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45] 다문화 역사인물 열전 4(바보 온달과 을지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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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재미있는 다문화 이야기 45] 다문화 역사인물 열전 4(바보 온달과 을지문덕)
  • (정리)김미연 기자
  • 승인 2019.06.0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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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한국의 역사에서 나타난 다문화 역사인물열전을 연재하고 있다. 그 중 첫번째인 석탈해와 두번째 허황옥에 대해 연재했고, 그 다음 귀화 외국인을 통해 국정을 개혁했던 고려 광종과 광종의 은혜속에서 과거제도 등 혁신적인 정책을 펼친 후주 출신 귀화인 "쌍기"에 대해서 연재했다. 이번엔 역사적으로 분명하진 않지만, 귀화 외국인으로 회자되고 있는 고구려의 두 인물, "을지문덕과 온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을지문덕과 온달 모두 고구려 평원왕과 영양왕 때의 사람이다. 이들이 고구려 조정의 전면에 선 것은 5부족 출신 권문세족이 아닌, 일반 평민이나 귀화인들을 중용하여 국정을 쇄신하고자 했던 평원왕의 개혁정책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보 온달"이며,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멸망직전에 빠진 고구려를 구원한 을지문덕 장군이다. 

<바보 온달>

먼저 바보 온달에 대해서 살펴보자. 바보 온달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은 그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나 신데렐라 신화와는 또 다른 평강공주와의 결혼이라는 한편의 드라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난 온달은 바보로 유명했다. 그는 구걸을 하거나, 산 약재를 캐어 내다 팔면서 노모를 봉양하고 있는 가난하고 어리석은 청년으로 나온다. 

사람들이 그를 바보로 놀리는 이유로 사료에서는 "못생긴 얼굴"과 "남루하고 비천한 옷 매무새"를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혹자는 온달의 행색(못생긴 얼굴과 남루한 옷차림)만 가지고 사람들이 바보로 놀리진 않았을 것이고, 진 귀한 산약재라도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헐값을 받고 넘겼기 때문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료에서는 특이하게 "남달리 못생긴 얼굴"이라고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즉, 보통의 고구려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겼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또 옷 매무새를 거론한 것도, 온달이 특이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 아닌가 하는 추정도 가능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가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지역의 소그디아에서 온 소그드인 출신이 아닌가 하는 추론을 하는 것이다. 

왜 굳이 소그드인이라고 할까? 그것은 당시 천산산맥 너머 소그디아와 고구려의 사신왕래가 빈번했고(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벽화에 고구려 사신의 그림이 그려져있다), 소그디아에 대해 신당서에 "온씨"가 왕을 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그디아출신들 중에 "안씨" "온씨" 등의 성씨를 가지고 활동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당나라에서 난을 일으킨 안록산도 소그디아 출신이었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활동한 "온씨"는 바보 온달의 온달과 김춘추의 호위병으로 활동했던 "온군해"가 거의 유일하며, 그 당시에만 온씨 성이 역사적 사료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온달의 성씨가 우리 역사에서는 보이지 않는 성씨라는 것, 그의 얼굴이 남다르게 못생겼다는  것, 그리고 옷 차림이 특이했다는 것, 그리고 고구려와 빈번하게 접촉하던 소그디아의 왕족 성씨가 온씨였다는 것으로 인해 "바보 온달"이 소그디아 출신이거나, 소그디아 출신의 후손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바보 온달"은 못생기고 특이한 생김새와 가난하지만 우직한 성품으로 고구려의 수도에서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원왕이 어려서부터 울보로 태어난 평강공주에 대해 혼을 내거나 놀려주려고 "못난이"의 대명사인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협박(?)을 하게 되어, 사단이 발생하였다. 즉, 어려서부터 자기를 "바보 온달에게 시집갈 사람"으로 생각을 해버린 평강공주가 유력가문인 고씨에게 시집을 보내려는 평원왕에게 반발하며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궁궐을 나온 평강공주를 맞이한 온달의 어머니와 바보 온달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눈먼 소경이었던 온달의 어머니는 평강공주의 몸에서 나는 향기와 부드러운 손을 만지고는 "(혼사가) 어림없는 소리"라며 반대를 했고, 먹을 것을 찾아 산에 가서 느릅나무 껍질을 벗겨서 오던 바보 온달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거절했다(여기서 온달의 어머니와 온달이 세간의 평가처럼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정도로 유명한 바보라면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공주의 청혼을 거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사코 거절하던 온달 모자는 평강공주의 진정성을 알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평강공주는 궁궐을 나올 때 가지고 나온 패물로 집과 가재도구를 마련하여 어느정도는 살만한 집으로 만들고, 온달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온달도 열심히 공부를 했고, 공주가 시키는대로 처신했다. 공주가 말을 사오라면서 "말을 사오되 관아에서 버린 비쩍마른 말을 사와라"는 식이었다. 관아에서 버린 말이면, 어느정도는 기초가 되었으나, 관리를 못해 몹쓸 말이 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인 것이다. 

