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19] 다문화적 관점에서 본 영웅들의 이면 3(조지 워싱턴)
상태바
[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19] 다문화적 관점에서 본 영웅들의 이면 3(조지 워싱턴)
  • (정리)김미연 기자
  • 승인 2019.06.06 16: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현재 이민 다문화국가의 대표격인 미국은 그 역사를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실제는 반자유주의적이고 "반 다문화적"인 역사를 걸어온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조지 워싱턴이고, 위대한 미국의 기초를 닦은 링컨 대통령이다. 이들은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자유를 숭상하지도 않았으며, 노예해방을 원하지도, 또 인권보다는 인종차별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조지워싱턴과 링컨에 대해 자유독립의 정신과 노예해방의 정신이 깃든 인권주의자로 알고 있다. 그것은 역사가 승리한 자의 기록이다 보니, 미국 독립전쟁이후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과 남북전쟁이후 미국을 건설한 링컨에 대해 여러가지 측면에서 각색되고 미화되었기 때문이다. 

조지 워싱턴은 버지니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초년은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첫번째 부인과 사이에 아들을 하나 낳고 사별한 뒤 워싱턴의 어머니(메리 홀)와 결혼하고 아들 넷과 딸하나를 낳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워싱턴이 11세 되는 해에 숨을 거두었다. 워싱턴 어머니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으로 워싱턴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싶어 했음에도 보내주지 않아, 워싱턴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에 그쳤다. 

당시 유산은 장자 상속의 원칙이어서 대부분의 재산은 워싱턴의 이복형제인 로렌스의 것이 되었다. 하지만, 워싱턴은 14살 차이나 나는 이복형제인 로렌스와 사이가 좋았을 뿐 아니라 매우 따랐다. 

그는 어릴 때부터 병정놀이를 좋아해서 매일같이 동네 아이들과 편을 갈라 전쟁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그때, 이복형인 로렌스는 버지니아의 명문가인 윌리엄과 친구사이였는데, 워싱턴은 로렌스와 함께 윌리엄을 깊이 따랐던 것 같다. 

20세 되던 해, 형과 윌리엄의 권유로 버지니아 민병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민병대는 말그대로 정규군대가 아니라 민병대였다. 당시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원주민인 인디언으로부터 토지를 인수(계약에 의한 약탈)한 뒤, 인디언을 몰아내고 만든 개척촌과 같은 형태로 촌락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 촌락을 지키기 위해 많게는 100명에서 적게는 50명 단위로 민병대를 구성해 자체 경비를 지키고 있었다. 워싱턴이 입대한 민병대는 바로 이런 민병대였던 것이다. 

그곳에서는 계급장도 자발적으로 부여하고 있었는데, 군인으로써 능력을 발휘했던 워싱턴은 대령의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그 후 프랜치-인디언 전쟁이 일어나자 워싱턴은 정식 영국군에서 운영하는 버지니아 의용군에 소령의 계급장을 달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워싱턴은 버지니아 연대장이 되었다. 하지만, 민병대를 정식 영국군처럼 편재해달라는 요청이 묵살되자, 실망한 나머지 사임하고 낙향했다. 사임 당시 계급은 준장이었다. 

이렇듯,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전 워싱턴은 군대를 좋아하고 출세를 바라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평범하다는 것은 당시 식민지에 거주하는 영국인의 생각과 관념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특별한 독립정신과 이념, 그리고 식민지 수탈에 대한 저항과 인권의식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프랜치-인디언 전쟁에 참전한 것에서 보이듯, 인디언과의 전쟁에 적극 참전하는 태도를 취했다. 

프랜치-인디언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전이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한 편이 되고, 영국과 기타 나라가 한편이 된 국제전쟁이 7년전쟁인데, 이 전쟁의 아메리카 판이 바로 프랜치-인디언 전쟁이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뉴잉글랜드 등 동부 13개주에 주로 거주하였다. 따라서 동부 13개주는 영국령이었으며, 그보다 서부인 에팔레치아 산맥 서쪽에서 미시시피 강에 이르는 지역과 캐나다 퀘벡 주 등 광범위한 중동부는 프랑스령이었다. 그리고 플로리다는 스페인령이었다. 

그런데 동부 13개 주로 이주한 백인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점차 에팔레치아 산맥을 넘어서서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것이 프랑스와의 갈등으로 비화되었다. 그런데, 프랑스는 퀘벡 등 지금의 캐나다에 집중거주(아메리카 전체 거주민 75000명 중 5만명이 캐나다 거주)하고 있었기에 미 중동부에서 영국과 맞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프랑스는 자신의 병력 열세를 인디언으로 만회하고자, 인디언들에게 총과 무기를 주며 영국과 아메리카 거주 영국인들과 맞서도록 독려했다. 

