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균의 자연이야기 - 노린재

▲ ⓒ 김봉겸
´애구! 방구 냄새가 난다.’
잘못 건드렸다.
풀잎에 앉아 있는 놈을 건드리니 별안간 냄새가 풍긴다.
이놈이 방구를 끼며 나를 쫒으려 한다.

여기 저기 비슷한 놈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래잡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색깔도 다양하지만 모양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같은 가족이다.
노린재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들은 세계적으로 78과 3500종이 있다.
우리나라에만 500여종이 분포하고 있으니 널려 있는 곤충이 노린재 인 셈이다.

▲ ⓒ 김봉겸
발목마디는 1~3마디이고, 발톱은 1개 또는 1쌍, 배는 10마디로 이루어져 대부분 냄새 샘이 있어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곧바로 액체 형태로 분비물을 발산하여 냄새를 풍긴다.
자신을 방어하는 데 냄새를 이용하는 놈들이다.

녀석을 잘 못 건드린 죄로 고약한 냄새를 참으며 녀석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한쪽에선 열심히 짝지기를 한다.
‘짝짓기 하는 놈을 건드려도 방구를 낄까?’
지독한 냄새에 화가나 짝짓기 하는 놈을 건드리고 싶은 심드렁이 생겼다.
하지만 죄 짓는 것 같아 그냥 참기로 했다.

▲ ⓒ 김봉겸
‘가만 이놈의 이름이 뭐지’
한 녀석은 점흙다리잡초노린재 같고, 한 녀석은 큰허리노린재인가 보다.
큰허리노린재는 엉덩이를 들고 하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
뭔가 어정쩡한 자세로 짝짓기를 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하지만 점흙다리잡초노린재는 편안하게 짝짓기를 한다. 녀석은 오랜 시간 버티고 있으면서도 힘들지 않다는 듯 히히덕거리며 짝짓기 하는 모습이 보면 볼수록 열 받는다.

텃밭이나 숲, 그리고 물속이나 물 위에서도 식물이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노린재다.
더군다나 짝짓기 하는 시간도 길어 짝짓기 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녀석들! 그렇게 할일이 없나. 하루 종일 짝짓기 하고만 있게’
부러우면서도 괜시리 질투가 생긴다.

노린재의 짝짓기 이야기는 재미있다.
종류가 많은 만큼 짝짓기 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 ⓒ 김봉겸
어떤 녀석은 일정한 장소에 페르몬 향수를 뿌려 수컷들을 불러 모으고 수컷끼리 싸워서 이긴 젊고 강한 놈들하고 집단적으로 짝짓기를 한다.
또 어떤 녀석은 암컷의 생식기가 아닌 아무데나 자기 생식기를 박고 정자를 뿌린다.
심지어 수컷에게도 정자를 뿌려 수컷이 다른 암컷과 짝짓기 할 때 자기 정자가 묻어 자손을 번식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또 다른 놈은 자신보다 먼저 짝짓기를 한 수컷의 정자를 파내고 자기 정자를 뿌리는 놈도 있다.
더 지독한 놈은 다른 수컷의 정자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아예 암컷의 생식기를 특수 물질로 막아 버리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짝짓기를 오래 해 수컷이 접근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놈도 있다.
정력이 세서 오래하는 줄 알았더니 다른 놈의 접근을 막으려고 오래 버티고 있다니...... 지독한 놈들이다.
그래서 녀석들은 짝짓기를 힘 안들이고 오래 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는지, 아니면 오래 버티는 인내력을 키웠는지 제법 차분하면서 느리게 행동한다.

유독 짝짓기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놈들이 많아서 녀석들도 인간들처럼 관음증을 즐기나 보다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아니라 짝짓기 못하고 죽는 놈도 있다고 하니 살아생전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처절한 삶 자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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