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대한민국이 세계를 품고 있다. 우리 특유의 다이내믹하고 섬세한 표현을 담은 문화 콘텐츠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한류' 열풍을 일으킨데 이어 음악, 푸드, 뷰티, 방산  등 전 분야에 걸쳐 'K'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OECD 국가 '자살률 1위' , 심각한 저출산과  사회·경제·정치의 양극화 현상 등 초일류 국가로 가기위해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들도 엄존한다. '가능성을 여는 뉴스'를 지향하는 <뉴스캔>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한 '악습'들을 짚어보고 그 대안을 같이 고민하는 연중기획 '대한민국 바로서기'를 연재한다.

[일러스트=배모니카 기자]
[일러스트=배모니카 기자]

[뉴스캔=박시현 기자] '옆집 아들은 이번에도 일등을 했다더라'는 어머니의 잔소리에서 독립한 것도 잠시, 이제부터는 누군가와 비교당하지 않고 살겠거니 싶었는데 ‘모모네 남편은 이번에 성과급으로 기천만원을 받았대’라며 쫑알대는 와이프의 지청구를 수시로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게 이 땅의 백성으로 태어난 숙명 아닌 숙명이다.

다른 나라의 사정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수시로 타인과의 비교를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게 사실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것만큼 제대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드물다. 왜들 그러는지. 그래서다. 적어도 나만은 의미 없는 비교질로 무언가를 판단하지 말자는 각오를 다진 건. 그런데 이번만은 예외로 하자. 그러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안 되는 때문이다. 

지난 2021년 미국에서 음주운전 사고와 관련된 쇼킹한 판결이 나왔다.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에게 술을 판매한 주점이 피해자 유족에게 무려 356조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평결이 나온 것.

신체상해에 대한 손해 배상액으로는 종전 기록 1500억 달러(약 177조원)를 뛰어넘는 상상이 안 되는 액수도 액수지만 더 놀라운 건 그게 음주운전 가해자에게 부과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 사건의 가해자는 사고 당시 사망한 상태였으니 상식적으로는 사건이 종결되어야 옳지만 미국 법정은 그런 식의 대처가 음주운전 감소에 도움이 안 될 거라는 판단을 한 것이었다. 이에서 보듯 가해자도 아닌, 단순히 술을 판 주점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정도로 미국의 음주운전 대처는 확실하고 엄중하다.

어디 미국뿐일까. 다른 나라 역시 음주운전에는 놀라울 정도로 엄격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범죄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하기로 정평이 난 중국의 경우, 음주운전으로 사망자를 낸 운전자에게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해두고 있다. 단순히 엄포가 아니라 실제로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까지 이루어진 적이 있을 정도다.

일본 역시 만만치 않다. 일본은 2001년 형법 개정 이후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에게 최고 30년까지 유기 징역이 가능한 강력한 처벌법을 만듦으로써 음주운전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여타의 다른 선진국들 역시 크게 정도가 다르지 않다. 근데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그것도 많이.


◆ 90%가 집행유예나 벌금형... 실형 선고는 '하늘의 별따기'


다들 체감하듯 우리나라는 음주운전에 대해 누구보다 더 관대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도통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술 먹고 치는 사고는 그저 실수이니 너그럽게 봐줘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에 충실하기라도 한 걸까.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많은 이들이 음주 후의 사고에 대해 더 강경해져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 않은가. 이를 반영하듯 우리도 외견상으로는 음주운전을 강력 범죄로 규정하고 있기는 하다. 2018년 9월 부산 해운대구에서 만취 상태로 달리던 차량에 치여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윤창호씨가 숨진 이후 민심이 들끓자 부랴부랴 '윤창호법'을 제정하면서 관련 형량은 이전에 비해 괄목할 수준으로 강화된 것이 그 증거다. 

이에 따라 음주운전 처벌의 기준이 되는 혈중알코올농도 하한을 '0.05%'에서 '0.03%'로 높이고, 재범 면허취소 기준을 '3회 이상'에서 '2회 이상'으로, 재범 가중처벌을 '1~3년 징역 또는 500만~1000만원 벌금'에서 '2~5년 징역 또는 1000만~2000만원'으로 대폭 높이는 등 음주운전 방지에 전력을 투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단순한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잦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인명 피해에 누구보다 관대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사진=픽사베이 제공]
음주운전으로 인한 인명 피해에 누구보다 관대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사진=픽사베이 제공]

이유는 간단하다. 음주 운전자를 대하는 법원의 태도가 너무도 관대하기 때문. 이는 조금의 검색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당장 인터넷 검색창에 음주운전 처벌이라는 키워드를 넣어보자.

‘음주운전 수차례 처벌에도 집유 선처…대체 왜?’

‘음주운전 4차례 처벌받고 또 음주 사고 낸 40대 실형 면해’

‘음주운전 5번 처벌받고도 또…버릇 못 고친 숙취운전자’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하게 언론매체의 헤드라인 몇 개를 예로 들었지만 비슷한 제목의 헤드라인을 차고 넘치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법원의 대응은 지극히 온정적이다.

이래서야 음주운전 그 자체로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지고 음주운전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위험운전치사죄를 적용, 무기 또는 3년에서 30년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해놓은 법이 무색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는 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강력한 법 규정이 무색한 지금의 현실은 음주운전 사망·상해사고 90%가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처해지는 게 다다. 설령 사망사고로 실형을 받아도 최고 형량이 5년이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일 정도로 법원의 판결은 솜방망이 그 자체다. 이에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지만 여전히 법원의 선고는 국민 정서를 나 몰라라 하는 중이다. 왜 그럴까.