이렇게 프랜치-인디언 전쟁은 미국판 7년 전쟁으로, 영국군대+아메리카 민병대 vs 프랑스군+인디언의 연합전쟁 성격을 띄었다. 이때 워싱턴은 적극 참전하여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그 후 영국이 퀘벡주를 점령함으로써 7년이나 계속된 식민지 쟁탈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문제는 그 후에 벌어졌다. 영국이 승리한 후 프랑스 편을 든 미국 인디언들이 전쟁 패배자가 되어 영국의 지배아래 놓인 것이다. 그 후 유럽인들은 본격적으로 에팔레치아 산맥을 넘어 미 중부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아메리카 원주민, 즉 인디언에 대한 추격과 학살이 자행되었다. 곧이어 7년 전쟁에 따른 전쟁부담금과 아메리카에서의 군사활동에 대한 세금 부과로 미 독립전쟁이 촉발되며, 미국은 독립했다.

하지만,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독립국 미국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운디드니 등지에서 여자와 어린이 등 노약자를 포함한 수백명에서 수십명의 인디언들이 학살당하고 추방되었다. 

이러한 인디언 학살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치질 않았다. 남북 전쟁후에는 서부 개척과 맞불리며 중서부 일대의 인디언들이 집단적으로 학살당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유럽인들이 가지고 온 천연두 등 질병으로 인해 엄청난 수의 인디언들이 멸족을 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렇다고, 워싱턴이 투철한 자유주의 독립정신으로 독립전쟁에 뛰어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그는 버지니아 민병대를 지휘하고 사령관을 역임하면서, 민병대를 영국의 정규군처럼 편재해줄 것을 요청했다. 즉, "정규군으로 대우해달라"는 요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본국에 의해 묵살당했으며, 이에 불만을 품은 워싱턴은 사임하고 낙향하기에 이른다. 

그 후 독립전쟁이 일어나고, 군대 지휘 경험이 있는 워싱턴의 위상이 중요해진다. 그렇게 해서 독립전쟁 사령관을 맡게 되었다. 처음엔 영국 정규군에 비해 민병대 중심의 독립군은 연전 연패를 거듭한다. 

하지만 파리에 머무르고 있던 벤자민 플랭클린 등이 프랑스쪽에 적극 요청하여 지원을 끌어내고, 이로써 전세를 조금씩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7년 전쟁 때 영국에 패배한 스페인 등 다국적 군이 설욕을 위해 미 독립군의 편에 서고, 파리조약이 성립됨으로써 미국은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 

다만, 워싱턴은 세계 처음 임기제 국가 원수직을 수행하게 되고, 이를 원만히 마치고 퇴임함으로써 별다른 사상과 뚜렷한 행적 없이도 명예로운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명성에 비해 그의 이면은 그다지 내세울 것이 없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의 경우, 본인 스스로 프랜치-인디언 전쟁에 참전했을 뿐 아니라, 인디언과의 전투를 적극적으로 지휘함으로서 건국의 아버지라는 추앙과 화려함 이면에 인디언에 대한 학살과 약탈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지니고 있는 인물인 셈이다.

<계속...>

PS : 아메리카 식민지 쟁탈전과 격동의 유럽 

아메리카에서의 식민지 쟁탈전으로 유럽에서는 국제적인 7년 전쟁이 터진다. 1차,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7년 전쟁이라는 국제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7년 전쟁은 프랑스와 스페인이 한편이 되고, 영국과 네덜란드 등이 다른 한편이 되어 싸운 전쟁이었다. 그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써 아메리카에서의 지위를 굳히게 된다. 

하지만, 7년 전쟁으로 인한 재정 부담과 갑작스레 늘어난 식민지 경영에 대한 재정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식민지인 아메리카 이주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리게 되어 미국의 독립전쟁이 촉발되었다. 여기에서는 7년 전쟁으로 패배했던 프랑스와 스페인 등이 미 독립군을 지원함으로써 또다시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다. 결국 전세가 역전된 영국이 파리 강화조약에 조인함으로써 미국의 독립이 이룩된다. 

그러나, 이번엔 프랑스가 문제였다.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이의 설욕을 위해 미국 독립전쟁에 개입함으로써 과돟산 재정부담을 지게 되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서민에 대한 과세를 증대하자, 이번엔 프랑스 내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프랑스 대혁명이다. 그리고 절대왕정이 쫓겨나고 나폴레옹이 집권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아메리카 식민지 쟁탈전은 7년 전쟁으로 이어지고, 7년 전쟁이 다시 미국 독립전쟁으로 파급되고, 미국독립전쟁은 캐나다의 자치권 확립과 프랑스 혁명을 촉발하게 되고, 프랑스 혁명은 나폴레옹에 의해 전 유럽의 앙시앙레임이 무너지는 일련의 도미노현상으로 이어졌다.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