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의정일기

8월 9일 의정일기
아침 일찍 김포공항에서 하네다 공항으로 향했다. 태풍이 온다고 한다. 하늘에서 본 한반도는 더욱 아름답다. 동해안을 지나 일본열도로 향한다. 한일의원연맹 21세기 위원회 차원의 일본측 21세기위원회와 회동및 역사기행,한일 FTA 심포지움과 상호선거구방문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특히 문희상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하시모토류타로 전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는데 방미중이라서 내가 대신 권철현 간사장과 함께 대신 참석하게 되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사망후 일단 화장을 한 후 한달정도 시간을 갖고 장례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동경시내 무도관이라는데서 장례식이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반기문외교부장관과 김영삼 전대통령, 김수환 전 국회의장,한승주 전 유엔총회의장, 권철현,김명자의원등이 참석하였다.

일본황태자및 고이즈미총리와 나카소네,가이후,무라야마 전 총리들, 고노요헤이중의원의장, 오기 참의원의장과 최고재판소장 그리고 중의원,참의원등과 각국 외교사절이 모두 참석한 규모가 큰 장례식이다. 고인의 과거활동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는데 한일관계가 한장면도 안나오는 것이 현재의 한일관계의 냉랭함을 시사하는 것 같다. 자위대까지 동원되어 경비를 서고 있다. 의전관계를 말끔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데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일일이 참석자 명단을 안내하고 자리까지 안내하였다. 아베신조장관의 장례개시선언과 고이즈미,중참의원의장,최고재판소장순으로 조사를 하였다. 마지막 우인대표로 토요타 자동차회장의 조사가 가장 시간과 분량이 길었다. 시간을 사전에 배정받은 것 같다. 미일간의 자동차 무역분쟁을 해결해준 공로를 치하하였다.

장례식을 마치고 오노신야 일한의원연맹 21세기 위원회 위원장 오노신야 일본 중의원 재경위원회 위원장의 요청으로 야스쿠니 신사옆에 건립되어 있는 류슈간이라는 전쟁기념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오노신야의원이 서대문형무소와 목천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면서 나에게 직접 류슈간을 관람해보고 문제점을 지적해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평소에 직접 내눈으로 현장을 보고 싶었던 차에 이 기회를 이용하여 들리게 되었다. 의원들 전체가 가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 같아 다른 의원들은 빠지고 나와 한일의원연맹 박정호사무총장과 나의 일본인 국제인턴비서인 히사다군과 함께 방문하였다. 일본국회에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의원모임이 10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태이다. 일부간부들이 나와 있었다.

일본 근현대화 과정의 침략과 전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페리제독 내항과 개항 그리고 서남전쟁 메이지유신등은 별 부담없이 관람할 수가 있었는데 청일전쟁,러일전쟁 한일합방등에 들어서면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예상한대로 전혀 전쟁의 반성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전쟁을 옹호하고 희생자들의 일본제국을 위한 영웅적 투쟁을 기리고 찬양하자는 내용 일색이었다. 군데군데 비디오로 러일전쟁등 중요장면을 선전용으로 방영하고 있었다. 가미가제특공대의 일기,유서등을 보면서 칠생순황(七生殉황: 7번 태어나도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이라는 결서를 보면서 참담한 심정이 들기도 하였다. 단순한 전쟁기념관이 아니라 신도들의 순교를 찬양미화하고 따라 배우자는 종교시설물이었다.

침략의 역사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애국적 투쟁으로 기술되어있다. 일단 우리와 관련된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한일합방문제를 이완용내각의 결의에 의해 합법적으로 추진된 것처럼 일본총독과 이완용사진과 함께 설명이 붙어있다. 즉각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한일합방이 이 주장대로 조선정부의 요구에 의해 합법적으로 추진된 것이라면 일본이 식민통치지배에 대해 사과할 근거와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반문하였다. 고구려에 대한 설명은 만주에 한족에 대항하기 위하여 퉁구스족이 세운 나라라고 되어 있다. 한민족이 세운 나라라고 정확히 표기정정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류슈간 안내자로부터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유조구사건, 노구교사건등의 기술도 일본이 만주침략과 중국침략을 위해 조작된 사건임을 명시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발생한 사건처럼 기록되어있다. 지적을 하자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고 한다.