온달은 그런 말을 사다가 훌륭하게 기른 뒤, 평원왕을 따라 사냥을 나가서 누구보다 많은 동물을 사냥하게 되고, 왕의 눈에 띄이게 되었다.  그런데, 후주의 무제가 군사를 내어 고구려로 쳐들어왔다. 이 때 하급무사로 출전한 온달이 선봉에 서서 수십명의 후주의 군사를 베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워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이에 평원왕이 신하들에게 온달이 자기 사위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평원왕이 죽고 평강공주의 오라버니인 영양왕이 왕위에 오르자, 온달이 나아가 신라에게 빼앗긴 죽령 이북 한강유역을 되찾아 오겠다고 하고 출정을 요청하였다. 이에 영양왕이 허락하여 아단성(아단성에 대해선 한강 이북의 아차산성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이라는 이야기도 있다)에서 신라군과 격돌하다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는 기록이다. 그 후 장례를 치르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다가 평강공주가 와서 쓰다듬으니 관이 움직였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을지문덕>

을지문덕 장군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대표적인 위인, 영웅 중의 하나이다. 삼국사기의 김부식조차도 열전편에서 "김유신전" 다음에 "을지문덕전"을 실을 만큼, 을지문덕의 지략과 용맹을 높이 평가하였다. 심지어 현대에  들어와서도 서울의 중심가에 "을지로"라는 명칭을 붙어있고, 군대의 무공훈장의 이름도 "을지무공훈장"이라는 이름이 있고, 또 한미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국가적 방위훈련의 이름도 "을지프리덤 가디언 훈련"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또 해군 전함에도 "을지문덕 함"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심지어 주한미군인 12사단의 이름도 을지부대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이처럼 "을지문덕장군"은 충무공 이순신, 강감찬 장군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장이고 영웅의 한사람으로 이름이 높다. 그런데, 이처럼 이름이 높은 "을지문덕 장군"임에도 수나라와의 전쟁사에 등장한 활약상 외에는 그 어떤 기록도 전해지고 있지 않다. 

삼국사기에도 을지문덕 장군에 대해선 "을지문덕의 출생지와 가문의 계보 등은 불확실해서 알 수가 없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다만 200만(전투군대 113만, 보급대 등을 모두 합하면 300만이라는 기록도 있다)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온 수양제가 을지문덕을 익히 알고, "반드시 사로잡으라"고 명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고 출중했던 인물이었음엔 틀림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은 모두 4차례에 걸친 대 전쟁이었다. 동원된 군사는 수양제 때만 300만이 되었고, 수문제까지 더하면 300만을 훌쩍 뛰어넘는 전쟁이었다. 동원된 군사로 보면 전세계 1차, 2차 대전 이전을 통틀어 인류역사에서 가장 큰 전쟁이었던 것이다. 필로폰네소스 전쟁, 1, 2차 포에니 전쟁, 알렉산더 동방원정, 십자군 전쟁, 백년전쟁, 아랍제국 건설, 고구려 당나라 전쟁, 심지어 징키스칸의 세계 정벌 전쟁까지 통틀어도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에는 미치지 못한다.  

군사적 동원에서만 역사적인 것이 아니다. 전쟁의 승패도 역사적인 기록이었다. 즉, 전투부대만 113만(총 300만)으로 고구려를 완전히 쓸어버리려고 진격하던 수양제였다. 오죽하면 산동반도에서 요동으로 진격하려던 배가 출전하는 시간만 몇달이 걸리고, 군대 대열만 90리에 뻗쳤다고 하겠는가? 그리고 군사의 별동대만 30만명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향해 진격하던 우중문, 우문술과 수병들이었다. 

그것을 을지문덕 장군 본인이 스스로 거짓 항복하여 적진을 살핀 뒤, 추격을 유인하며 7번 싸워 7번 패하는 게릴라전으로 상대의 힘을 뺐다. 거기에 내호아가 이끄는 수군의 평양 공격이 패배함으로써 완전히 힘이 빠지게 된 수나라 군대에 조롱석인 시를 보내어, 되돌아가도록 했다. 철수하는 수나라군대의 뒤를 쫓다가 살수(청천강)에 이르러 뒷덜미를 공격하고, 대오가 무너진 틈을 타 총공격을 퍼부어 완전히 궤멸을 시켜버린 것이다. 

