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레슬러 조경호 ⓒ 뉴스캔 변광재

"이렇게 정식 인터뷰는 처음입니다. 왜 프로레슬링 시합보다 더 떨리는 이유는 뭐죠? (웃음)"

일본의 유명 프로레슬링 단체 "ZERO 1(제로 원)" 출신의 자칭 한류스타라 불리는 한국인 프로레슬러 조경호(27, 프리)

그는 해외파 프로레슬러 출신으로 지난 2010년 6월, 한국인 최초 호주의 "Australasian Wrestling Federation(이하 AWF)"에서 데뷔전을 가졌다.

호주 AWF를 거쳐 북미 거대 인디 프로레슬링 단체 "CHIKARA PRO WRESTLING(이하 치카라)"에서 훈련했고, 2012년 일본 프로레슬링 무대까지 참가. 그는 ´제2의 김일´을 꿈꾸는 청년이다.

이번 시간엔 국내로 다시 돌아온 ´해외파 프로레슬러´ 조경호의 인터뷰 시간으로 앞으로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를 소개하려 한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모범생 조경호

조경호는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서 알아주는 모범생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은 학구열이 남보다 강해 공부에만 열중시켰다. 현재의 프로레슬러란 직업과 전혀 관련 없는 학생이었다.

"난 매일 공부만 했어요. 중학교 수업 종료 후, 방과 후 남들처럼 놀지도 못하고 매일 학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모범생이었어요. 여러분 믿어지지 않으시죠? 믿으세요. (웃음)"

특히 조경호의 아버지는 현역 형사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운동으로 단련해진 아버지를 동경하며 살아왔다. 아버지는 그에게 강인함의 자체였고, 올라갈 수없는 큰 나무와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여러분도 어린 시절 태권도, 유도, 합기도 등 학원에 다녔잖아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익혔잖아요. 하지만 난 그런 스포츠 종목에는 관심 없었고, 그저 공부가 좋았어요."

자다가도 부모님 말씀이라면 눈비비고 일어나 경청했던 소년이었다고 말한 조경호. 그러던 중 TV에서 매주 월요일 방영된 프로레슬링 프로그램 "WCW 먼데이 나이트 로"의 본 후, 자신의 미래가 바뀌었다고 밝힌 조경호.

"당시 ´WCW 헤비급 챔피언´ 골드버그의 강력한 스피어 공격에 모든 프로레슬러가 힘없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에 반했어요. 한창 사춘기 시절이라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잖아요. 난 생각했죠. 프로레슬러가 되자고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조경호는 무작정 국내 한국의 한 프로레슬링 단체에 찾아갔고 프로레슬러 입단 테스트를 받게 된다. 당시 자격 미달이라는 통보를 받은 후 좌절에 빠진 조경호.

"내가 왜소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프로레슬러와 거리가 멀다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지는 알았어요.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를 멀리했던 나 자신을 비관했어요. 나에겐 국내 프로레슬링 세계가 참 높아 보였어요."

한번 큰 좌절(?)을 겪은 조경호는 바로 헬스와 킥복싱을 배우며 몸을 키워갔고, 멋지진 않지만 다부진 몸매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항상 프로레슬러를 갈망하는 뜨거운 피가 흘렀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아침엔 대학생으로 생활하며 학업을 이어갔고, 저녁에는 프로레슬러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강한 대한민국의 한 사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호주의 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조)경호야, 내가 사는 호주에 작은 프로레슬링 단체가 있는데, 너도 이쪽에 한번 도전하는 건 어때? 소규모지만 꽤 많은 흥행을 펼치고 있어."


▲ ´현 AWF 챔피언´ 벤 콜스와 마스크드 무사 ⓒ AWF 제공

저금통 터니 전 재산 50만 원, 무작정 호주 출국

"저금통 털어보니 비행기값 제외하고 50만 원이 전부였어요. 호주로 떠나기 하루 전 날 부모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라고요. 난 주저 없이 떠났죠. ´꿈의 땅´ 호주로 말이죠."

친구의 권유도 권유지만, 가장 쉽게 워킹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곳을 백방으로 찾았다고 밝힌 조경호. 마침내 호주의 소규모 인디 프로레슬링 단체가 눈에 들어왔고, 그 단체에서도 국외 연습생이 필요하다는 말에 무작정 떠났다고 밝혔다.

