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을 탐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작가가 될 수 있었다.

한운사 작가는 5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까지 한국최고의 드라마 작가로 명성을 날린 분이다.

1948년 아르바이트로 접하게 된 방송작가 일을 시작하다가 6.25로 인해 유엔환영위원회 장교구락부 지배인을 거쳐 원주 육민관고등학교 교감과 한국일보 문화부장을 거쳤지만, 다시 전업 방송작가로 1957년 컴백하게 된 한운사 작가,

그 때 집필한 방송대본은 CBS에서 방송된 라디오 드라마 <이 생명 다하도록>이다.
<이 생명 다하도록>은 인기리에 방송되어 인기작가로 발돋움 하려고 할 때 엉뚱한 사건과 연관되어 필화사건으로 번진 작품이다.
한운사를 포섭하려고 찾아온 친구 때문에 조사를 받다가 엉뚱하게 <이 생명 다하도록>의 한 부분을 문제 삼아 구속 시킨 사건이었다.

한운사 작가의 작품은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느낀 청년기 체험을 그대로 작품에 녹아 있게 만든 작품들이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일제시대 학도병으로 끌려간 학도병 체험을 쓴 1960년 KBS라디오에서 방송된 <현해탄은 알고 있다.> 작품이다.
또한 6.25전쟁을 바탕으로 다룬 <남과 북>은 1964년 당시에 히트하면서 소설과 영화로 상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남과 북>은 “한국 전쟁 당시 한창 적과의 대치가 치열한 어느 날 이대위의 부대에 북한군 소좌 장일구가 투항해 온다. 장일구는 고은아란 옛 애인을 찾아 투항했다며 그녀를 찾아주면 중요한 작전 정보를 알려 주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한편 이 대위는 장일구가 찾는 애인 은아가 바로 자신의 아내임을 알고 고민하다 이 사실을 사단 작전 참모 권중령에게 알린다. 사단으로 연행된 장일구는 고집을 꺽지 않는다. 결국 작전 참모는 그 제안을 수용하고 부하들을 시켜 이대위의 아내인 은아를 부대로 데려오도록 한다. 드디어 은아를 만나게 된 장일구는 은아가 이미 결혼했음을 알고 흐느껴 우는 은아 앞에서 비탄에 빠진다. 그러나 은아의 남편이 자신을 처음 체포한 이 대위임을 안 장일구는 이 대위와 은아에게 서로 행복하라며 자신이 양보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이대위는 부상 당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아에게 그녀의 애인이 살아오면 그녀를 놓아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오히려 자신이 물러나겠다고 한다. 그 후 장일구는 은아가 키우고 있는 자신의 아들도 만나지만 아버지임을 밝히지는 못한다. 그러다 이 대위는 북한군과의 교전 중 사망하고 그 사실을 안 장일구도 슬퍼하다 절벽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만다.”
이 작품은 전쟁 와중에도 이념을 떠나 끈끈한 인간에를 그린 작품이었다.
한운사 작가는 이 작품으로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조사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한운사 작가의 많은 작품 중 전쟁 중 동료를 북에 남겨두고 퇴각하는 군대를 다룬 <산하여 미안하다>, 미국 노교수가 6.25에서 전사한 아들의 핏줄을 찾아 한국에 오는 이야기인 <머나먼 아메리카>, 스위스 외교관이 레만호에서 북한의 옛 애인을 만나는 이야기인 <레만호에 지다> 등 전쟁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유독 눈에 띄었다.
당시 민감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정치소재, 사회의식이 강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이승만대통령의 이발사를 등장시켜 제1공화국의 몰락시기를 그려낸 <잘 돼갑니다>, 근대화 되어가는 사회를 배경으로 삼대간의 갈등을 통해 세대간의 문제점을 파헤친 <아버지와 아들> 등 이 그런 작품이었다.
한운사 작가는 늑장집필의 대명사로 유명한 삼사(三史)이다.
삼사(三史)는 한운사, 조남사, 장사공을 말하는데 방송사 PD들이 꺼리는 기피 작가를 말한다.
당시 <아버지와 아들>의 연출을 맡은 김연진 PD가 직접 한운사 작가와 겪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녹화시간이 다가와 탤런트들이 대본오기만을 대기하고 있어 급한 마음에 직접 찾아갔지만 바둑을 두시면서 “어 왔어? 바둑한판만 두고 써줄게” 하면서 계속 바둑을 두고 계셔서 기다렸지만, 1시간여 지난 후 바둑이 끝나자 제목만 달랑 쓰고는 한참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시다가 “가만있어 우리 뭐 좀 먹고 시작하지”하시면서 중국집으로 향하는 여유를 보이셨다고 한다.
물론 식사를 하고 산책 한 후 호텔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한 지 몇 시간 만에 집필을 완성해 서둘러 작품을 들고 녹화를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였다.
한운사 작가의 특징 중 하나인 여유를 갖고 작품을 쓰는 것 말고 또 하나는 87세가 되신 지금도 매일 담배 한 갑과 소주 반병을 거뜬히 비우신다.
작년에 한운사 작가의 대본을 방송대본디지털도서관에 수록하고자 충북 괴산 지료실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자료를 정리하시 던 중 내가 들어가자 옆에 소주 한병을 꺼내들며 “이리와 한잔 하지”하시면서 한 컵을 따라주시려는 걸 손사례를 친 적이 있었다.
이처럼 여유를 갖고 작품을 쓰시면서도 날카로운 시대의식과 자기체험에서 나오는 진솔한 삶의 경험을 작품에 녹아내리게 하는 작가였다.
“처음부터 인간과 인생을 탐구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작가가 될 수 있어요. 드라마의 시작부터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질문하고, 우리 삶과 주인공의 삶을 견주어 보면서 드라마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고 봐요. 그러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열정이 생기고, 기쁨과 보람이 생기게 되는 거죠” 라고 한 인터뷰가 오늘의 후배 작가들에게 보내는 일침을 우리는 한번쯤 되새겨 봐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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