이는 전적으로 우리 법원의 경직된 구조 탓이다. 특정 범죄에 대한 형량기준은 원칙적으로 법  조문에 명시되지만 현실적인 선고 기준의 잣대는 다르다. 그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권고기준이다. 문자상으로는 말 그대로 권고하는 기준에 불과하다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때로는 법 조문의 명시 규정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사실상의 강제 규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 美, 음주 사망사고에 '356조 배상'...日, 사망사고시 최고 '징역 30년'


원론적으로 판사는 개개인이 모두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그 자체로 독립성을 띠고 있다.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자신의 법적 판단을 믿고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이상론에 불과하다. 대단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판사라 해도 냉정히 이야기하자면 조직에 속한 샐러리맨일 따름이라는 말이다.

즉 판사는 일반 회사로 따지면 대리거나 과장이거나 부장쯤에 해당되는 존재이며 그런 이들이 회사의 이사회 격이라 할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결정을 마냥 무시하지 못하는 것. 덕분에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임팩트가 있는 케이스가 아닌 다음에는 대부분의 판결이 양형위원회의 권고기준을 준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주운전 사고의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실형을 살지 않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창호법, 민식이법, 동원이법 등 많은 음주운전 관련 법이 쏟아졌지만 현재의 구조라면 사고를 당한, 그리고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많은 이들의 울분을 달랠 수는 없을 듯하다. [사진=프리픽 제공] 
윤창호법, 민식이법, 동원이법 등 많은 음주운전 관련 법이 쏟아졌지만 현재의 구조라면 사고를 당한, 그리고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많은 이들의 울분을 달랠 수는 없을 듯하다. [사진=프리픽 제공]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권고기준은 위험운전치사죄 가중 요소를 고려하더라도 4년에서 8년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러니 아무리 끔찍한 음주운전 사고를 저지른다 쳐도 8년 이상의 형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더불어 우리나라의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아직도 고의사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과실사고의 영역으로 취급되는 경향 역시 큰 몫을 담당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못내 법원의 결정이 아쉬운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이쯤에서 모든 판사들이 다 그런 건 아니라는 반론이 개진될 수도 있다. 혹은 너무 일반화의 오류에 매몰된 단순한 주장이라는 반박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 인정한다. 각 사건의 인과관계가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 다를 수 있으니 제반 요소를 고려한 판결일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 역시 성급한 판단일 테니까.

그럼에도 현재 법원의 음주운전 처벌이 미약하게 느껴진다는 것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 않을까. 그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얼마 전 발생했다. 

지난 2월 29일, 대법원은 2022년 서울 청담동 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내 9살 초등학생이동원군을 숨지게 한 운전자에 대해 징역 5년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술을 마시고 자신의 차량을 몰다가 하교하던 9살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것으로도 모자라 구호조치 없이 그대로 집까지 운전을 한 사람에게 고작 5년이라는 징벌을 내린 것.

면허 취소 수준인 0.128%의 알콜 혈중 농도, 사고 이후 집까지 운전해간 그에게 검찰은 음주 운전과 뺑소니 혐의 등을 적용해 징역 20년을 구형했던 사건이었다.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의 엄벌 탄원이 이어지고 있고, 예방적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검찰의 요청은 결국 1심 7년, 2심 5년의 선고 끝에 대법원에서의 5년 형량 확정으로 이어졌다. 

이 판결이 많은 이들의 울분을 자아냈음은 당연한 일이다. 더불어 스쿨존 내 안전의무를 위반한 사망사고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선고가 가능하도록 규정한 ‘민식이법’이 존재했었는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지난 1월 9일, 국회가 어린이의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스쿨존 보도 설치 의무화 ▲방호 울타리 우선 설치 ▲교차로 무인 교통단속용 장비 설치 의무화 ▲어린이 보호구역 안전위원회 설치 등 어린이 보행권 보장을 위한 도로법 개정안과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동원이법 통과가 부질없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윤창호법, 민식이법, 동원이법 그리고 또 어쩌면 생길지 모르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딴 음주운전 관련법이 아무리 쏟아진들 현재의 구조라면 사고를 당한, 그리고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많은 이들의 울분을 달랠 수는 없는 법이다. 

음주운전 사고 피해자인 고(故) 이동원 군의 아버지는 대법원 선고 이후 “대낮에 음주운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학교 후문 바로 앞에서 하늘나라로 보낸 자가 고작 5년의 형량을 받는 것이 진정 정의냐”고 했다고 한다. 이게 기자를 위시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 믿는다.

정말로 정의로운 나라라면 그런 악질 범죄자에게 고작 5년을 선고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우리가 원하는 건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는 고조선의 팔조법도 아니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처럼 당한 만큼 갚아 준다는 함무라비 법전도 아니다. 단지 국민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판결이기를 바라는 것뿐이란 뜻이다. 그 쉬운 걸 왜 안 해줄까 싶다. 그럴 거면 차라리 신문에 이름, 나이, 자동차 번호 등을 게재함으로써 음주 운전자의 신상을 전국에 공개하는 싱가포르 방식이 백번 더 나을 거라 믿는 게 어디 기자 뿐일까. 

 경찰청의 음주운전 금지 캠페인 포스터. [사진=경찰청 제공]
 경찰청의 음주운전 금지 캠페인 포스터. [사진=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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