마침내 2009년 11월, 호주로 건너온 조경호. AWF 프로레슬러 입단 테스트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은 그는 바로 AWF 연습생으로 활약하였고, 매일 진행되는 강도 높은 훈련으로 값지고 자랑스러운 피 멍을 선물 받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프로레슬링 훈련으로 지친 자신의 몸을 이끌고 근처 한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그릇을 닦으며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힘든 것보다 자신이 프로레슬러가 되었다는 자부심에 매일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훈련에 임했다고.

2011년 6월, AWF 프로레슬링 도장에서 열린 "AWF 하우스 쇼"에서 한국인 최초로 데뷔했다. 당시 그는 조경호라는 이름이 아닌 "MASKED MUSA(마스크드 무사)"라는 멕시코 기믹의 프로레슬러로 데뷔했고, 결과는 참패였다.

"그동안 훈련했던 모든 기술을 소화할 수 없었어요. 나와 함께 시합한 선배 프로레슬러에게 당하기 일 수였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그때 난 알았죠. 프로레슬러란 한순간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요."

프로레슬러의 매력에 빠진 그는 더욱 혹독하게 훈련했다. 온몸의 파란 멍은 훈장이었고, 무릎과 팔꿈치는 까져 피가 나고 진물이 났다. 하지만 치료는커녕 아랑곳하지않고 묵묵히 훈련이 살길이라며 자신을 다져갔다.

"외국인 신분이라, 병원도 함부로 갈 수 없었어요. 병원비도 한국과 달리 보험이 되지 않아 무척이나 비싸 고생 많이 했어요. 내 왼쪽 피고름이 된 무릎을 밤새 짜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웃음)"

마스크 맨 프로레슬러로 변신한 그는 선-후배 프로레슬러를 하나 둘 꺾어 나가던 그에게 마침내 찬스는 찾아왔다. 그 혹독한 훈련의 대가였다. AWF 대표와 운영진은 열심히 노력한 조경호를 높이 사 타이틀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한다.

바로 ´현 AWF 챔피언´ 벤 콜스와 타이틀 전이었다. 당시 벤 콜스는 AWF뿐만 아니라 북미 프로레슬링 무대에서 콜을 받았던 기대주로, 타이틀 방어 상대자로 신인 프로레슬러 마스크드 무사로 낙점되었다.

"갑자기 AWF 대표가 부르더라고요. 축하한다고 당신은 AWF 챔피언에 도전할 기회가 제공되었다고 말이죠. 정말 꿈만 같았어요. 데뷔 1년 만에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는 말에 잠을 못 이뤘어요."

연승 행진 가도를 달리는 마스크드 무사, 하지만 ´현 AWF 챔피언´ 벤 콜스의 장벽은 높았다. 강력한 미사일 드롭킥에 꿈쩍도 하지 않고 그를 짓밟았다. 조경호와 차원이 달랐다. 아니 레벨이 달랐다.

"엄청나게 얻어 터진 거 같아요. 입술에서 피가 나고 치아가 흔들릴 정도였으니깐요. 하지만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그때 알았죠. 나도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완벽한 프로레슬러가 되었다는 걸요."


▲ 북미에서 만난 WWE 슈퍼스타 안토니오 세자로, 데이빗 보이 스미스 jr, 사부, 슈퍼 크레이지 ⓒ 조경호 제공

50% 부족해 미국으로 떠난 나

호주에서 체류할 수 있는 비자가 만료되어 한국의 땅을 밟은 조경호. 바로 다시 호주로 떠나려 했지만, 가족이 눈에 밟혔다. 1년 간 가족에게도 연락도 없이 호주에서 프로레슬링에 빠진 자신을 잠시 뒤로했다.

그동안 호주에서 프로레슬링과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을 모두 부모님께 드리고, 잠시나마 호주를 다음으로 기약하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건물 청소부였다. 호주에서 했던 그릇 닦는 아르바이트보다 수월했다고 밝힌 조경호.

"부모님께 처음으로 돈을 드려봤어요. 흔쾌히 받으시더라고요. 못난 아들 용서해달라고 빌었어요. 부모님께서 다친 곳은 없느냐? 몸은 건강하게 돌아와서 다행이다고 말씀 하셨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1년 간 알차게 돈을 번 조경호는 다시 호주로 떠나려 했다. 바로 AWF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였다. 선배 프로레슬러가 호주의 AWF 챔피언도 좋지만, 북미 인디 프로레슬링 무대에 도전하는 것은 어떤가? 권유에 그는 잠시 흔들렸다.

