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조선일보 1면 상자기사가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소녀티 벗을래요. 가수 보아, 국내활동´이란 내용의  기사였다.

뉴미디어에 온통 관심이 쏠린 탓에 신문을 제대로 보지 않는 신문쟁이가 되어버렸지만 보아에 대한 기사는 간만에 필자의 몰입을 가져왔다.
 
보아는 세계의 밀바가 되겠다고도 했다. 가슴을 울리는 밀바를 보아의 목소리를 통해서 듣는다? 적어도 필자에겐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다.

소녀티가 물씬 나던 시절 보아의 모습과 목소리는 논리를 뛰어넘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었다.라디오에서,때론 TV에서 보고 들었던 보아는 나에겐 난수표같은 힙합의 컴플렉스를 말끔히 씻어주는 청량제였다.

어떻게 저런 몸집에서 저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호기심과 의문이 뒤섞이면서 필자의 관심은 더욱 증폭했고 한동안 보아라는 이름은 필자의 일상을 장악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쇼핑을 하다 우연히 CD판매점을 들어갔다.

보아를 무지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챈 아들놈이 손짓을 하길래 보니 보아의 2집 앨범이었다. 
    
´마흔을 넘어선 나이에 웬 주책이냐´고 마누라의 핀잔을 들어가면서도 보아의 앨범을 사가지고 나오는 순간 주제에 안맞게 잠시 행복감에 젖었다.   
   
´아! 이래서 오빠부대라는 게 생기는구나´

이전까지만 해도 비명을 지르며 가수들을 죽자살자 따라다니는 여중생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나의 무지를 조금은 이해할수 있을 것 같았다.

자동차에서 듣고 방구석에서 헤드폰을 끼고 듣고 따라도 부르고 그렇게 첫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뭔가 기분이 달랐다.

´에라, 모르겠다´  앞 창문을 활짝 열고 CD 볼륨을 그야말로 ´이빠이´올렸다. 그러고 나니 지나던 다른 승용차 운전자들도, 버스를 탄 사람들이 흘끔 흘끔 쳐다보는 게 아닌가.

´보거나 말거나´ 

음악에 취해 흥얼거리다, 때로는 소리를 높여 따라부르다 30여분을 달려 여의도 상류 인터체인지에 들어섰다.

차가 엄청 밀려도 그 순간만은 짜증이 나지 않았다. 특히 발렌티는 가슴을 파고들었다.  발렌티를 듣고 듣고 또 듣고...(지금도 노래방에서 부르면 고음처리가 안되어 항상 40점이 나온다)

차가 움직이길래 액셀를 슬쩍 밟았는데 갑자기 ´쾅´소리가 났다. 아이쿠 내가 받았구나.

정신없이 차를 중간지대에 대자마자 날카로운 소프라노 목소리의 여성 운전자가 냅다 삿대질을 하면 달려왔다.

´오늘 또 받혔어.어쩜 좋아.... 어제도 받히고 오늘도 또 받혔어´

울며불며 떠드는 여성 운전자의 차를 보니 아닌게 아니라 어제도 받혔다더니 뒷범퍼가 들어간 곳에 내가 다시 들어받아 범퍼가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초보운전´이 뒷창문에 붙어 있는 걸 보니 어제 처음 차를 몰고 나왔다가 봉변(?)을 연거푸 당한 모양이었다.

´초보라 급정거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도 ´내가 잘못했으니 다 변상해드리겠다´며 간신히 달래고 달랬다. 그 여자의 흥분을 가라앉히느라 ´어디 계시냐´고 묻자 건국대 직원이라고 해서 건국대 교수로 있는 친구 이름을 들먹이자 조금 진정하는듯 했다.

잠시 후 남편과 통화를 하고 나서야 내 주변의 모든 것은 일상으로 돌아갈수 있었다.

다시 발렌티.

그날 오후 정비소에 가서 자동차 견적을 뽑아보니 무려 150만원 가량이 나왔다. 단골집이라 깎아준 것이라나. 물론 차가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니고 여기저기 흠집을 없애느라 전체 도색을 하다보니 견적이 높게 나왔다나?

그날로서 삼성화재 보험사에는 ´불량운전자´로 올랐다.운전경력 15년만에 사고를 쳤으니 좀 억울하기도 하고....그러나 전혀 후회스럽지가 않았다.

금전적인 손해는 좀 보았지만 보아에 취해서,그것도 마흔이 넘어 어린가수에 취해서 무심코 낸 사고인데다 필자가 그렇게 잠시나마 뭔가에 빠져들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언론사인 회사에 보아가 인사차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잠시 얼굴이라도 보거나 사인이라도 받을 걸....

문화부에 인터뷰를 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담당 출입기자를 좀 나무랐다. 미리 이야기 좀 해주지... 그 기자는 ´갑자기 왜 저러지´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필자의 차에는 보아의 다른 앨범이 들어있다. 소녀가 아니라 어른이 되겠다는 보아의  당찬 인터뷰가 보기 좋다.

언젠가 르몽드지가 다룬 보아의 기사를 지금도 기억한다. 불어공부를 한창 할 때인데 보아의 기사는 너무 좋은 학습서였다. 당시 르몽드는 ´휘트니 휴스턴´이라고 했던가. 암튼 미래 세계무대를 주름잡을 아시아의 재원이라고 대서특필했었다.

보아의 어린 시절과 데뷔사연은 더욱더 필자에게 몰입을 요구한다. 영어 불어 일본어 어학능력까지... 언젠가 영화판에서 아직도 대박을 못내고 기는 후배에게 보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보라고 했다. 아마 관객 1000만은 금세 돌파할 것라고...

언젠가 보아를 만나면 개인적 변상을 반드시 요구해야겠다. 차를 들이받은 피해액과 40대 넘어 생존을 위해 뛰어야 할 때 한동안 업무를 방해한 혐의(?)까지 합해서 한꺼번에 변상을 받아야겠다.

우선 큼직한 보아의 사진에 굵은 매직펜으로 쓴 자필 사인.
 
그뿐이 아니라 보아가 ´세계의 밀바´가 되는 날 ´드디어 해냈어요´라는 이메일을 제일 먼저 필자에게 보내주라고 당당히 요구할 셈이다.  

김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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