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소자 나산부인과의원 부원장

남소자 나산부인과의원 부원장
 
 

13세기 유럽인구의 절반을 하늘나라로 보낸 페스트의 악몽이 되살아났는가. 몇 십 년 전만 해도 부의 상징이었던 비만이 삶의 질을 낮추고 현대의학이 75~80세까지 올려놓은 평균수명을 줄이는 사회역병으로 발전, 국민건강을 좀먹고 있다. 특히 여성은 뚱녀란 인식을 주는 것이 싫어 먹을 때마다 살이 찔 것이란 예기불안을 일으켜 거식증(拒食症)을 스스로 앓으며 드디어 자신이 “왜 이렇게 됐는가” 하는 자기혐오증에 빠져 우울증까지 앓는 여성이 늘고 있다.




우리 사회현실은 매년 40만 명씩 비만인구가 늘고 있으며 3년 전인 2005년에 성인비만인구가 1100만 명이나 되고 있다. 증가하는 비만인구를 지금 통제하지 않으면 20년 후에는 국내인구 2명중 1명이 뚱보나 뚱녀가 된다는 통계다.




비만의 원인이 먹는 것 즉 영양과다에다 운동부족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기다 식생활의 서구화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나 TV에 나오는 구미여성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날씬하지만 기름진 음식을 조금 먹고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는 그들의 비만문제는 이에 파국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거리를 오가는 서구 남녀들을 찍은 뉴스는 보기만 해도 끔찍스럽다. 여성의 경우 큰 바가지를 엎어놓은 듯한 가슴, 몸 전체가 히프에 가린 듯한 펑퍼짐한 뒷모습은 아무리 잘 봐 주려해도 시선(視線)공해다. 우리나라에서 비만과 관련된 사회 경제적 비용이 1조5천억원에서 2조원정도 된다는 통계는 눈을 감는다 쳐도 의사입장에서 보는 건강문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국가적 문제다.




우선 그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는데 심장은 얼마나 부담이 많을까. 온몸에 피를 공급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박동을 해야 하는 심장은 혈류가 막힌다든지 심장근육의 힘이 약해 맥박이 느려지면 그 결과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쓸데없는 지방이 피부 밑에 쌓이다 못해 혈관내벽에까지 침투해 혈관이 굳어지는 경화증, 핏속에 당분이 너무 많아 인체 신진대사를 방해하는 당뇨, 결과적으로 좁아진 혈관을 통해 무리하게 혈액을 공급하려다 뇌 속의 작은 핏줄을 터지게 하는 뇌졸중 등은 가벼우면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심해지면 결국 사망에 이른다.




더욱 나쁜 것은 신체의 각종 암 발생을 급격히 늘린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여성의 유방암 발생률이 현저하게 높아져 세계보건기구(WHO)의 분석결과에 의하면 1985~87년 사이 전세계 25~49세 여성 중 유방암사망률이 가장 빠르게 증가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여성이란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1999년 인구 10만 명당 24.5명이던 유방암환자가 2005년에는 35.5명으로 늘어 매년 6.8%씩 증가, 발생 사망률 세계 1위의 영예(?)를 안게 됐다. 버들가지처럼 호리호리한 허리에 알맞게 퍼진 몸매의 우리나라여성이 왜 이렇게까지 됐는가는 식생활의 변화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세상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자신도 덩달아 바빠져 식사시간을 줄이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과 도시화 및 산업화에 따른 생활습관의 변화로 우리나라 국민성 중 으뜸이 “빨리 빨리”다. 걸어가면서, 버스나 전철 안에서 피자나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일상화됐다. 이 영양가는 별로 없이 열량만 높은 쓰레기음식(Junk food)을 끼니로 때우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니 인체는 영양을 지방으로 바꿔 비축함으로써 소비할 시간이 없어 어느 때 거울을 보면 뚱녀나 뚱보가 되어있는 것이다.




집에 가면 라면이나 먹고 자고... 인체지방은 가만 놔둬서 결코 빠져주지 않는다. 비만자들은 적게 먹고 운동 열심히 하려고 사우나 가서 땀 빼고 헬스장가서 운동을 하며 필사적이다. 이런 방법은 시간이 많이 들고 힘이 너무 들어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을 쓴다.




우선 편하고 보자는 식으로 약을 먹어 빼려고 한다. 그러나 약은 독이고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려면 다른 부작용이 생긴다. 심지어는 비만치료제를 먹었다가 생명을 잃는 경우가 생긴 결과도 나왔다. 약을 먹는 도중 우울, 불안 등 정신적 문제가 생기는 것은 의례 있는 일로 사회적 관심을 못 끌었으나 비만치료제중 하나인 카나비노이드수용체 차단제(CBI)를 먹은 영국환자 5명이 죽는 참사를 빚어 시판이 중단된 것이다. 편하게 맛있는 것만 먹으면 힘들게, 불편하게 소비해야 한다.




비만치료에는 왕도(王道)가 없다. 배고픔을 참는 인내, 힘들어도 습관처럼 해야 하는 운동, 자기 몸에 알맞은 생활습관을 바꾸어 우리를 서서히 죽이는 침묵의 살인자를 예방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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