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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목사 빛된교회


잠언10:13


 



13절.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지각과 이해력이 있는 명철한 사람의 입술에는 언제나 지혜(호크마, המכח, wisdom)가 있다. 그러나 지혜(레브, בל)가 없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채찍이다. 왜 지혜가 없는지는 후반절의 ‘지혜’라는 용어에서 시사점을 준다. 레브는 마음(heart), 정신(mind), 이해력(understanding), 의지(will) 등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지혜롭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자세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지혜에 대하여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생각하라- 마음이 없거나 의지가 약하거나 정신을 딴 곳에 팔고 있거나 이해력 자체가 부족해서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채찍이1) 필요한데, 채찍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수단이다(딤후 3:16).


 



시편 32:9은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고 한다. 지혜가 없는 자는 말이나 노새와도 같다. 이 짐승들은 무지하므로 길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갈이나 굴레가 필요하다.


 



사사기의 마지막 말씀은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 인생철학과도 같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왕정제도가 수립되기 이전 시대였으므로 실제 백성을 다스릴 통치자 왕이 없음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메시지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 소견대로 살았다는 말씀이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왕은 그들을 택하시어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들이 따르고 지켜야 할 법은 하나님의 언약인 율법이다. 왕과 법은 이미 그들과 함께 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어느새 그것을 잊어버렸고 무시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았다. 그것은 총명하고 지혜 있는 자의 행동이 아니었다. 이미 총명과 지혜는 떠나버렸으며, 그들에게는 채찍이 필요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채찍으로 바르게 하시기를 작정하셨을 때에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한탄하였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2,3). 그 후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어찌 이럴 수 있느냐는 불평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여인으로 비유하시면서 책망하셨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찜이뇨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은즉 바다가 마르며 하수가 광야가 될 것이며 거기 물이 없어졌으므로 어족이 갈하여 죽어 악취를 발하게 되느니라”(사 50:1,2).


 


그러면서 계속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사 1:5)고 하셨다. 이사야는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하였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사 50:4). 지혜 있는 사람과 무지한 사람의 차이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등을 70년 동안 채찍으로 때리셨다. 바벨론은 곧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채찍이었던 것이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고난 당한 자는 내로라”(애 3:1)고 하였다. ‘나’(아니, ינא)는 자신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동족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이다. 채찍은 아무나 누구에게든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주인은 종에게 채찍을 들고, 선생은 학생들에게 매를 들며,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회초리를 든다. 모두 아주 가까운 관계이다. 채찍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내리시는 사랑의 매인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 반문하였다. 쉽게 말해서 이런 말이다. “매 맞을래, 아니면 말을 들을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모두 잘난 신자들이었다. 너무 잘나서 바울을 논하고, 아볼로를 논하고, 게바를 논하고, 그리스도를 논하면서 자기의 은사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미성숙에서 온 소치였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 지혜는 사람을 그렇게 만들지 않는다.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교회의 봉사에 대하여는?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인 교우들에게는? 교회 밖의 세상 사람들에게는? 국가에 대하여는? 로마서 12장과 13장은 이에 관한 해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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