만주국 성립되어 五族協化(오족협화)를 명분으로 세운 정상국가인것 처럼 기술되어 있다.(五族協化(오족협화) : 일본·조선·만주·몽골·중국 다섯 민족이 평화롭게 사는 지상낙원을 만든다)일본관동군에 총칼에 의해 세워진 괴뢰국가임을 왜 명기하지 않았는지 지적하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였다. 현재 일본과 과거 군국주의 일본과 차별하게 위하여 일본제국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한 것 같은데 모든 주어가 일본 또는 우리나라이다. 전후일본이 민주주의 국가로 과거와 다르다고 하는데 적어도 야스쿠니신사와 유슈간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적대로 침략의 역사를 영광의 역사로 단절없이 계승해 나가자고 선동하고 있었다.

도오죠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의 사진도 유슈간에 붙어있다. 사형이 집행된 7명과 옥사한 7명 도합 14명의 A급 전범이 1979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었다. "합사된 과정이 어떠했는가? 천황의 허가를 받았는가?" 대답이 애매하다. 야스쿠니는 우리나라 국립현충원 처럼 추도시설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지내는 종교시설이다. 일종의 국가주의를 선동하는 국가신도의 제단이라고 판단된다.

<일본에서는 현세에 무슨 일을 했더라도 죽으면 차이가 나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악인으로 죽은 사람은 저세상에 가도 악인이다. 다른 사생관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마치무라노부다카 외무대신이 발언한 적이 있다. 나를 안내하던 야스쿠니신사추도모임 한 여성 자민당 국회의원도 동일한 주장을 하였다. A급 전범은 이미 죽음으로써 죄가 다 해결되었고 이제 모셔야 할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살인자와 강간자도 죽으면 신이되는가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물론 그 가족들이 추도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국가가 공식적으로 총리,국회의원이 이들을 추모하는 정도가 아니라 신으로 제사지낸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가.

고이즈미총리도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일본인과 한국인,중국인의 사생관이 차이가 있다고. 그러나 이런 논리는 바로 반박에 부딪힌다. 그런 논리라면 야스쿠니 신사는 차별없이 전쟁으로 죽은 이들 모두를 신으로 모시고 제사지내줘야 한다. 야스쿠니는 왜 전쟁중에 죽은 전사자중에 군인,군속만을 제사지내고 민간인 희생자는 제외하는가. 히로시마 나카사키 원폭투하로 죽은 수많은 민간인 전사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적 측 전사자는 왜 포함되지 않는가. 일본의 중근세 불교에서는 적군과 아군을 포함한 모든 전사자를 위령하는 방식이 존재했다. 그러나 야스쿠니는 철저히 자기편 군인,군속에 한해서 제사지내고 있다.

같은 일본인이라도 관군,신정부군과 제사를 지내고 적군(막부군및 반정부군)은 모두 제외되고 있다. 무진전쟁의 아이즈번 전사자 3천여명도 배제되고 있다고 한다. 야스쿠니에 있는 제신수는 250만정도인데 이는 철저히 국가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선택적으로 지정되고 국가적으로 선양되는 종교행위로서 종교분리를 선언하고 있는 일본평화헌법에 위반되는 국가신도적 행위라고 판단된다.

