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수들, 해외사업 점검 및 네트워크 강화차 해외 출장 잦아져
재계 오너가 3세들, 경영수업차 그룹 신사업 일선으로 전진배치돼

(우측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7일 도쿄 게이단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에서 도쿠라 마사카즈 게이단렌 회장의 개회사에 박수 보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뉴스캔=박진용 기자] 2023년 재계는 주요 그룹 총수들이 글로벌 시장환경 불안 속에 경영권 승계 정지작업으로 그룹 내실을 다지는 한편 해외 네트워킹을 강화하며 안정적인 미래 먹거리 확보까지 챙기는 원년으로 삼았다는 게 중평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엔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으로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만큼, 재계가 변동성이 커진 해외시장에서 새로운 일감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한 한 해였다. 

아울러 국제적 경기불황과 고금리, 내수 부진, 인플레이션 등 악재가 널린 상황에서 그룹 경영권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는 재계 오너가의 인식이 굳어지며 세대교체까지 대거 이뤄지는 모양새다.


◆ 재계 총수들 매달 해외 출장…코로나19에 단절됐던 네트워크 복원


올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이 사실상 종료되자 재계 총수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전세계적 전염병 창궐에 글로벌 시장교류가 단절됐던 네트워크를 복구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동유럽과 중동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글로벌 체인이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더욱 공고한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작용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아울러 우리나라 재계는 미-중 패권경쟁에 따른 주변국들의 복합적 이해관계와 강대국들의 보호무역주의 발현에 끼여 중장기적 혜안을 갖고 기민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이 어려운 여건에 처한 실정이다. 게다가 해외 유수의 기업들과 수출품 공급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펴야 하는 여건 속에서 K-기업의 경쟁력을 어필하려면 그룹 간판인 총수들이 소매를 걷어붙여야만 하는 상황이다. 올해 한 달에 한 번 꼴로 그룹 총수들이 출국 비행기에 몸을 실은 배경이다.  

이들은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길에 동참하며 1호 영업맨을 자처하고 나섰다. 대기업 오너들은 지난 1월 윤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방문을 시작으로 일본(3월), 미국(4월), 베트남(6월), 폴란드(7월), 중동(10월) 등 빡빡한 해외일정을 소화했다. 이를 통해 해외 각지에서 주요 사업부문의 현지 진출 물꼬를 트고, 블루오션 개척 성과도 냈다. 또한 윤 대통령의 국정을 보좌해 민간 외교관으로서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다.

그 중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를 해외 사업장을 집중 점검하는 계기로 삼기도 했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본산인 일본에 가서도 현지 사업장을 중심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재각인시킨 바 있다. 당시 신 회장은 롯데 오너가의 차기 경영인으로 손꼽히는 신유열 전무를 동행시키며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밑작업도 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그룹 내 대권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는 김동관 한화 부회장도 부친인 김 회장을 대신해 외교사절단에 꾸준히 몸담았다. 폴란드에서 잠수함 수주전에 나선 데 이어, 친환경 에너지 등 한화의 주력 신사업을 해외에 적극 어필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올해 해외 출장에서 K-반도체의 위상과 경쟁력을 앞세워 공급망 확보에 전념했다.


◆ 재계, 3세대 경영으로 세대교체 가속화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사진=한화그룹 제공]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사진=한화그룹 제공]

올해 재계는 세대교체 물결도 일었다. 재계 총수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부합한 경영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3세 경영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 역동적인 업황과 기술현황에 시의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오너가 후세 경영으로 젊은피를 수혈하려는 시도다. 나아가 대외적으로는 책임경영을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으로도 읽힌다.

이들 '잠정 오너'들은 공통적으로 그룹 내 신사업에 전면 배치하고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특명을 짊어졌다. 그룹 총수들의 경영수업인 셈이다. 

한화그룹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지난 8월 그룹 2인자로 자리매김했고, 그에 앞서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대표도 지난 2월 승진했다. 이어 3남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전 전무)도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경영권 중심부로 한층 다가갔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고,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 겸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으로 전진 배치됐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이 그간 일본 롯데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신 전무를 귀국시킨 것은 사실상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각이 짙다. 

이 밖에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 대표이사 사장이 지주사 코오롱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고, HD현대그룹 역시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지난달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경영권 승계가 착착 이뤄지는 모습이다. 삼표그룹 정대현 부회장, 한솔그룹 오너가인 조성민 한솔홀딩스 부사장 등도 그룹 내 지위 격상으로 올해 재계 3세 경영의 한 물줄기를 이뤘다.

재계 한 관계자는 28일 <뉴스캔>과의 통화에서 "대내외적 여건이 불안할수록 경영권 승계 등으로 책임경영을 대외에 공식화하며 내실을 다지는 방식은 재계 오너가의 오랜 문법"이라며 "또 최근 국내 대기업들 사이에서 비중이 커진 신사업은 오너가 3세들에게 최적화된 경영수업장이 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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