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균의 자연이야기 - 왕오색나비

▲ ⓒ 김봉겸
나비중의 나비라고 불리는 왕오색나비를 만났다.
나뭇잎에 올라 앉아 서로 마주보며 눈싸움하는 것이 심상치 않다.
권투할 때 시합하기 전 상대 기를 먼저 죽이기 위해 눈싸움하는 것을 녀석들도 터득한 것일까?

‘저 놈이 수컷인가 봐!’
지나가는 아이가 날개 윗면에 광택이 없는 흑갈색 나비를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가 그게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친다.
‘아냐, 그 놈은 암컷이야!’
‘뭘, 모르면서 괜히 아는 척 하지 마!’
‘임마, 니가 잘 모르면서!’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잘 안 다는 듯 옥신각신 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주먹이 오고 갈 분위기다.

광택이 없는 흑갈색 나비가 광택이 있는 청람색 나비를 더듬이로 애무 하듯 더듬어 주고 있다.
‘뭐하는 짓들이지?’
아이들의 말싸움에 끼어들고 싶지만, 녀석들이 뭘 하고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암컷이 수컷을 만나면 더듬이로 교감을 나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짓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짝 짓기 하기 전 마음에 드는 수컷을 찾기 위해 암컷이 먼저 더듬는다고 한다.

▲ ⓒ 김봉겸
그럼 흑갈색이 암놈이란 말인가?

보편적으로 수컷을 꼬시기 위해 암컷이 아름다운 것이 당연한데 왕오색나비는 반대다.
날개 위에 광택이 있는 청람색 무늬가 있는 나비가 수컷이다.
수컷이 의외로 수동적이다.
암컷은 꽤나 자신 만만하게 수컷을 위아래로 뜯어보고 있다.
시간이 자났는데도 아직도 결정을 안 하였는지, 더듬이로 요리조리 살펴보고만 있다.

주로 산지나 계곡 주변 잡목림이나 활엽수에서 참나무나 느릅나무의 수액을 먹고 산다. 오후에는 높은 곳에 앉아 텃세행동을 한다.
그러나 암컷은 눈에 안 띄게 조용하면서도 힘차게 나무 사이를 오간다.

수컷은 대부분 오후 3시경이 되면 정상 부근에서 자리 잡으며 그 영역에 들어오려는 녀석들과 힘겨루기를 한다.
그래서 가끔 나비 날개가 너덜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비는 입이 없기 때문에 몸으로 부딪치거나 날개로 부딪치며 싸움을 한다.
그래서 나비 날개가 손상이 생기게 된다.

▲ ⓒ 김봉겸
나뭇잎이나 풀잎 등에 부딪치면서 손상을 입기도 하지만, 싸움할 때가 가장 손상을 많이 입는 다고 하니 영역 싸움이 치열한가보다.
자기 영역에 암컷을 불러 짝짓기를 하여야 하니, 다른 수컷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기 어려울 게다.

우리나라의 중, 남부에 분포하지만 제주도 및 섬에서도 관찰되는 왕오색나비는 암컷의 낙점을 받아야 짝짓기를 할 수 있으니, 암컷을 꼬드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수컷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수컷은 외모도 아름답게 가꿔야하고, 다른 수컷에게 암컷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며 영역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니, 사람이나 곤충이나 살아가는 섭리는 다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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