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몇 명의 박근혜가 나타날 것인가?

박근혜는 어떤 길을 가고 싶어할까.

본래 어떤 모습을 가진 사람인지 자신의 진가, 본질을 선보일 것인가, 아니면 포장, 겉모습을 바꾸는 데 주력할 것인가.

둘 다가 답이다.

박근혜는 아직도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다시 말해 아직 미완성이란 말이다. 자신 스스로의 진가, 진짜 모습을 아직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그만의 컨텐츠를 확보하고 만드는 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쏟고 있다.

최근들어 여기에 자신을 보는 시각, 틀을 바꾸기 위해 유머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굳이 DJ의 길이냐, ´창´의 전철이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둘 다다.

박근혜의 변신은 두 가지 모두를 염두에 두고 있다. DJ의 성공과 ´창´의 실패.

박근혜는 DJ의 성공과 ´창´의 실패를 너무나 생생히 지켜봤다.

79년 부친의 사망 이후 무려 18년 간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하던 박근혜는 1997년 12월 전격적으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1952년 2월 2일생인 그의 나이 만 45세.

입당하자마자 바로 정계 원로들이 즐비했던 한나라당 선대위 고문에 덜컥 임명됐다.

20대때부터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긴 했지만,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순진한, 한참 옛날의 퍼스트레이디에 불과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또 겉으로 피상적으로 보기엔.

그러나 박근혜는 ´창´의 실패를 목도했다. 그의 실패를 통해 정치를 배웠고 시작했다.

"창은 도저히 안된다"며 독립한 적도 있다. 2002년 박근혜는 창과 결별을 선언하고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다. 불과 몇 개월만에 대선 직전에 다시 한나라당과 합당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 2002년 대선에서도 ´창´을 밀었다. 또 안됐다. 1997년 대선 때보다 더 처참한 실패였다. 또 한 번 그 실패를 똑똑히 지켜봤다.

그래서, 그래서... 박근혜는 엘리트 코스 한 길, 법조계에만 머물러온 ´창´의 길을 거부하고 ´세상학습´을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건 국회의원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정보와 국가 정책, 나라살림을 알 수 있는 국회상임위원회에 주목했다.

박근혜 전 대표만큼 주요 상임위 대부분을 경험한 의원은 찾기 힘들다. 그의 상임위 두루 거치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98년 4월 재보선에서 원내 진입(15대)에 성공한 박 전대표가 처음으로 택한 상임위는 산업자원위원회.(지금의 지식경제위) 그 자신 공대 출신(서강대 전자공학과), 공학도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는 자신의 취약분야가 경제 특히 실물경제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후 16대 때는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여기서 했던 다양한 공부가 자신을 친IT정치인으로 만들었다고 회고)통일외교통상위, 17대 시기에는 국방위와 행자위를, 18대 국회 전반기에는 보건복지위, 후반기엔 기획재정위원회로 옮겼다.

경제 외에도 외교,안보,통일,행정,복지 등 대부분의 주요 상임위를 경험한 셈이다.

공부 뿐 아니다. 스스로 컨텐츠를 만들고 채워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성격이 형성되고 있다.

아니 그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찾고 있는 지도 모른다.

꽁하고 꼭 닫혔던 예전과 달리 웃음, 유머가 많아졌다.

지난 2년간 세종시 갈등이 벌어졌을 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거의 3년간 그가 나온 방송화면이나 신문 사진에, 박 전대표가 웃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제 그가 웃기 시작했다. DJ가 변하기 시작한 시점과도 묘하게 일치한다. 대선을 2년여 앞두고다.

박 전대표에겐 앞으로 얼마나 변화의 폭과 강도를 늘이냐가 관건이다.

그 문제의 핵심은 박 전대표가 가지고 있는 ´상처´...그 한계를 어떻게 뛰어 넘느냐다.

남과 북의 총격에 사망한 부-모, 한때 마약에 탐닉했던 동생, 불편한 또 다른 동생과의 관계 등 평생 짊어져 왔던 가족의 불행, 그 자체는 ´상처´가 아니다. 가족의 불행에 따라 박 전 대표가 맺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표출된 뒤틀림이 ´상처´다. 그 상처는 자신의 겪은 그 험난한 일, 그 자체가 아니다. 그 후에 생긴 ´관계´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 스스로 어떻게 보듬느냐가 그의 최대 과제다.


일례, 79년 이후 은둔하던 시절 어느날, 박근혜가 선친의 총애를 받았던 과거 3공화국 당시 고위 관료와 어느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쳤다. 그는 전두환 시절인 그 때도 매우 잘 나가던 인물이라고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이 너무나 아끼던 인물이었고, 그만큼 ´영애´ 박 전대표에게도 무척이나 잘했던 인물. 박 전 대표가 반갑게 인사를 하려던 찰나, 그는 박 전 대표를 외면했고, 십 몇초 동안 둘 만이 있던 엘리베이터 안에는 정적 뿐이었다고 한다. 그 불편함의 최고치 경험을 잊지 못하는 박 전 대표는 이후 더 깊은 곳으로 은둔했다고 한다. 이런게 상처다.

이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거 부터가 근본적인 변화의 시작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그 인물이 만약 아직 생존해있다면, 그를 찾아가 손을 잡는 것, 이것부터 해야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한 명의 박근혜...앞으로 또 다른 모습의 박근혜가 몇 명 더 나타날 지는 2012년 환갑을 맞는 박근혜에게 달려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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