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퇴수(退修)일기

퇴수(退修)일기란? 退修......, 조용히 물러나 자신을 닦고 내공을 기른다는 뜻이다. 정치인으로서의 나는 퇴수 중이다. 그 시간이 언제 끝날지는 나도 모른다. 국제법 공부를 위해 입학시험까지 치르며 시작한 로스쿨 3년 과정을 마치는 2008년 여름이 지나도 나의 퇴수는 계속될지 모른다...



퇴수일기 5: 미국, 변화의 시작

2006. 11.8

9월 중순부터 격주 간격으로 쓰기 시작한 퇴수일기가 어느새 5회째다. “지금 퇴수(조용히 물러나 내공을 기른다는 뜻)의 시간을 갖기를 잘했다”는 DJ의 격려에서 착상을 얻어 퇴수일기로 제목을 붙였지만, 갈수록 생각만 많고 내공이 부족함을 절감하게 된다. 그래도 일주일 내내 과제물로 정신이 없었던 작년에는 엄두도 못 냈던 사색과 글쓰기의 시간을 가질 만큼이라도 공부의 여유가 생긴 것이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다.



민주당이 미국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 1994년 이후 12년 만에 하원의 다수당이 된 것이다. 1994년에 나는 첫 미국유학 중이었다. ‘새로운 민주당’, ‘새로운 진보’, ‘중도주의’, ‘일하는 복지’를 표방한 클린턴 정권의 초반부를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학생시절 이후 처음으로 차분하게 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때 정리된 생각들이 결국 96년 국회의원이 되고나서부터 약 10년간의 내 활동의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민주당의 승리는, 그들의 구호처럼 미국의 방향전환(direction change)을 상징한다. 이라크전으로 대표되는 부시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였고, 12년간 하원을 지배한 공화당의 정책과 도덕불감증에 대한 심판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후보도 지지후보에 포함시켜온 뉴욕타임즈가 공개지지후보에 공화당 후보를 단 한 명도 포함시키지 않고, 공화당 스스로 닉슨의 워터게이트사건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고 할 만큼 거센 여론이 표로 나타난 것이다. 진보성향의 사상 첫 여성하원의장을 당의 리더십으로 하고 있는 민주당은 내정과 외교 전면에서 자신의 어젠다를 선명히 내세울 것이다. 부시대통령의 정책이 변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FTA에 공화당보다 까다로운 민주당의 경제정책과 북미간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에 보다 긍정적인 민주당의 대북정책이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이번 선거기간 중에 나는 저녁시간을 이용해 두 번의 민주당 행사에 참석했다. 미국하원에서 가장 친한파로 알려져 있고, 앞으로 하원의 예산위원장이 될 챨스 랭글즈 의원의 후원행사와, 학교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한 기차역 앞 광장에서 열린 뉴저지 상원의원선거 유세였다. 이 유세장을 일부러 찾은 이유는 이 날의 초청연사가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그의 연설을 현장에서 보고 싶었다.



오바마는 미국 사상 세 번째이며 현재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이다. 45세의 초선이며 하버드로스쿨 사상 첫 흑인편집장을 지낸 진보성향의 인권변호사출신이기도 하다. 지적능력, 카리스마, 연설력, 대중성, 참신성을 고루 갖췄고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점도 미국에서는 장점으로 꼽힌다. 타이거 우즈, 오프라 윈프리, 마이클 조단처럼 주류 백인들에게도 인정받는 어메리칸 드림의 문화적 아이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경력이나 자질보다 내가 더 주목하는 점은 첫째, 케냐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종적 배경, 미국의 변경인 하와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문화적 배경 등에서 나오는 문화적 다원주의 성향, 둘째, 현재 민주당의 선두주자인 힐러리보다 이라크전에 대해 더 선명하게 반대한 점, 셋째, 존경받는 미국을 추구하면서 국제문제에 보다 다원주의 태도를 보일 가능성, 넷째, 북핵문제에 있어 국제적 협력을 추구하면서도 미북 직접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점, 다섯째, 그러면서도 공화당 중진들도 인정하는 초당적인 개방성을 가진 점 등이다. 힐러리역시 이런 성향들을 공유하고 있지만, 나는 미국이 가야할 변화의 방향을 오바마가 더 강렬하게 상징할 수 있다고 본다.



월남전 이후 미국은 많은 변화를 겼었다. 클린턴이 바로 월남전세대의 첫 대통령이었다. 이라크전도 미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공화당(레이건 8년, 부시 4년)-민주당(클린턴 8년)-공화당(부시 8년)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정치적 사이클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힐러리와 오바마가 민주당의 유력주자로 부상하는 현실 자체가 여성, 흑인 등 전통적 약자의 위상변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민문제와 소수민족문제 또한 미국사회의 새로운 빅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중간선거는 변화의 시작이다.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정도의 강풍이 불면 힐러리가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고, 더 크고 깊은 변화를 요구하는 태풍이 불면 오바마가 후보가 될 것이다. 젊은 케네디가 등장하고, 무명의 카터가 등장하던 당시 미국의 상황이 그랬다. 2년 후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건 아니건 그가 대선레이스에 뛰어드는 것 자체가 미국사회의 진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초의 흑인 미국대통령이 탄생한다면, 국제정치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반도의 장래뿐 아니라 내가 주장하는 아시아공동체의 장래에도 궁극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국제정치의 중심이다. 우리는 그 미국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이 향후 1년, 2년, 10년 안에 각각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면밀하게 읽고, 그 함수를 계산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이 한국의 변화에 영향을 미쳐왔듯이, 한국도 미국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시대로 가는 초입에 서 있다. 판을 크게 보고 새로운 발상을 해야 한다. 지금은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미국의 미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며 창조적 발상을 해야 할 때이다.






[지난 퇴수(退修)일기 보기]
4. 퇴수일기 4. 진정한 힘의 원천: 통합인가 비전인가?
3. 퇴수일기 3. 한반도의 새로운 패러다임
2. 퇴수일기 2-국가경쟁력의 실마리
1. 退修日記(퇴수일기)를 시작하며

김민석 전 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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