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41] 한국인의 다문화 유전자 (스키타이, 소그드,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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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41] 한국인의 다문화 유전자 (스키타이, 소그드, 신라)
  • (정리)김미연 기자
  • 승인 2019.06.0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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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앞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5편과 6편에서 한국인의 신체 유전적 형질을 볼 때, 현재의 한국인은 대략 남방 아시아계와 북방 유목민족의 유전자가 섞인 혼혈민족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즉, 이미 석기시대까지 한반도에 도래해 거주하고 있던 남방 아시아계 토착민에 청동기, 철기로 무장한 북방 유목민족이 남하하면서 지배층을 형성하고, 혼혈을 통해 형성된 것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언어적으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즉, 농사관련 용어 등은 인도 남부의 드라비다족 언어와 유사한 것이 매우 많다(일부 학자에 따르면 유사 언어가 500개에서 1200개까지 차이가 난다). 또한 북방 유목민족이 쓰는 언어(한울, 땅, 골 등)도 대단히 많다. 따라서 한국어에 쓰이는 단어에서 현재의 한국인이 남방 아시아계와 북방 유목민족의 유전적 형질이 혼혈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2편). 

이번엔 혈통과 언어를 제외한 문화적 유전자를 알아보자. 이미 한국인의 전통 복식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전통복식의 원형을 추적하다보면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의 복장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혈연과 생활 언어를 제외한 문화적 형질에서는 북방 유목민족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혈통과 언어에서는 혼혈의 형질이 그대로 나타나지만, 문화적 양식에서는 한 사회의 지배층의 양식이 피지배층의 양식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 양식은 북방 유목민의 영향이 훨씬 강하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 문화양식에서 나타나는 북방 유목민의 문화 양식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통 복식에서도 확인되었지만, 음악, 복식, 기타의 문화에서 한국인의 전통문화양식은 스키타이와 소그드로 통칭되는 서구 유목민족과 선비 등 동방 유목민족, 그리고 중국(또는 종교)의 영향이 혼합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중, 우리 전통문화의 원형 중의 하나로 간주되는 스키타이, 소그드, 신라의 교류를 살펴보자. 

스키타이는 인류 문명사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흑해와 카스피해, 그리고 중앙아시아 일대를 장악했던 유목민족이다. 또, 인류 최초로 청동기문명을 꽃피웠고, 황금을 숭배했던 유목민족이었다.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에 의해서 명명된 "스키타이"라는 명칭은 지역에 따라 "샤카(인도)", "속특(중국식)"으로 불리웠다. 스키타이는 유목 종족의 연합세력을 통칭하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스키타이는 전투적 유목민족으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이 매우 뛰어나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용병으로 활용되기도 했다(키루스2세가 신바빌로니아를 점령할 때 스키타이 전사를 활용했다). 그리고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종족으로 적의 머리를 잘라 다듬은 다음 술잔으로 쓰기도 했다(스키타이 각배). 그들이 숭배한 황금유물들은 4세기 신라의 각 무덤(황남대총 등)이나 가야의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과 너무도 흡사해서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인구가 아니라 지역적으로 보면, 그들은 세계 최초의 제국을 형성한 페르시아에 맞먹을 정도로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일부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는데, 뒤에는 흑해 북부 변방에서 일어난 같은 이란계 유목민족인 샤르마트에게 침략당해 멸망하고 만다. 이렇게 무너진 스키타이는 인도쪽으로 이동해서 샤카족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하고, 동쪽으로 이동한 스키타이는 흉노제국의 일부에 흡수되어 활동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흉노제국이 동흉노, 서흉노로 나뉘고 서흉노가 천산산맥 근처에서 망한 뒤, 기원후 4세기경 다시 부흥하여 사르마트제국을 멸하고 서쪽으로 진출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이란계 유목민족의 일부가 지금의 우즈벡 사마르칸트 지역에 소그디아왕국을 만들고 명맥을 유지한다. 소그디아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때 기록에 등장하는데, 페르시아의 일부로 편입되어 존재했다. 

일설에는 소그드라는 말도 스키타이에서 변형된 이름이라고 하니, 아마 스키타이에서 페르시아쪽으로 넘어온 세력의 일부가 소그디아라는 왕국을 형성하고 오랫동안 존속했던 것 같다. 즉, 스키타이가 인도쪽으로 가서 샤카족(석가모니라는 말은 샤카족의 승려라는 일반 명사가 고유명사로 된 것이다)이 되고, 페르시아쪽으로 편입되어서는 이란계 유목민족이 되어 소그드인이 되었고, 동쪽으로 천산산맥을 넘어온 종족은 월지국에 통합되었다가, 흉노제국의 일부로 편입된 것 같다. 

