 군위군 ´생가´ 미니방문기

올 들어 경상북도 군위군을 찾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아직 개발의 손때가 묻지않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족한 문화자원이 군위의 매력 포인트.

무엇보다 지난 2월 선종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유년시절을 보낸 초가집이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에 있어 전국 각지의 추모객들도 증가추세다.



추석을 1주일여 앞두고 가을 햇살과 바람이 제법 살갑게 느껴지는 24일 오후, 군위군이 ´사실상의 김수환 추기경 생가´로 관리하고 있는 이 초가집을 찾았다.

황금 들녘과 산, 조그만 학교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위치한 이 집은 생전 고인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작고 소박했다. 42.97㎡(약 13평) 크기의 이 집은 폐가 상태로 방치되던 것을 지난 2006년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사들여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지난 1922년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난 김수환 추기경은 네 살 무렵 아버지를 따라 군위에 왔다. 이곳에서 그는 소학교 5학년 과정을 졸업하고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할 때까지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방 두 칸, 부엌 하나가 고작인 단순한 구조지만 어린 학생이 성직자의 꿈을 키우기엔 한점 모자람도 없어 보인다. 주춧돌 위에 흙으로 벽을 쌓아올린 후 초가를 얹은 집 뒤에는 울창한 호두나무 숲이 자리 잡고 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나뭇잎 사각거리는 소리가 사뭇 정겹다.



추모객들은 대청마루에 놓인 주인 없는 방명록에 "김수환 추기경님, 영원히 사랑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또박또박 적으며 그를 그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 방명록도 벨벳 표지에 금박이 박힌 ´의전적´인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흔히 쓰는 공책이어서 또다른 소박함이 묻어났다.





지난 1993년 3월31일 김수환 추기경은 직접 이 집을 방문해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추기경은 “해질 무렵 어머니가 오실 때까지 마루에 나와 하염없이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하지만 위인들의 생가에 전시관이나 문화관을 만들어 업적을 기리는 외국에 비해 너무 초라한 외관이 찾는 이들의 마음을 어쩐지 쓸쓸하게 한다. 얼마 전에는 “이곳이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곧 개발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잘못된 보도까지 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터였다.



유미옥 군위군 문화해설사는 “군위군과 천주교가 이곳을 어떻게 보존하고 개발할 것인지에 대해 협의중”이라면서 “생전 고인의 검소한 삶에 따라 단순 참배지로 개발할지 더 큰 규모로 문화자원화할 것인지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으로 인류에 대한 구원과 사랑의 메시지를 몸소 전하고 가신 고인을 기리기 위해 어떤 규모로든 하루빨리 적절한 보존.개발사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종교.문화계 전반의 일치된 견해다.



*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군은 경상북도의 지리적 중심지로 614.16㎢의 서울과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2만5천명 정도. 1개의 읍과 7개의 면으로 된 이 고장은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 경주 석굴암 보다 1세기가 앞선 군위 삼존 석굴, 700여년 유교문화의 전통을 이어온 한밤마을 등 각종 문화 관광자원으로 최근 주목 받고 있다.


JTN 현화영 기자 / 사진 이충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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