얼마나 수나라군대가 정신없이 도망을 쳤는지에 대해선 사료에 나오고 있다. 즉, 청천강에서부터 압록강까지 450리길을 하루밤에 달아났다고 하며, 또 살아서 압록강을 넘은 자가 모두 2700명에 불과했다는 기록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기록이 아니라, 수나라에 이어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의 기록에 나타나 있다. 어찌보면 중국 역사상 가장 최악의 굴욕적 전쟁이었던 셈이다. 결국 수양제도 군사를 돌려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에 재침공을 했지만, 오히려 반란으로 수나라 자신이 멸망하고 말았다. 

즉, 전쟁에 동원된 군사도 역사적인 것이었지만, 승패에서도 멸망직전에 몰린 고구려와 멸망시키려온 수나라의 처지가 전쟁후에는 완전히 뒤바뀐 전쟁이었다. 다시말해 고구려를 쓸어버리려던 수나라를 거꾸로 멸망시켜버린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은 역사에 기리남을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고, 그 결과 또한 역사적인 것이었다. 그 전쟁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전승장군은 을지문덕 한 명이다. 그런데, 그 을지문덕 장군에 대해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오직 전쟁 전후에 홀연히 나타나 멸망 직전의 고구려를 구하고, 거꾸로 수나라를 멸망시켜버린 위대한 장군으로만 남겨져있을 뿐이다. 

그것은 고구려, 발해 멸망이후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조차 불분명해졌기 때문으로 판단된다(고려와 거란이 모두 고구려를 계승하였다고 주장했으나, 실제적으로는 어떤 계승을 했는지도 불분명하다. 또한 고구려지역에 세워진 금나라조차 자기들은 신라를 계승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청나라의 만주원류고). 또한 잇딴 전쟁 참화로 수많은 기록들이 유실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최고의 기록인 삼국사기조차 수, 당 등 중국의 역사서를 빌려 을지문덕전을 꾸미고 있다. 그 이후 고려나 조선시대 단편적인 모습으로 을지문덕의 출신에 대해 "평양출생"이니 "을파소 등 을씨가문"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지만, 추론일 뿐이다. 이같은 추론과 비슷한 이야기 중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귀화인 출신이라는 주장이 있다. 

즉, 고고학자인 김원룡 교수는 을지문덕 장군의 가계에 대해 "을지문덕의 성씨인 을지가 선비 귀족의 성씨인 울지(蔚遲)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울지씨는 탁발부 선비족의 귀족가문인데, 북위를 건설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래서 중국의 남북조시대 사서에도 울지강, 울지형, 울지경덕 등 여러명이 등장한다. 그런데, 북위를 수문제 양견이 찬탈할 때, 울지형이 막다가 죽자, 화를 피하기 위해 고구려로 망명해왔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당나라의 자치통감 주석에 을지문덕을 "울지문덕(蔚遲文德)으로 표기"한 것을 들었다. 

이같은 주장에 다른 주장도 있다. 즉, 목천돈씨 집안에서는 자신들이 원래 "을"씨였는데(을지의 지는 높임조사), 고려 묘청의 난때 공을 세워 돈씨로 사성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주장으로는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5부족 같은 세도 명문가는 아니었지만, 태어난 곳이 평양(조선시대 일부 기록, 그외 신채호)이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살수대첩과 같은 엄청난 공을 세운 을지문덕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전쟁 이후의 삶에 대해 어떠한 기록도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바보온달의 경우 소그드출신이거나 그의 후손이 아닐까 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을지문덕 장군의 경우 선비족 출신이 아니겠는가 하는 추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둘이 모두 평원왕의 권문세도가 견제와 평민우대정책의 일환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커다란 공훈을 쌓게 되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별로 없다. 즉, 평민, 또는 하급귀족, 또는 이주민(귀화인) 출신으로 평원왕의 귀족견제와 개혁정책에 힘입어 중앙정계에 진출하고, 국난에 빠진 고구려를 구한 위인들이라는 점이다. 

<계속...>

김성회 칼럼니스트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입니다. 김성회 대표는 연세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장,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과 이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김성회 대표는 일찍이 다문화 시민운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각종 다문화관련 행사와 방송출연, 전문패널 등의 활동을 통해 올바른 다문화 정책수립 및 문화 형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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