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보호·학교급식 예외 인정 성과도

지난 12일 끝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8차 협상에서 경쟁분과를 비롯해 정부조달, 통관 등 3개 분과가 완전 타결됐다. 비핵심쟁점 부문이지만 향후 협상 진행일정에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정브리핑>은 이들 3개 분과는 물론 앞으로 속속 타결되는 분야의 협상 결과와 의미, 기대효과를 분석한다.<편집자주>

미국 연방정부의 조달시장 규모는 3400억달러(306조원, 2004년 기준). 우리나라(17조3000억원, 2004년 기준)의 18배에 달하는 엄청난 시장이지만 우리 국내업계에는 ‘그림의 떡’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가입국으로 상대국 조달시장 진입이 허용돼 있다. 그러나 대다수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자국 업체를 보호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국 내 실적만 인정하는 관행이다.


그러나 이번 한미FTA 협상을 통해 이러한 진입장벽을 제거했다. 우리측은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조달시장 입찰시 자격심사나 낙찰자 결정과정에서 자국 내 실적만 인정하는 것은 차별적 요소라며 이를 금지토록 강하게 요구했다. 미국이 결국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기업들이 미 조달시장을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개선됐다.


´자국실적만 인정´은 차별…끈질긴 요구에 미측 수용

코트라 통상전략팀 임성주 과장은 "미국은 조달참여 자격조건으로 미국 내에서만 행한 실적만을 인정해 우리기업이 진출할 수있는 여지가 좁았는데, 이번 한미FTA협상을 통해 이러한 차별이 해소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기업들이 이같은 여건 조성을 잘 활용해 현지화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조달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 금액(물품.용역에 대한 양허하한선)이 2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아져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다. 이는 미국이 요구했던 사안이지만 우리 중소기업의 미국 시장진출 기회도 넓어지는 것이니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특히 우리 시장규모 보다 미국이 훨씬 크므로 우리 업체의 미국 조달시장 참여 폭이 더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재경부에 따르면 이번 양허하한선 인하로 추가되는 시장규모는 우리가 5000억원, 미국이 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 조달시장에서의 중소기업 보호정책이 그대로 인정된 것도 성과로 꼽힌다. 협상 초기부터 우리측은 지역의무 공동도급제 등 중소기업에 대한 현행 보호제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포괄적 예외조항을 설치하자고 요구했다.

미측은 이에 대해 끝까지 입장표명을 유보해 오다 결국 마지막 8차 협상에서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 이에 따라 국내 건설시장이 추가 개방되더라도 지역중소건설업자 등 중소기업 보호가 가능하다.

학교급식에 대한 예외 인정도 우리측 요구가 반영된 협상성과물이다. 학교급식용 식자재 구매시 우리 농산물의 우선 구매가 가능하도록 학교급식 분야는 이번 협정에서 예외토록 한 것이다. 미국은 당초 WTO GPA에서 우리측의 학교급식 예외요구에 반대입장을 유지했지만 이번 한미FTA 협상에서는 이를 수용했다.


중소기업 보호·학교급식 예외 인정도 중요한 성과

따라서 향후 WTO GPA 개정협상에서도 ‘학교급식 예외 인정’에 대한 우리측 입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협상단의 분석이다.

물론 이번 협상에서 미국의 주정부 조달시장은 개방하지 않기로 한 것은 못내 아쉽지만, 우리나라의 지방정부와 공기업 개방도 함께 열지 않는 것이니 어느 쪽이 더 손해라고 할 수는 없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가 더 유리한 협상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미 37개 주정부를 WTO 정부조달협정 가입국(우리나라도 가입돼 있다)에 개방한 상태이니 이들 주정부에 대한 진입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또 우리측 협상단이 나머지 주정부 개방을 강하게 요구(전략상 협상카드로 활용)함으로써 결국 미측이 우리의 지방정부와 공기업에 대한 개방을 요구하던 것을 접게 하는 효과를 봤다.

이외에도 정부조달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정부끼리 신속하게 해결하도록 하는 ‘정부조달 실무작업반(Working Group)’를 설치하기로 한 것도 우리 기업에게는 미국 조달시장 진출시 걸림돌이 되는 제도적 문제에 대해 ‘하소연 할 수 있는 창구’가 생긴 셈이다.

반면, 미측 요구가 관철된 것은 BTO(건설-이전-운영) 사업 등 민자유치 건설사업을 정부조달 대상으로 포함시켜 개방한 것이 대표적이다. BTO 사업은 민간사업자가 자신의 부담으로 공공시설을 짓고 이를 정부에 이전한 후 일정기간 운영을 통해 수익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민자유치 사업.

미측이 이를 요구하기는 했으나 BTO 시장규모로 따지면 미국(70조원)이 우리(10조원)보다 7배에 달해 기회 측면에서 우리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 협상카드 제대로 먹혔다…실익없다는 주장은 낭설

정부조달 협상은 그동안 자동차나 농산물, 섬유, 의약품 등 핵심쟁점에 묻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의제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정부 조달시장이 국내 중소기업에게는 중요한 판로라는 측면과 엄청난 규모의 미국 조달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번 협상은 실익은 챙기고 내주지 말아야 할 것은 적절히 막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협상이 가능했던 것은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을 충분히 이용하는 한편, 모든 관련자료를 구석구석 검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장훈기 분과장은 “미국은 주정부의 영향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주정부의 조달시장 추가개방 요구가 미측에게는 어려운 의제였다”면서 “이를 강하게 요구함으로써 우리의 지방정부와 공기업에 대한 개방 요구도 막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보증기관 상호인정 요구도 우리측의 적절한 협상카드로 활용됐다. 사실 이 요구는 금융서비스 협상 의제인데다 한미 양측이 접근하고 있는 금융서비스 개방 수준보다 높은 단계여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협상단은 이를 줄기차게 요구함으로써 워킹그룹 설치, 해외건설 실적 인정 등을 얻어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부조달 협상과 관련해 실익이 없다고 주장해 협상 관계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지난 12일 경향신문은 “미국은 FTA보다 국내법인 ‘바이아메리칸법’이 우선하므로 연방정부가 우리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한신대 이해영 교수의 주장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장 분과장은 상식이 없는 주장이라며 “바이아메리칸법은 WTO GPA 회원국이라면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 알고 시작했는데, 이 교수가 그것을 몰랐다면 협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입장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장 분과장은 “당초 우리가 설정했던 협상 목표를 90% 이상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협상은 국내 기업들이 미국 조달시장까지 진입할 수 있는 고속도로를 닦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장 분과장은 그러나 그 기회를 살리는 것은 기업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쟁력을 높여 채산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업계의 시급한 과제”라면서 “중동.동남아 지역은 우리가 우위에 있어 진출이 쉽지만 미국 시장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소구력 있는 마케팅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신현기 (nollst@korea.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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