소그디아는 초기엔 페르시아와 사산조페르시아의 속주였지만, 당나라는 물론 신라까지 들어가 교역을 하였으며, 당 나라 조정에 적극 진출하였다. 당나라 중기에 절도사를 지내고 반란을 일으킨 안록산은 소그드인 아버지와 돌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안식국 사람이었기에 성을 안씨로 쓴 것이다. 이후에는 점차 돌궐(투르크)세력이 강대해지자 그들과 결합하고 페르시아를 끌어들여 에프탈을 물리치고 서돌궐제국의 지배층을 형성했다. 또한 페르시아쪽을 밀어내고 로마와 직접 교역하였다. 

이들 소그디아인(소그드인)은 실크로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상업 및 무역활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신당서에는 "그들은 아기를 낳았을 때, 입으로는 석밀(꿀사탕의 일종)을 먹이고, 손에는 아교를 쥐어줬다"고 쓰며, "이는 성인이 되었을 때 입으로는 (상대에게)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손에 재물이 들어오면 절대 놓치지 말라는 뜻"이라고 쓰고 있다.   

혹자는 여기서 중앙아시아 그것도 머나먼 스키타이와 소그디아의 이야기에 왜 신라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가야와 신라에서 발견되는 유물과 우리 전통문화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들에 대한 소개를 하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그것은 단순이 사마르칸트의 아프로시압 박물관에 있는 소그디아 벽화의 고구려 사신도 때문만은 아니다.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적석목곽분이라는 무덤양식이 발달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금관 등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곳에서 발견된 신라의 금관은 나무와 사슴장식의 금관이었는데, 이것이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굴된 금관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금관만이 아니다. 신라의 골품제 역시 스키타이의 부족연맹체의 계급구조와 닮아 있다. 또 스키타이에서 유행했던 순장제도는 가야지역 무덤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번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의 전통복식의 원형을 기마민족인 스키타이의 복식에서 찾을 수 있다. 상하가 분리된 복장, 말을 탈 때 필요한 바지(궁고) 등이 북방 유목민족의 복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 술을 마실때 쓰여졌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뿔잔(각배)토기도 스키타이에서 만들어진 토기와 거의 흡사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신라 지배층의 유전자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일부에서는 스키타이가 무너진 뒤 남쪽과 동쪽으로 이동하였는데, 남쪽으로 간 일족은 석가모니의 샤카족이 되고, 동쪽으로 간 일족은 흉노제국에 결합되어 있다가 신라쪽으로 이동하여 신라의 지배층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스키타이의 무덤양식, 발굴된 유물과 지배층 장식품, 복식 등이 스키타이와 너무도 닮아있는 것이다. 

그럼, 스키타이 이후 활동한 소그드인은 왜 이야기를 하는가? 
소그드인은 스키타이계열의 이란계 유목민족으로 일찌감치 페르시아의 속주로 편입되었다가, 당나라시대 실크로드를 잇는 동서교역으로 크게 번성했다. 그래서 그들은 대체로 페르시아에 기원을 둔 조르아스터교를 믿었은데, 일부는 쿠샨왕조의 영향을 받아 인도쪽 불교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 후 페르시아가 무너지고 아랍이 들어서면서 이슬람 영향을 받다가 몽골지배에 들어가며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동서 교역활동을 하며 지내던 소그드인의 문화가 당나라는 물론 신라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로만글라스라는 유리도 소그드 상인들에 의해 전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전통악기 중에 가야금, 아쟁 등 현악기들이 이들 소그드 상인들에 의해 전해지고 탄생된 것들이다. 즉, 가야금과 같은 현악기들의 기원은 페르시아의 "창"이라는 악기인데, 이것이 당에 들어가 "쟁"이 되고, 신라에 들어와 가야금 등으로 변형되고, 일본에서는 "고토"가 된 것이다. 

또한 최치원에 의하면 소그드인들이 전한 음악을 신라 고유의 "향악"에 대비해 "속악"이라고 했으며, 신라의 음악은 "향악", "당악", "속악"이 있다고 했다(고려시대에는 향악과 속악을 묶어 "속악"이라고 통칭을 했는데, 이는 속악이 우리 전통음악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사자의 탈을 쓰고 하는 "봉산탈춤"과 "북청 사자춤"의 원형도 소그드인의 풍속에서 전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을 추론한다면, 울산의 처용무 역시 아랍 또는 소그드 상인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고, 처용무의 탈춤도 소그드인들의 놀이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고 보면, 스키타이와 소그드(페르시아)인들의 문화는 우리 전통문화의 원형질 중의 하나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무덤의 양식(적석 목곽분)과 금관 등 각종 유물들은 물론, 우리의 전통복인 한복의 원형과 전통악기, 그리고 음악과 민속놀이(봉산탈춤, 북청 사자춤, 처용무)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신체적 유전자 DNA까지... 그러고 보면 스키타이와 소그드(페르시아)는 한국 전통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거꾸로 보면 그만큼 한국은 신체적 혼혈인일뿐 아니라 문화적 형질도 다문화 융합형 특질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계속...>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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