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L@“오늘도 살아 돌아올지...”

토종 군화의 권력 이어가기는 치밀한 계획과 사전 모의에 의해 진행되었다. 박정희전대통령과 달리 정규 육사출신들이라 미국에 가서 선진군사 훈련도 받았고, 정치개입에 익숙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양에서 자란 것이다. 이들의 애국심과 충섬심의 대상은 박정희로 정점이 모아졌고, 하나회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해왔다. 박정희로선 군 후배들을 잘 도닥거림으로서 자신의 권력유지, 확산, 연장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체제로 활용했다.

“오늘도 살아 돌아올지 모르겠다. 내 걱정하지 말고...” 박정희 시해사건을 수사 중인 전두환보안사령관이 출근할 때마다 내뱉던 표현이다. 군화를 질끈 동여매고 집을 나서는 아버지 전두환의 당부와 뒷모습을 지켜보는 아내와 자식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이런 속내가 당시의 유력 일간지에 장남의 기고문을 통해 소개되었다. “오늘도 우리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죽을지도 모르는 거사(국가에 대한 충성의 시련)를 치르는 중이다...” ‘서울의 봄’ 바람에 실려 온 온갖 악소문과 비난을 무릅쓰고 아버지의 충성심이 왜곡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절절한 심경이 소개되었던 것이다.

본인의 순수한 의도인지 신군부의 권고인지 몰라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보안사령관 장남의 기고문이 실렸다는 자체가 눈길을 끈다. 물론 박정희 서거의 뒷조사를 추진하는 장본인의 장남마저도 악소문에 시달렸다는 점에서 해명과 동조세력 견인심리를 확산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장남의 경우 모대학에서 아버지의 뒷심으로 편입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필자가 알기로는 그 장남은 실력으로 편입에 성공했다. 공부도 잘하고 심성이 착했다. 허나 세간의 소문은 달랐다. 자식을 둘러 싼 소문도 이럴진 데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권력의 상징으로 부상한 보안사사령관을 둘러싼 소문과 비난은 어떠했을까.

각종 비판과 악소문은 토종 군화에 대한 저항과 종말을 기대하는 정치권에겐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던져주었다. 누가 처음으로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 채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다. 전형적인 유비통신의 유형 ...“카더라”식의 입전달이 주를 이루었다. 언론과 방송마저 신 토종 군화에 통제되던 시절이라 유비통신의 위력은 대단했다.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유언비어 형태로 튀어 나오는 것이 권력에 대한 소극적 저항의 면모다.


과거를 잊은 정치권의 오만과 편견

박정희 전대통령의 예기치 않았던 서거는 토종 군화의 종말을 고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였다. 박정희와 부자지간으로 표현되는 전두환장군이 수사를 맡았지만 토종 군화의 당황과 혼란이 역력했다. 이에 반하여 정치권은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 매우 들떠 있었다. 잡은 고기한테 굳이 미끼가 필요할까?

하나회를 중심으로 토종 군화의 신화를 이어가고자 목숨 걸고 뛸 때, 정치권의 3김은 토종군화 신화 종식과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간과한 채 요동쳤다. 허긴 손발을 묶어 놓은 상태라 눈치 보면서 민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정치집단의 입맛과 이해에 따라 정략적으로 대처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퇴장은 곧 새로운 등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권력은 잡기도 힘들지만 내놓기는 더욱 어렵다. 이런 역사진행의 소박한 경험을 직시했다면 퇴장과 등장의 어려운 고비를 잘 알텐데. 더군다나 토종 군화의 등장과정에서 이런 경험을 통해 암울한 정치사가 펼쳐지지 않았던가.
토종군화 신화의 부활 즉, 권력 이어가기는 체육관에서 선출된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등장함으로써 성사되었다. 이른바 민주화 투쟁인사들이 즐겨 말하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새벽이 왔건만 이를 모르고 떠돌다가 자신들의 목이 또다시 비틀어지는 불행을 경험했다.

토종 군화의 신화가 퇴장할 수 있는 시점에서 찾아온 것이 ‘서울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세력의 전면등장이다. 역설적으로 ‘서울의 봄’은 우리 정치의 봄을 앗아가 버린 불행한 사건으로 정치사를 장식했다. 정치권의 고질적 병폐인 분열과 갈등 그리고 오만과 편견. 3김의 권력을 향한 불굴의 의지가 ‘서울의 봄’을 망쳐버렸다. 이에 비하여 힘없는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희생의 몫은 너무 지대했고 그 후유증이 지금도 역력하게 남아있다.


권력과 씨밀레

정통성이 취약한 권력일수록 권위주의의 성향을 보인다. 권위주의는 사회 전체를 휘감아 쥐는 독재와 달리 여론주도층과 언론을 장악함으로서 권력을 행사한다. 전두환정권은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설득과 회유를 구사했다. 이 과정에서 회유와 특히 권력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휘말려 정치권에 등장한 인물들이 많았다.

어용교수란 칭호도 이때에 등장했다. 작금에 이르러 코드인사에 주력하다 보니, 인물충원의 폭이 좁고 어용교수란 비난도 사라졌다. 오히려 정치권에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오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 군화와 함께 어용교수란 별칭도 사라졌다.

5공의 참여인사 중에 평가받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안타깝게도 건국 이래 최강으로 불리는 내각에 참여한 인사들이 아웅산테러에서 희생되었다. 토종 군화의 신화가 힘겹게 일궈낸 한강의 기적의 결실도 신군부가 누렸다.

신군부는 앞서간 군화보다도 더 정략적이었고, 내심 국민의 맘을 흔드는 노회한 전략을 구사했다. 국민들의 맘을 사로잡기 위해 고도의 심리전과 홍보가 탁월했다. 국풍을 통해 전 국민의 관심과 결집력을 유도하고 3S(scene, sex, sports)정책으로 탄탄하게 다져갔다.

@P2L@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건만, 하물며 씨밀레(‘영원한 친구’의 우리말)간에는 무슨 설 명이 필요할까. 토종 군화의 권력 이어가기는 6·29선언을 거쳐 씨밀레간의 권력 이어가기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군화의 권력 이어가기는 쏟아지는 민주화의 열정에 흔들리고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씨밀레로 불리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이 법정에 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 가 발생했다.

얼마 전에 국방장관을 지낸 분들이 현 국방장관과 자리를 함께 했다. 한미간의 작전통제권에 관한 의견교환의 자리였다. “그 분들이 옛날사람이라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현 국방장관의 지적이 구설수에 올랐다. 군화의 자긍심과 평가도 이젠 많이 달라졌다. 군화를 벗고 나면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간에 펼쳐진 군화의 정치개입이 빗어낸 자업자득이다.

거자일이소(去者日以疎) 떠난 사람은 나날이 멀어지고, 내자일이친(來子日以親) 오는 사람은 나날이 친해지네. 내리막 길의 권력은 멀어지고, 떠오르는 새로운 권력에 친해지려는 몸부림. 우리는 여야가 연일 거론하는 정계개편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심보와 행위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진정한 씨밀레를 정치권에선 찾아보기 힘들단 말인가. 군화를 신었을 때는 씨밀레였지만, 군화를 벗고 나서는...그렇다고 인륜과 우정까지 변질되어야 하나. 권력이 뭐길래?

서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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