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문화운동가인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수차례 과격 테러 전력 소유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5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주최한 조찬강연장에서 재야 문화운동가인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로부터 공격을 받는 테러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우선 사건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이날 리퍼트 대사는 민화협이 주최한 조찬강연에 참석, ‘한반도 평화와 통일, 그리고 한미관계 발전방향’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었습니다.

7시 35분, 리퍼트 대사가 입장, 가운데 통로를 지나 메인테이블에 착석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리퍼트 대사가 자리에 앉은 직후 조찬장 중앙 6번 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기종(55)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유인물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리퍼트 대사 자리로 다가갔습니다.

리퍼트 대사는 김기종 대표가 옆으로 다가오자 자신에게 인사를 하려는 줄 알았는지 악수를 청하려는 자세로 반쯤 일어났을 때 김기종 대표는 26cm길이의 과도로 리퍼트 대사를 공격했습니다.

김기종 대표가 일어나 유인물을 나눠주고 리퍼트 대사를 공격하는데 몇십초도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리퍼트 대사는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고 바로 옆에 앉아있던 새누리당소속 민화협 부의장인 장윤석 의원이 범인을 쓰러뜨리고 제압했습니다.

장 의원은 “저도 그때 일어나 찰나의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범인이 리퍼트 대사 쪽으로 쏠리게 돼 저도 순간적으로 범인 쪽으로 몸을 가져갖고 범인과 함께 바닥으로 넘어지고 거기서 여러 사람들과 합동해 제압하게 됐다”며 “저도 기억이 안나지만 제가 범인 밑으로 깔리지 않고 어느 순간 제가 등허리에 타고 있어서 아마 제가 제압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테러를 당한 리퍼트 미국 대사가 80여 바늘의 봉합수술을 받았다. tv조선 캡쳐

장 의원은 또 “리퍼트 대사가 병원으로 떠난 후 테이블 위에는 굵직한 핏방울이 수십개는 있었다”며 “테이블 위에 한 뼘 정도 되는 목재 손잡이에 비슷한 길이의 칼날을 가진 과도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장 의원과 다른 참석자들은 범인을 사건 직후 달려온 경찰들에게 인계해 종로경찰서로 이송했습니다.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오늘 테러했다. 우리마당 대표다. 유인물을 만들었다. 훈련 반대해서 만든 유인물이다”라며 “전쟁 훈련 반대” 등을 외쳤다고 합니다.

부상을 당한 리퍼트 대사는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얼굴을 가린채 차에 타 강북삼성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어 응급치료를 받은뒤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 길이11cm 깊이3cm의 봉합 수술을 받았습니다.

신촌세브란스 병원은 "2시간 반 봉합 수술이 성공적 끝났다"면서  "얼굴 흉터 길이는 11cm이고 깊이는 3cm로 광대뼈 구분에서 턱 밑까지 80바늘을 꿰맸다"고 밝혔습니다.

병원 측은 "리퍼트 대사가 왼팔 3cm가 칼에 관통됐고 세끼손가락 신경손상을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리퍼트 대사는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되면서 취재기자들에게 '괜찮다'고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공격한 김기종씨는 배포한 유인물에서  '남북 대화 가로막는 전쟁 훈련 중단해라'나 '우리나라에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켜라' 등을 제목으로 한 글이 담겨 있었습니다. 

유인물에는  "2014년 5월 15일에는 '평화헌법' 일본 '집단적 자위권' 주장에는 마냥 침묵하고, 2014년 10월 23일에는 'OPCON' 미국에게 '전시작전통제권' 연기해주면서, 급기야 2014년 12월 29일에는 'MOU' 미국, 일본과 불법으로 '군사정보공유양해각서'를"이란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김기종씨는 유인물에서  "광복70년이라면서 군사주권 없는 우리의 처지가 비통할 뿐. 분단 70년의 극복은, 그동안의 남북 공동성명과 선언으로 충분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김기종 씨는 리퍼트 대사 피습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래야 미국놈들이 정신차리니까"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김기종 씨는 범행 직후 "한미연합 키리졸브 훈련이 남북관계를 망치고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김기종씨는 우리마당독도지킴이이자 민화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0년 7월 당시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 대사의 강연장에서도 연단을 향해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진 전력이 있다. 이 사건으로 김씨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시게이에 전 일본대사를 공격했던 일을 엮은 책인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2006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김씨는 독도를 지키겠다며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겼습니다.

주로 반일 문제에 집중하던 김기종씨가 반미로 전환한 것은 수차례의 방북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김기종씨는 지난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총 8회 방북했었으며
이번 한미연합군사훈련 반대 주장도 이같은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김기종씨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통일부에서 임명한 통일교육위원을 지냈으며 김대중 정부 때인 지난 2001~2003년과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2007년 두차례 민주평통 지역위원을 역임했습니다.

김씨는 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으며 2011년 12월 26일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김 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하려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충돌·대치하는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10여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2007년에는 지난 1988년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해 전신에 2~3도 화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우리마당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통일문화운동단체 '우리마당' 사무실을 괴한 4명이 습격해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입니다.

김씨는 1984년 성균관대 법률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통일정책대학원에서 교육문화정책-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성공회대에서 시간강사로 교양과목 '전통 예술의 이해'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이번 테러를 당한 리퍼트 대사는 지난해 10월 30일 역대 최연소 주한미국대사로 부임,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면서 친근한 이미지로 호응을 얻어왔습니다.

한국 부임 전에는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 캠프의 외교안보팀에서 활동하는 등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 핵심 인물로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수석보좌관 겸 비서실장과 국방부 아태담당 차관보 등을 거쳐 지난해 4월에는 척 헤이글 국방장관의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외교안보 전문가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한편 우리 정부와 미국은 이번 피습사건이 기존의 한미관계에 영향이 없는 전혀 별개의 사건(isolated incident)이라는 데 인식을 함께 하고 한미동맹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안호영 주한 미국대사와 조현동 주한미국대사관 공사는 이번 사건 직후인 4일(현지시간) 저녁에 미국에서 각각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성김 6자회담 수석대표 겸 동아태부차관보와 만나 이같이 의견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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