북미 무대로 떠나게 된다면, 비자는 물론이고, 의식주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그를 감싸았다. 호주에서 아무것도 없이 생활했던 것을 조경호는 되살려 북미 무대에 도전했다.

바로 북미 최대 인디 프로레슬링 단체 "CHIKARA PRO-WRESTLING(치카라 프로레슬링)"에 도전이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한국의 선배 프로레슬러와 함께 북미 무대로 날아와 쓸쓸하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 쓸쓸한 것 없지만, 뭔가 불안했어요. 호주에서 했던 것처럼 잘해낼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이 찾아왔어요. 특유의 익살 감을 살려 북미 프로레슬러 친구들에게 다가갔죠. 역시 통했어요. (웃음)"


▲ 언젠간 NWA 벨트에 도전하겠죠? ⓒ 조경호 제공

우물 안의 개구리 조경호

조경호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북미 치카라 프로레슬링에서 접해본 방식은 호주에서 배웠던 프로레슬링 스타일과 전혀 달랐고, 매일 혼나기 일쑤였다고 밝혔다.

치카라 프로레슬링은 ´WWE 슈퍼스타´ 안토니오 세자로와 제프 하디가 활약했던 단체로써, ´TNA 슈퍼스타´ AJ 스타일스와 선제이 더트 등 유명 프로레슬러가 한 번씩 거쳐 간 프로레슬링 단체이다.

국내에도 꽤 많은 프로레슬링 팬을 확보하고 있는 북미 인기 프로레슬링 단체로, 한국인 최초로 치카라 프로레슬링 원정에 도전한 그들에겐 앞이 어두워만 보였다.

"정말 도망가고 싶었어요. 호주에서 배웠던 프로레슬링 스타일과 전혀 달랐어요. 이곳은 루차리브레(하늘을 나는 프로레슬링)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어요. 새로운 프로레슬링 훈련을 접해보니 신이 났지만, 한편으로 두려움이 앞섰어요."

난 하나씩 기술을 배워갔고, 그들은 한국에서 온 이방인을 마치 자기 식구인 것처럼 챙겨주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프로레슬링 사랑으로 가득하였다.

"난 북미에서 사용하는 체인, 락 업, 링 줄 타는 법 등, 천천히 하나씩 배워갔어요.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신이 나고 재미있잖아요. 내 마음속에는 아직 어린아이의 동심 마음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어요."

처음부터 하나씩 새롭게 배워갔던 그에게 당시 치카라 프로레슬링의 메인스타이자, ROH 태그팀 챔피언 출신의 ´WWE 슈퍼스타´ 안토니오 세자로가 나타났다. 그 옆에는 WWE 출신의 알 스노우가 코치로 대동했다.

"이거 뭐지 싶었어요. TV로 본 유명 프로레슬러가 내 앞에 떡하니 서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신나지 않아요? 안토니오 세자로와 알 스노우 코치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어요. 난 프로레슬러로 성공해야 하는 청년이라서 배움 의지에는 누구보다 강했거든요.

2부 계속

프로레슬러 조경호

1987년 9월 서울 태생

2004년 4월 한국 프로레슬링 연맹 격기도 입문

2010년 6월 한국인 최초 마스크 맨 프로레슬러 MASKED MUSA로 "Australasian Wrestling Federation" 호주 첫 데뷔

2011년 2월 ´현 AWF champion´ 벤 콜스와 챔피언 쉽 대결에서 패배

2011년 9월 미국 인디 프로레슬링 단체 "CHIKARA PRO-WRESTLING" 원정 시합

2012년 2월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 "ZERO 1" 일본 첫 데뷔

2012년 7월 ZERO 1의 한류 프로레슬링 스타로 급부상

2012년 8월 일본 신문사 ´도쿄 스포츠´ 인터뷰

2012년 9월 "ZERO 1 WAKADAISOU(젊음대장) CUP 리그"에 ´홍콩 프로레슬링 챔프´ 제이슨 뉴에게 승리

2013년 1월 "ZERO 1 KOREAKUEN HALL 대회"에서 ´64대 요코즈나´ 아케보노와 대결

2013년 2월 "ECW 슈퍼스타" 다나카 마사토와 대결

2013년 5월 경기도 고양시 국내 메이저 프로레슬링 WWA 대회에서 승리

2013년 6월 인천 월미도에서 열린 "PLA 대회"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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