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선종했다는 뉴스가 전국을 강타한 평화로운 주말이다. 이제는 서울의 인근 자연환경에서도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날씨로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왔다.

정의와 평화의 전도사였던 교황이 죽었다는 소식이 ‘평화(平和)’라는 개념을 더욱더 선명하게 우리의 가슴속에 각인시키는 것은 작금의 한반도 주변의 세상사가 그리 수월치 않음을 고려 할 때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우리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공식적으로 언론에 발표된 이후,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의 계속적인 반응이 나오기에 요즈음 필자의 관심은 어떤 논조로 대한민국의 현실을 진단하고 있는지에 쏠려 있다.

다소 비현실적이고 관념론적인 접근이지만, 이러한 정책적 아이디어의 근본적인 동기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다시는 용납할 수 없다는 우리 모두의 소망이 담긴 것이라는 것에는 전혀 이의가 없다.

문제는 바로 오늘의 현실을 진단하는 방법과 앞으로의 우리정부의 외교적 대처능력일 것이다. 북한의 지도부를 지나치게 자극해서 우리 정부에게 도움이 될 것이 없다는 근본적인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민족공조론’이 북한체제를 움직이는 지렛대로서의 결과적 효율성측면에서는 별로 국민들을 설득할 자료나 성과가 보이질 않는 것 같다.

또한 다소 현 김정일 체제의 독재와 북한 인민들의 고통을 인정하더라도, 급격한 북한사회의 변화를 초래할 정치적 사건이나 군사적 움직임을 예방할 목적으로 우리 정부가 김대중 정부 시절의 ‘햇볓정책’이나 현정부의 ‘평화번영정책’으로 북한을 대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핵 문제를 포함한 난제들을 다루는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자문을 해야만 하는 시점에 온 것 같다.

필자가 오늘 인터넷을 통해서 읽은 한 기사가 유난히도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하는 내용측면에서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것 같아 보인다.

우리정부의 최근 대외안보정책 기조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도 지키고 동북아에서의 균형자 역할도 하겠다”는 최고 통치권자의 수사(修辭)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우리정부의 기조에 대해 우리의 우방들은 물론, 우리가 다가갈 대상으로 상정되고 있는 나라 중국내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에도 명확한 개념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결국은 대북압력정책을 추진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이에 한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한.미동맹관계의 유지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문제를 두고 한국과 미국이 보이고 있는 이견이 일정수준에 달하면 결국은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것이 일부 학자들의 분식이다. 중국인들은 어떻게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균형자 역할이 가능한지 많은 의문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균형추가 된다는 것은 어는 한곳에 얽매이지 않고 중간자적인 견해와 공정한 중립성을 기본 요건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균형자의 역할을 할 만한 능력과 힘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좋은 도덕적 가치와 명분으로 관련국들을 설득해도 그 누구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지론이다.

평화 시에야 조정과 타협의 시간과 장소가 부여될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전쟁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한다면 균형자 역할을 하기는 커녕 애매한 입장에 선 정치적 선택의 여파로 적과 친구의 구분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이 입는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정부가 그토록 ‘균형자역할’의 실현을 원한다면, 비록 어렵지만, 당분간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일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 현 상황에서 미국의 안보우산 그늘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우리의 안보를 책임 질 수 있는 능력과 여건마련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그나마 수사(修辭)가 아닌 실질적인 균형자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다. 동북아의 안보구조를 볼 때 필자는 이 논의가 매우 부적절한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100%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전세계의 군사전문가들은 세계의 열강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한반도를 분쟁발발 가능성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보고 있음에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첨예한 이익을 나누고 있는 대만해협이 한반도에 이어서 두 번째로 분쟁의 가능성이 많은 지역으로 보여지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달 16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의 연방의회에서 열린 ‘제2차 북한의 민주화 및 한반도 통일 전략 마련을 위한 국제포럼’에 발제자로 나선 케네스 퀴노네스(C. Kenneth Quinones)씨는 “만약 6자회담이 성공적으로 북 핵(核) 문제를 다루지 못할 경우 한반도에는 전쟁가능성이 있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으로 있는 북 핵(核) 관련 당사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는 클린턴 정부 시절에 국무부의 북한 핵 담당 대사를 지냈고, 현재는 국제행동협회 한반도 책임자로 있는 지한파이다.

우리 정부가 어떠한 형태라도 전쟁을 반대한다는 지당한 명분과 논리를 갖고 우리와 가장 밀접한 안보협력을 해온 미국과의 협상과정에서 조차 미국을 설득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앞으로 우리 정부의 전략부재 및 안이한 현실인식을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1994년 ‘북미제네바합의’를 이끈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 전 미국무성 차관보도 지난 달 30일에 “북한이 외부로 핵 물질은 유출할 경우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 것에 우리가 통상적인 관심 이상의 배가된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비공식적으로 들려오는 주한미군 재조정문제를 비롯한 장비이동에 대한 미국의 움직임 그 자체도 우리를 긴장케 하는 중요한 사실적 근거인 것이다. 한 군사전문가의 글에서 나온 내용 중에서도 “우리나라에 배치한 많은 군 장비 및 군수물자가 오끼나와로 옮겨지고 유사시에 한국과 미군이 사용하기 위해 미리 비축해 놓은 탄약, 폭탄, 전차, 정밀유도폭탄, 패트리얼 미사일 등 약 60~70만톤 규모의 군사장비까지 일본으로 옮긴다는 미국의 움직임”에 우리 정부는 어떤 대책으로 그들을 설득하고 있는가? 이 장비들을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8조원에 이른다고 그 전문가는 글에서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프카니스탄, 이라큰 전쟁에서 사용한 최신무기들이 태평양사령부의 예하부대에 배치되었고, 하와이와 괌 도에 나누어져 있던 미 공군 제3사령부를 일본 ‘요코다’로 통합시켰다는 최근의 군 관련 소식을 우리의 군당국은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미일동맹이 강화된다는 구체적인 사실들이고, 한미동맹의 축이 흔들리고 있다는 구제적인 증거인데 우리 외교부는 아직도 ‘한미간의 굳건한 동맹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고 및 전처럼 굳건한 신뢰에 기반한 관계”라는 의전적인 내용으로 앵무새처럼 떠들 것인가?

우리가 그처럼 애지중지하면서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잘못된 그들의 요구나 태도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발언을 자제하고 어디에 쓰는 지도 모르는 막대한 현금까지 주면서 달래온 ‘북한의 현 체제’가 멀어진 우리와 미국 그리고 일본관계에서 파생되는 우리의 안보이익을 대체해 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우리의 친구요, 동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긴박한 역사의 현장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아니면, 중국이 이러한 우리의 안보이익을 대신 지켜 줄 수 있는 믿을만한 우리의 이웃 나라인가? 오직 검증과 사실에 기반한 답만이 우리의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한반도 주변의 안보상황이 이렇게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관념론(觀念論)과 이상론(理想論)에 기댄 우리만의 수사(修辭)로서 우리 국민들의 안위(安危)와 생존권(生存權)을 지킬 수 있는 것인지 재차 묻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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