야스쿠니 신사는 단순히 A급 전범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가 다 문제인것 같다. 류슈간에 대해서는 철저히 분석하여 무엇이 문제인지 정리해서 보고서를 만들어야 될 것 같다. 막연한 감정적 비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적시와 논리적 대응이 필요하다. 나를 안내하던 일본 젊은 자민당 의원은 눈물을 흘렸다. 왜냐고 물었더니 가미가제등 결혼도 하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죽은 젊은이들이 불쌍해서 운다고 한다. 자신은 이곳만 오면 눈물이 복받친다고 한다. 유족들이 죽은 청년군인들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예쁜 여자인형을 만들어 색시로 영혼결혼식 형태로 전시해놓고 있었다. 물론 죄없는 젊은이들이 전장에 끌려가 죽음에 슬픔이 왜 없으랴. 문제는 그들에 의해 죽어간 한국,중국,대만등 수많은 백성들의 죽음에 대한 아픔과 슬픔이 같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죄없는 젊은이들을 무모한 전쟁터로 몰고간 1930-40년대 일본천황과 군부세력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비판의 화살을 없애고 중독시키는 것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의 실체인것 같다. 천황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지낸다면 전사자는 황천에서 천황의 은혜가 얼마나 고마운지 감사하게 될 것이다. 유족이 감격의 눈물에 목이 메어 가족의 전사를 기뻐하고 거기에 공감한 일반국민이 전쟁이 나면 천황과 국가를 위하여 기꺼이 목슴을 바치려고 한다면 얼마나 손쉽게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태평양전후에 활동했다고 하는 다카가미 가쿠쇼의 <야스쿠니 정신>(1942)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아이나 남편이 훌륭하게 멸사봉공할 수 있었다고 기뻐하는 것과 귀하게 기른 아이를 국가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불행히도 여의어 버렸다고 서글퍼하는 마음가짐은 대단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기뻐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마음가짐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신도 실제로는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모두 국가의 것입니다. 재산뿐만 아닙니다. 이 신체도, 생명도 모두 천황 한분으로부터 맡아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차한 경우에 훌륭하게 쓰일 수 있도록 평소부터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듀가족 여러분은 이번에 소중하게 키운 아들이나 소중하게 섬겼던 남편을 흔쾌히 천황의 방패로 바치는 것입니다. 폐하로부터 맡아 두었던 것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아들이나 남편이 지금은 야스쿠니의 신으로 모셔져 언제까지나 위로는 폐하의 참배를 받고 밑으로는 국민으로부터 호국의 충령으로서 우러름을 받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나 그 이상 바랄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감성적 상태나 1945년 패전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의 가슴속에서 야스쿠니와 유슈간속에서 격려되고 현향되고 있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모든 정치사회적 생명은 김일성 수령으로부터 나오고 당과 수령을 위해 한목숨 초개와 같이 버리자고 신앙화되어 있는 북한의 상황이 어떤면에서 일본의 천황국가신도 사상과 매우 유사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근대민주국가 출발의 핵심은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가나 통치구조는 자기목적적 존재가 아니고 국민의 기본권, 즉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적 존재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 국가 헌법의 전제이다.

저녁 일본 의원들과 만찬을 하면서 토론을 하였다. 심각할 정도의 인식의 격차가 심해 토론하기가 겁날 정도이다. 고사카 의원이 나왔다. 아버지가 외무장관이었고 일본항공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고 오노신야 전 21세기 위원장으로 나의 파트터 였던 의원이다. 이번에 문부과학성 대신으로 입각이 되었다. 입각을 축하하였다. 오노신야의원에게 류슈간에 대해 나의 견해를 정리하여 보내주겠다고 했다. 자신도 서대문형무소와 독립기념관을 방문하고 느낀 점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의 차이가 커도 이웃으로서 서로 맞대고 사이좋게 살아가야만 할 운명이기에 대화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임무가 막중하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가속화와 고구려의 중국지방정권화, 앞으로 북한병합가능성의 문제등과 어울려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일본의 류슈간과 독일의 기념관등을 비교하여 리포트가 제출되어야 한다.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까하다에서 야스쿠니 신사와 류슈간의 문제점에 대해 분석한 책자가 발간되었다고 한다. 구해볼 생각이다.

송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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