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공주의 남자’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하였다.
그것은 과거의 역사를 과거 그대로 보지 않고 과거를 거울삼아 재해석해서 현실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자이었던 랑케는 ‘실증주의 사관’을 주창하면서 “역사는 역사 그 자체를 파헤쳐야 한다”고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에 대해 경계를 하였다.
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많은 역사학자들의 주관적 시각에 따라서 그 경향과 사관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유물을 통해 당시 정치·사회·문화상을 파악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으나, 과거의 역사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 만족할 만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결국 역사는 역사 그 자체로 남아있기 보다 현재에 그 역사가 주는 교훈이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그 교훈을 해결해 나갈 것인가? 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사극에 있어서 역사의 재해석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최근 막을 내린 KBS ´공주의 남자‘는 사극을 통해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려는 작가의 의도를 느낄 수 있는 드라마이다.
계유정난으로 원수의 집안이 된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집안이 2세에서 사랑으로 맺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서유영의 ‘금계필담’에 나오는 야사를 토대로 드라마를 전개해 나가면서 계유정난과 수양대권의 권력욕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2세들의 사랑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특히 계유정난의 정치적 사건 와중에 서로의 사랑을 이뤄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이념과 정치적 야심이 아니라 청춘남녀의 사랑이 그 어떤 것 보다 값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한 사극이 왕위찬탈과정과 세조의 권력욕에 촛점을 맞춘 것에 비해 인간으로서 소박한 갈등을 표현하였다는데, 이 드라마가 갖는 신선함이다.
세조도 인간이다. 보통 아버지로서의 고뇌가 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양심이 있기 때문에 살인을 하면서 갈등을 겪는다. 그것을 ‘공주의 남자’를 통해서 조정주, 김욱 작가가 잘 표현해 주었다.
이 드라마는 ‘금계필담’에 나오는 야사를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재구성한 것이다.
그래서 ´금계필담´에서는 세조의 딸 세희와 김종서의 손자가 백년가역을 맺지만, 여기서는 세조의 큰 딸 세령과 김종서의 3째 아들 승유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계유정난 와중에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긴박한 과정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금계필담’에 나오는 내용은 “수양대군의 딸 세희는 성품이 어질고 덕스러운 아이로서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단종이 물러나고 김종서 가족이 몰살당하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눈물을 머금고 밥을 먹지 아니 하며 수양에게 울면서 간청하였다. 그러다 수양대군의 눈 밖에 나자 어머니인 정희왕비가 유모와 함께 대궐 밖으로 피신시키게 된다. 대궐 밖으로 피신한 세희는 이리저리 떠돌다 보은군에 이르러 어느 젊은 총각을 만나게 되었다.
이 때 유모가 총각에게 난을 피해 떠돌아다니는 신세라며 머물 곳을 청하자 동병상린이었던 이 총각은 자기가 사는 토굴로 데려가서 머물게 하였다. 그렇게 1년 쯤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이 들자 둘이 혼인하게 된다. 그 제서야 서로의 신분을 털어놓게 되는데, 계유정난의 기구한 인연이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이렇게 수양의 딸인 세희와 김종서의 손자가 만나 평생 해로를 하고 있는 중, 세조가 말년에 지난날을 참회하고자 절을 두루 찾아다니다가 속리산으로 가는 길에 어느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이 마을을 지나는 중 자신과 닮은 아이가 있어 이상히 여겨 그 아이를 데리고 그 아이의 집 대문을 막 들어서려는데, 어느 부인이 세조 앞에 땅에 엎드려 통곡하였다.
자세히 보니 자기의 딸 세희인지라 다 용서하고 다음날 대궐로 부르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김종서의 손자는 세희와 아이들을 데리고 세조가 부르기 전에 그 마을을 떠나 다른 데로 가서 숨어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야사의 스토리에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숨 막히는 갈등을 접목하면서 드라마는 재미를 더해가게 된다.
특히 권력욕과 왕위찬탈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했어도 딸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세조는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에서 딸을 둔 한 아버지의 심정을 나타냈다.
그리고 원수의 집안끼리 만나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비극으로 끝나기 쉬운데, ‘금계필담’에 사랑을 위해 세조가 대궐로 들어오라는 것도 마다하고 다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처럼 최종회에서 세령과 승유가 함께 말을 타고 달리는 마지막 모습에서 시청자들의 감동을 사로잡았다.
이 드라마는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갖는 사랑이야기로 역사와 야사를 섞어가며 마치 실화인 것처럼 그려냈다.
사극은 시청률 속성상 재미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실제 이야기 인 것처럼 포장하였다. 그것도 원수 집안의 자제들을.....
하지만 사극이 상상력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며 재미있으면서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역사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주의 남자’는 계유정난으로 철천지원수가 된 수양대군의 가문과 김종서의 가문을 수 백 년이 지난 지금 두 집안의 2세들을 사랑으로 맺어준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금계필담’이 그랬던 것처럼.......
저작권자 © 뉴스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