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영화 속의 괴물처럼.

마치 영화 속의 괴물처럼.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심야영화 상영관을 찾았다. ´다세포 소녀´를 만든 제작사 사장을 만나 영화판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날이었다. 영화 ´괴물이 1300만 관객을 넘었다.´는 역대 최다관중 신기록 갱신을 알리는 날이기도 했다. 새벽 1시 10분에 시작하는 심야영화라서 그런지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후의 끝물이라서 그런지 상암동 CGV는 한산했다. 이리저리 좋은 자리 옮겨가며 모처럼 아내와 두 손 꼭 잡고 괴물 속으로 빠져들었다.

올해 초 ´왕의 남자´의 빅히트 이후 괴물의 대박까지 올해 ´한국영화´는 욱일승천했다고들 매스컴은 떠들썩하다. 어제 뉴스를 보니 지난주 박스오피스 집계 1위부터 7위까지 모두 한국 영화가 휩쓸었다고 한다. 축하할 일이다. 왕의 남자나 괴물 등은 주제와 소재,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투자와 배급에서도 특A급에 틀림없다. 잘 만든 영화이고 재미와 감동이 있는 영화이다. 영화계에 스크린쿼터 축소에 따라 뒤숭숭한데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두편의 성공을 ´한국영화´의 승리로 등치시키는 것에는 반대한다. 한해에 한국영화는 60여 편 정도 출시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 성공하는 영화가 몇 편 있는 것이다. 어제 ´한류 위기와 진단´이란 토론회를 국회에서 개최했는데 한류 드라마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 잘 나가는 ´킬러 컨텐츠´로 한류의 브랜드가 형성되고 시장을 이끌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작품은 시장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고 있었다.

한국영화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영화 관객은 한정되어있고 그 총량을 놓고 서로 제로섬게임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객 1300만 영화는 분명 자랑스럽고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 성공신화의 밑에 깔려 신음하는 영화 또한 많다는 사실도 한번쯤 주목해 보아야 한다. 손님이 많이 드는 영화를 트집잡자고 하는 차원이 아니라 투자 제작 배급 3박자를 모두 갖춘 부러울 것이 없는 영화만 좋은 영화로 시선집중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영화 한편이 전체 스크린 50%이상을 독점해 쌍끌이 저인망 훑듯이 관객몰이를 한 이후 어떤 다른 좋은 영화도 견뎌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투자 제작 배급의 자본력이 특정 대기업에 편중되어 있어 그 폐해는 더욱 크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독점 독식 구조는 부작용을 낳고 그것은 곧바로 영화판 제살 깎아먹기로 되돌아 온다. 영화를 만들어 놓고 극장을 잡지 못해 쫄딱 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현실은 영화계 누구를 위해서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나오는 말이 영화판을 잡아 먹고 있는 괴물같은 스크린 독점을 재조정하자고 한다.

영화판 밖에서 영화 괴물이 괴물같이 힘을 낸 것처럼 영화속에서도 괴물은 괴물같은 폭력을 한국적 현실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괴물은 미국이 한국에서 괴력을 발휘하고 휘젓는 괴물임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웅변하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평화롭던 한강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괴물의 잉태부터 표현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불법적 포르말린 방류가 상징하듯 미국의 부정한 정자가 한강의 난자에 방사되면서 한반도의 불행과 비극이 시작되었다. 괴물의 난동과 사람먹이사냥은 흡사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횡포를 보여주고 있다.

평온한 한강을, 단란한 가족을 일순간 앗아가며 등장한 것이 돌연변이 괴물이었다. 순진한 여중생 현수의 구출작전에 투입된 박강두(송강호) 가족의 피나는 혈투는 자주에 대한 한반도의 몸부림과 어쩌면 그리도 닮았을까? 현수가 살아있다는 아버지 박강두의 절규를 대한민국 정부는 도무지 믿어주지 않는다. 아니 그 같은 진실을 은폐하고 퍼지지도 않은 세균 감염을 사실을 왜곡해 한강변을 공포속으로 몰아넣는 정부의 작태는 또 무엇을 상징하는가? 급기야 미국의 개입을 불러오고 그것에 맞선 대한민국의 시민단체와 젊은이들의 화염병 투척이 80년대의 민주화 투쟁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괴물의 제거 이후 한반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괴물사건은 미국 당국의 짤막한 발표로 일단락 되었다. 괴물 출현 이후 한강변에 엄습했다면 세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사실´이란 코멘트가 전부였다. 그렇지만 한반도는 아니 아버지와 딸아이를 잃은 박강두는 그 뉴스를 태연하게 발가락으로 텔레비전을 끈다. 관심이 없다. 새로 얻은 아들(?)과 함께 라면 먹는 일에 더 열중이다. 괴물의 출몰과 원인, 그 피해에 대한 책임규명과 근본 대책은 없다. 아마 봉준호 감독은 정의와 진실에 눈을 감는 세태를 고발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괴물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한반도 현실을 고발한 앤딩장면에 나는 분노했다.

작전통제권 환수문제에 대한 반역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한국전쟁 당시 1950년 7월 15일 우리의 군사 작전 통제 지휘권이 미국에 넘어간 이후 우리는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헌법적 지위와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 국군통수권 문제에 있어서 50년 넘게 우리 대한민국은 허울좋은 자주 독립국가였다. 미국도 그것을 2009년 원상회복 시키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일제시대 일본놈들 보다 친일파가 더 얄미웠다고 했던가? 미국도 돌려주겠다는 작통권을 굳이 안 받겠다고 데모질을 한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

반세기 이상 미국은 우리나라에서 한미동맹이란 이름으로 자국의 정치 군사 경제적 폭리를 취했다. 영화속의 괴물이 인육을 먹고 뱉어내는 유골들은 참으로 섬뜩하다. 텔레비전 한국현대사 고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발굴되는 노근리 등의 유골을 상상해 보라. 미국은 우월적 힘과 지위, 정보를 이용해 한반도를 유린하며 독점 독식해 왔다. 그러함에도 누가 괴물의 행각에 찬사를 보내는가? 마치 영화 속의 괴물처럼.

정청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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