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불교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것을 비유할 때 연꽃을 든다. 진흙층이 쌓인 연못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결코 그 더러움에 더럽혀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연꽃잎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잎에 떨어진 빗방울이나 아침 이슬은 잎을 적시지 못하고 동그랗게 뭉쳐서 주르륵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표면에 있던 오염물이 물방울과 함께 씻겨나가기 때문에 연잎은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육안으로 보면 연꽃잎은 다른 잎들보다 훨씬 매끄럽게 보인다. 단순히 표면이 매끈매끈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미경으로 나노 크기를 볼 수 있을 만큼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연꽃잎 표면은 3~10㎛ 크기의 수많은 혹(bump, 융기)들로 덮여 있고, 이 혹들은 나노크기의 발수성(water-repellent) 코팅제로 코팅되어 있다.

이러한 울퉁불퉁한 독특한 구조 덕택에 연잎 위에 떨어진 물방울은 잎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내리게 된다. 즉 연꽃잎 위의 물방울은 돌기 위에 떠 있기 때문에 표면에 접촉하는 면적이 크게 줄어들어 표면장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연꽃잎과 물방울의 접촉 면적은 덮고 있는 표면의 2-3%밖에 되지 않는다. 물방울이 공기 위에 떠있는 모양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불안한 상황이다 보니 물방울이 모이고 합쳐져서 무거워질 때 땅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게 된다. 이때 잎에 앉은 먼지들도 물에 씻겨서 덩달아 떨어지면서 스스로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이다.

이런 특징을 학술적으로 ‘연꽃잎 효과(lotus effect)’라 한다. 이를 처음으로 명쾌하게 설명한 사람은 독일의 본대학교의 식물학자 빌헬름 바르트로트(Wilhelm Barthlott) 교수였다. 그는 현미경을 통해 연꽃잎을 관찰하고 나노규모에서는 거친 표면이 매끄러운 표면보다 더 강한 초소수성(疏水性 : 물과 친하지 않는 성질)을 나타낸다고 밝혔다. 울퉁불퉁한 표면 덕택에 연꽃잎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면 방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표면이 조금이라도 기울어져 있으면 미끄러져 내린다는 것이다. 덕분에 아무리 심한 소나기가 내리는 동안에도 연꽃잎이 늘 마른 상태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먼지들은 물방울에 쓸려 내려가도록 해 연의 잎은 자정작용을 하게 된다.

반면 연꽃잎은 물방울의 상태에 따라 친수성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밀리미터 크기의 물방울에 대해서는 방수 역할을 하는 연꽃잎이지만, 응축된 수증기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성질을 보인다. 예를 들어 연잎을 수증기가 나오는 위치에 두면, 수 분 후 물은 연잎 상에서 작은 물방울들이 모인다. 아주 가는 입자가 합쳐져서 물방울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수증기의 작은 물방울이 연잎에 존재하는 나노크기 실타래 같은 것 사이에 갇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연꽃잎의 자정 능력은 어디에 사용될 수 있을까? 독일 본대학교 연구팀은 이런 원리를 이용한 꿀 숟가락을 개발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표면이 매끈매끈한 숟가락이라도 꿀이 넓게 퍼져서 잘 떨어지지 않지만, 연꽃잎 효과를 응용하면 달라진다. 연구팀은 꿀 숟가락은 표면에 수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크기의 특수 실리콘 돌기를 붙였다. 이 돌기 덕택에 꿀은 숟가락에서는 이 표면에 묻은 꿀은 퍼지지 않고 구슬 모양으로 뭉치게 된다.

비만 내리면 저절로 깨끗해지는 유리창, 물만 한번 내리면 깔끔해지는 변기, 비 한번 맞으면 청소가 자동으로 되는 자동차 등의 개발이 가능하다. 실제로 청소를 하지 않아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유리창, 하얀 면바지에 콜라를 흘려도 손으로 툭툭 털어 내면 깨끗한 원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면 섬유, 가죽·나무·섬유 등에 뿌리면 물과 오염을 방지해주는 스프레이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한 화학 및 바이오센서 등의 마이크로 소자와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등 차세대 대형 디스플레이의 표면 코팅에서도 연꽃잎 효과를 이용한 코팅 기술이 사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초친수(超親水)’ 현상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표면에 물방울이 묻으면 얇게 펼쳐지는 초친수 현상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연구됐다. 도쿄대 연구팀이 이산화티타늄을 이용해, 초친수성을 구현해 낸 것이다. 이후 미국 벨연구소 톰 크루펜킨 박사팀은 초발수성을 띠게 만든 실리콘 기판에 전기를 걸면 표면이 초친수성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우리나라에서도 포스텍 화학공학과 조길원 교수팀은 2006년 물질 표면 일부만의 특성을 변화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초친수 성질과 연꽃잎 효과를 함께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활용범위가 훨씬 넓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잉크젯 프린터다. 잉크를 뿌려주는 노즐에 초소수성질을 응용하면 잉크 노즐에서는 잉크를 방울방울 떨어지게 만들 수 있고, 초친수성을 이용하면 종이에는 잉크를 얇게 퍼지게 뿌려줄 수 있다. 이렇게 노즐의 성질을 원하는 대로 변화시켜 적은 수의 노즐로도 다양한 인쇄가 가능해진다.

또한 약이 몸속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하는데도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즉 당뇨병 환자가 정기적으로 맞아야 할 인슐린의 경우, 환자의 몸속에 뭉쳐진 형태의 약을 주입한 다음, 필요할 때 얇게 퍼지게 한다면 약효를 오랫동안 지속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노단위에서는 표면에 따라 다양한 성질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를 구현하기 위한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진흙 속에서도 결코 자신을 아름답게 지키는 연꽃잎에 대한 연구는 나노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제 우리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바꿔 놓을 것이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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