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정부의 안이한 현실인식

우리정부의 안이한 현실인식
6월 위기설을 위기로 보아라
우리정부의 안이한 현실인식

지난해 말까지 미 중앙정보국(CIA) 요직을 지낸 아서 브라운 위기관리그룹(CRG) 선임부회장이 “북한은 1년 내내 동굴이나 광산갱도에서 핵 실험을 실시할 공산이 크다.” 는 전망을 한 적이 있다.

CIA 비밀공작부서 동아시아 책임자를 지낸 브라운 부회장은 구체적으로 “핵 실험장에서 새어 나온 소량의 방사능 낙진이 일본 쪽으로 흘러가면 “서울과 도쿄의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한국내 외국계 기업들은 철수나 사업축소를 저울질하게 될 것이며, 미국은 대북 봉쇄조치를 취할지 아니면 다른 조치를 취할지를 놓고 논쟁을 벌일 것”이라는 내용의 브리핑을 CRG의 주요 고객인 일부 미국 기업들에 이 같은 내용 골자로 한 북한 핵 문제에 관한 브리핑을 했다고 와싱턴 포스트 컬럼니스트 데이비드 이나시오가 현지시간의 6일자칼럼으로 전했다고 국내의 한 뉴스사가 보도한 적이 있다.

북 핵 문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정부도 북한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북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 관측되어진다.

중국은 그 동안 북 핵이 유엔의 안보리로 가는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6일에 있었던 한중외교장관회담과 8일자로 행해진 한중정상회담에선 과거와는 다른 수위의 강도를 담은 발언을 한 것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후진타오 중국의 국가주석은 8일자에 모스크바에서 행한 노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최근에 한반도 핵 문제는 주목해야 할 새로운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는 이례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물론, 아직도 각론에서의 처방에선 북한의 입장을 일정부분 두둔하는 듯한 선에서 “우리는 시종일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한반도 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각 관련국들의 공동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는 첨언을 잊진 않았다.

겉으론 이러한 중국의 입장이 미국과의 국익을 놓고 벌이는 물밑 조율의 장에선 몇 가지의 시나리오로 고민하고 있는 그들을 못 보아선 안 된다.

비상사태에 대비한 공조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주문하는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고위관료들이 연속적으로 한반도의 미래와 북 핵 관련 발언을 하는 것을 우리 외교부가 놓쳐선 안 된 다.

매우 우회적인 간접화법으로 지한파(知韓派) 이면서 서울에서 부대사를 수년간 역임한, 필자도 알고 지냈던 에번스 리비어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가 지난 2일자로 한국기업연구소(KEI)가 주최환 간담회에서 “한미동맹이 과거에 비해 낙관할 수 있는 점이 많이 졌지만 도전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1의 도전과제는 북한과 북한 핵을 다루는 법”이라고 한국정부를 향해 외교적인 발언을 한 기억이 난다.

이외에도 비공식적이 자리에서의 한국정부를 향한 강경발언들이 갖고 있는 함축적인 의미를 우리 정부가 되새겨야 한다.

아직도 북 핵 해법을 놓고 미국과 일본은 강경압박 카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표면상으론 한국과 중국은 반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아직도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촉구하는 나름의 의중을 직간접으로 국제사회에 흘리고 있다.

만약 북한이 6~8개의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이는 미국의 1만 350개와 맞먹는 수준의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핵 전문가들의 분석을 귀담아 듣고 있는 미국정부의 선택은 선명해 보인다. 핵 실험까지 실시하여 핵 보유를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날, 미국은 그 동안에 준비해 온 강경카드를 꺼내서 미국과 동등한 자세에서 협상에 임하려는 북한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다. 핵 실험은 동북아에 당장의 큰 안보불안을 야기하여 군비경쟁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져 미국과 일본의 연합에 의한 군사행동의 단초를 제공하는 한반도의 가장 큰 자충수(自充手)가 될 확률이 농후하기에 걱정이 앞선다.

정작 중요한 것은 피해의 가장 큰 당사자인 우리나라 정부와 국민의 태도이다.

우리정부는 북 핵의 실험을 예측하는 국제사회의 분석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황악화를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지만, 북 핵 문제에서 주변부 국가로 전락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한반도통일 및 안보관련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문정인 동북아시대 위원장은 이구동성으로 각각 “ ‘북 핵 실험설’에 대해 사실을 천착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도 북 핵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기본정책은 아직 수정치 않고 있다.”고 했고, “6월 위기설은 일본의 보수 언론들이 띄우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이 심각한 사태를 굳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과거 2002년 가을 농축 프로그램으로 2차 핵 위기가 불거진 이후 2003년의 각각 3월과 10월, 2004년의 10월 위기설 등이 나왔지만 모두 대화를 통해 해결됐거나 혹은 별 일 없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들면서 우리의 한 정부당국자가 이번에도 그냥 넘어 갈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국내의 유력 신문이 보도하고 있는 현실을 본다.

정말로 그럴 정도로 우리 국민들이 안심하고 안보문제를 우리 정부의 판단에만 맡겨도 되는 상황인가?

“6월 위기설이라도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다”는 우리 정부의 안이한 인식으론 미국과의 긴박한 현실인식을 담은 공조체제 마련이 어려워 보인다. 이 것이야 말로 문제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이라크에 대해서도 10여 년간 47개의 유엔 결의안이 채택된 뒤에야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식의 설익은 분석을 하는 우리 관료들의 인식이 문제가 아닌가?

이라크와 북한이 어떻게 동등하게 취급되고 중동과 한반도가 어떻게 같은 과정을 거치는 문제해결의 과정을 그리도 쉽게 장담을 한단 말인가?

북 한은 이미 국제사회의 금지선(red line)을 넘고 있는, 오히려 이라크보다 더 긴박한 상황을 몰고 올 여러 요인들은 다 갖추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편적인 정서를 거스르는 국제사회의 신임을 저버린 불량국가가 된지 오래다. 우리가 우리 민족이기에 감싸는 노력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냉정한 안보문제의 속성상 이제는 우리 정부가 단호한 목소리로 북한 정부의 어리석은 핵 놀음에 대한 분명한 ‘독트린’을 천명해야 하는 것이다.
2005-05-10 박태우(臺灣國立政治大學 客座敎授, 國際政治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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