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부모의 과잉보호

[희망뉴스/뉴스캔]학대와 억압이 만연한 장애인들의 수용시설을 없애고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투쟁을 하고 있다.

가족들이 귀찮아해서, 형제를 위해, 쓸모가 없어서 등의 이유로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버림 받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비참하게 살아 온 중증장애인들의 절규가 시작된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피투성이가 될지언정 누구의 관리를 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정부는 복지예산은 점점 깎고 자립생활에 투입할 돈은 없다면서 비리의 온상인 시설을 늘리려 하면서 일방적인 정부정책을 펴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자유로운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일텐데 말이다.

우리나라 장애인 부모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장애인 자식을 창피하게 여기고 애물단지 취급해서 어릴 때부터 시설로 보내 놓고 인연을 끊어버리는 부류가 있고 2,30대 성인인 자식을 유치원생처럼 모든 걸 다 결정해주고 품 안에서 "사육"하려는 부류가 있다.

비장애인을 둔 부모도 비슷할 수 있겠지만 장애인 부모는 두 부류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차라리 전자 쪽 부모는 몸은 편하다.

하지만 후자 쪽은 평생 몸도 마음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

나의 시간도, 나를 돌볼 여유도 없이 장애자식과 구분 없이 한 몸인 것처럼 살아간다.

어떤 여성장애인은 서른이 넘었어도 부모의 말투와 사고를 그대로 갖고 있어서 성에 있어서 여성은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같이 MT를 가다 휴게소를 들러서 간단한 요기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모듬으로 요란하게 전부 갖춰 먹는 등 유아적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 한 경우는 부모가 "니가 돈 쓸 일이 뭐가 있느냐" 며 지갑조차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하거나 남자친구를 만나려 해도 "살림도 못할 바에는 결혼 꿈도 꾸지마라"며 "평생 내 옆에 살다 같이 죽자"고 하셨다고 한다.

부모가 항상 옆에서 있으니까 성에 대한 욕구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한다.

위의 두 부류 모두의 공통점은 장애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평생 나와 같이 내가 먹는 것 같이 먹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 소유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장애자식의 결정권과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지속적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장애유형이 있지만 부모이기 때문에 보호해야하는 범위를 넘어서서 억압하고 결정권을 박탈하는 것은 시설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세상은 장애인에게 험하고 냉정하다.

장애자식이 이 험한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은 부모에게 한없이 마음 아픈 일이다.

그냥 바라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장애가 있어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그 선택의 결과가 항상 행복하지는 않다고 해도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이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의무이고 권리이다.



재미있는 사회복지전문 인터넷신문 희망뉴스(www.TheDreamNews.com)
컬럼리스트 조윤경(장애인 푸른 아우성 공동대표)

*외부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희망뉴스는 뉴스캔 제휴사입니다.


저작권자 © 뉴스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