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만원짜리 점심
2007.2.12(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살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내수는 위축되고 그나마 우리 경제를 지탱해주던 수출마저 채산성이 떨어져 속빈 강정이라고 한다. 더욱이 전문가들에 의하면 ‘2007년의 경제는 작년의 경제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라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토록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는 판에 지도급 정치인들이 120만원짜리 점심을 먹었다고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얼마전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가 JP(김종필)를 초청 점심을 대접하며 정국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는데, 그 점심값이 자그마치 120만원이나 되었다고 하며, 그 가운데에는 60만원 상당의 술 1병 값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두 사람 외에 다섯 명의 수행원들이 포함 되어 있었다고 하니 일곱 명이서 먹은 셈이며 그렇다면 평균 잡아 한 사람당 17만원의 점심을 먹은 셈이다. 그러나 관례로 볼 때 수행원이 두 사람과 같은 내용의 점심을 먹었을리 만무하니 두 사람의 밥값이 훨씬 비쌌을 것은 불문가지이다.
하기야 일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유력인사들이 점심 한 끼 먹는데 그 정도 돈 쓴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치졸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고, 명색이 교수라는 사람이 남의 밥값이나 따지고 있으니 스스로도 한심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필자가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째, 그들이 이 나라의 정치에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치는 유력인사들이라는 점이다. 강재섭 대표는 국회에서 거의 과반수에 육박하는 의석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차기 집권이 유력시 되는 제1야당 대표이며, JP는 비록 정계를 은퇴한 한 물간 정객이라고는 하여도 충청도의 지역 정서에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둘째, 지금 우리의 경제가 매우 어려워 국민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때에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솔선수범하여 곤경을 극복 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국민들은 격려하고 위로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지금은 대선을 얼마 앞두고 있지 않는 미묘한 때라는 점이다.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가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자칫 충청권의 지지획득을 위한 한나라당의 구애 작전으로 인식된다면 이는 탈 지역주의를 통해 국민통합을 도모함으로써 정치발전의 도모를 희망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될 것이며 두 사람의 만남은 그 계기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아마도 강재섭 대표가 지불했다는 밥값은 그의 개인 돈이 아니고 한나라당의 공비(公費)였을 것이고, 그것은 국민의 혈세에서 지원된 ‘정당 활동지원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국민의 세금에서 지원되는 정치자금은 정치인들로 하여금 ‘검은돈’에 유혹받지 않고 공명하게 정치활동을 하라는 취지에서 지원되는 것인데, 현재까지 그의 사용에 대한 투명성 확보 및 사용 한계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선거관리위원회의 감사 등 제도적 장치 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따라서 제1야당의 대표라면 이처럼 미흡한 제도를 개선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며 제도의 미흡을 이용하여 이를 자의적으로 사용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에서 볼 때, 강재섭 대표와 JP 두 사람의 점심회동에 따른 거액의 식비 사용은 국민들의 현실 및 정서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진정으로 집권을 위한 정당이라면 지금 부터라도 집권이후에 어떻게 국가의 경제를 회복시키고, 국리민복을 도모할 것인가에 당력을 집중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야 할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위정자들의 솔선수범을 강조한 공자님의 선지노지(先之勞之)야말로 우리의 정치인들이 항상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명구(名句)가 아닐 수 없다.

오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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