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노동운동은 아직 독립운동이다

한국에서 노동운동은 아직 독립운동이다
9월 14일 (화) 맑음

08시 의원단회의에 참석하다.
비정규직 정부입법안에 대한 단의원의 문제의식이 심각하다.
정부안이 현실을 이유로 파견가능 업종을 확대하면서 사실상 전체 노동자의 전면적 비정규직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의원 한사람이 해당 상임위에서 혼자 떠들면 뭐하느냐, 차라리 거리로 나가 싸우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참담한 생각도 든다는 것이다.

당 최고위원회에서 이 같은 심각성을 인식하고 전당적 대응방침을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대책을 촉구하였다.

09시 30분 공무원, 전교조 교사 등의 단체행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다.

국회기자회견장에 민주노총, 한국노총, 전교조, 공무원노조, 교수노조 대표자들이 모두 참석하여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기자회견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10시 예결위에 처음 참석하였다.
이영순의원 옆자리다.

정세균 예결위원장이 현애자의원의 사임과 나의 보임을 보고하고 인사를 시켰다.

한나라당의 유승민, 임태희의원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가 대변인이 되었을 때 축하인사라도 보내지 못한 것이 걸린다.
임태희의원은 다변이 아니면서도 토론 잘하는 사람으로 꼽히는 드문 유형이다.

10시 30분 정치개혁 특위 첫 회의가 행자위 회의실에서 열렸다.
작년 12월 바로 이 회의장에서 정개특위안을 놓고 여야가 육탄전을 벌일 때 바로 현장에 있었다.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교섭단체 간사는 유시민의원과 박형준의원이다.
박형준의원에게 박의원이 과거 준재야 시절 <독일식정당명부제>를 동의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니 <소선거구제+ 비례대표제>라는 전제를 단다.

상견례를 겸해 돌아가면서 인사말을 하는데 <16대 국회의 정치개혁안 처리가 여론에 몰려 지키기도 힘든 법안을 과도하게 입법화된 감이 있다>는 내용이 주조를 이룬다.

차례가 돌아오자 <개혁의 후퇴를 막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한마디만 했다.

다음 회의에서는 <법국민정치개혁협의회> 설치와 위상문제를 놓고 1차 격돌이 예상된다.

시간이 촉박하여 공항으로 가는 차 속에서 김밥을 집어넣다.
김밥은 역시 기차 안에서 먹을 때만 제 맛을 알 수 있다.
공항으로 전화해서 늦더라도 비행기를 탈 수 있게 조치하였다.

14시 예정시각 보다 다소 늦게 부산 외국어대학교에 도착하다.
부산외대신문사 초청강연인데 지난 5월 섭외요청이 왔으나 이제야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진보정치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하다.
갈 길이 먼데 강연이 끝나도 학생들이 놓아주지 않는다.
30여분을 더 체류하다.

18시 10분 진주에 도착하여 이창호, 정진상, 백좌흠, 장상환, 교수를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과 저녁을 하고 강연장으로 향하다.

진주시 지구당답게 진주 시내에 강연회 포스터 4천장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강당 1, 2층을 메우고도 좌석이 모자라 서서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진주시 지구당의 저력은 지난 총성 준비과정에서 이미 과시된 바 있다.
아마도 총선 이후에도 진주시 지구당만큼 매 정치사안마다 시민 속으로 들어가 선전활동을 왕성하게 벌이는 곳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풍이다.

실천적 기풍이 확고하게 선 곳에서는 지저분한 일들이 발생할 틈이 없다.

지난 총선 직전 당선 유력한 후보였던 강병기동지의 사면복권이 끝내 이뤄지지 않아 농민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하루 평균 120여대의 차량을 동원하여 인근 열린우리당 실력자 지역으로 수 주 동안 항의투쟁을 벌인 지역이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진주의 한은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풀릴 것이다.

밤 10시 분 우등고속버스를 타는 데 고속버스 기사가 음료수를 주며 인사를 한다.
매표원이 국회의원임을 알아보고 차비를 돌려주겠다는 것을 박권호 보좌관이 거절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려 고속버스 기사와 얘기를 나누다.
곧 정년이 된다는 늙은 노동자.
경기도 모 지구당 당원이란다.

지구당에서 세대차이로 끼어들 틈이 없어 섭섭해 한다.
직장에서 조직활동을 꽤 열심히 하는데 어렵다고 한다.
<노동당>에 가입하라니 회사에 찍힐까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노동운동은 아직 독립운동이다.
대한민국에서 민주노동당 활동도 아직은 독립운동이다.
세상이 불온 시 하고 언제 불이익 당할지 모르고
겁이 나서 함께하기 두려운 독립운동이다.

차별과 불평등으로부터의 독립
예속과 굴종으로부터의 독립
인간다운 세상, 제발로 우뚝 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독립

새벽 두시 반 터미널에서 박보좌관과 헤어졌다.
아침부터 다시 시작될 독립운동을 위해.

노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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