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의 항일코드로 고민해야 할 것들

[편집자 주] 대한민국이 세계를 품고 있다. 우리 특유의 다이내믹하고 섬세한 표현을 담은 문화 콘텐츠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한류' 열풍을 일으킨데 이어 음악, 푸드, 뷰티, 방산  등 전 분야에 걸쳐 'K'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OECD 국가 '자살률 1위' , 심각한 저출산과  사회·경제·정치의 양극화 현상 등 초일류 국가로 가기위해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들도 엄존한다. '가능성을 여는 뉴스'를 지향하는 <뉴스캔>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한 '악습'들을 짚어보고 그 대안을 같이 고민하는 연중기획 '대한민국 바로서기'를 연재한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논쟁은 정치권은 물론 사회 곳곳에서 야기된다. 사회적인 합의가 점차 필요할 때다. [일러스트=박기랑 기자]
 우리 사회에서 친일논쟁은 정치권은 물론 사회 곳곳에서 야기된다. 사회적인 합의가 점차 필요할 때다. [일러스트=박기랑 기자]

[뉴스캔=박시현 기자] 2024년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지점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 세계 10위권에 자리한 경제규모나 군사력 등 국력을 표시하는 단순지표만 놓고 봐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띠는 것이 K팝과 K드라마, K무비 등 세계인을 매혹시킨 K컬처의 끝 간 데 없는 질주다.

예전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우리나라 가수들의 빌보드 차트 점령이 그렇고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순위권에 우리 드라마가 수시로 등장하고 있는 것 역시 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그나마 아쉬운 부분이라면 기생충으로 촉발된 K무비의 인기가 다소 주춤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지만 올해 등장한 두 편의 영화는 그 역시 기우일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

올 초 1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서울의 봄'에 이어 한국판 오컬트 무비인 '파묘'가 10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둘 만큼 인기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묘의 흥행세가 특히 이채로운 점은 이 영화가 관객 동원이 쉽지 않다는 오컬트 장르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이라면 누구나 극찬해마지 않았던 한국 오컬트 장르의 대표작이었던 곡성조차도 최종 누적 관객수가 687만9989명(영진위 제공)에 그쳤던 것을 고려한다면 현재 파묘의 흥행 곡선은 경이적인 수치라는 것이 영화인들의 한결 같은 말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파묘의 작품성에 주목한 전 세계 국가에서 영화 수입을 결정하고 개봉에 돌입한 것이 증거다. 현재까지 전 세계 133개국에서 개봉이 진행됐거나 진행예정인 상태다. 주목할 부분은 단순히 개봉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흥행 스코어 역시 절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28일 개봉한 인도네시아의 경우,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해 누적 관객 수 71만 명(3월8일 기준)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달성했을 정도로 큰 호평을 끌어내고 있다. 여타의 국가들 역시 숫자상의 차이만 보일 뿐 관객들의 뜨거운 찬사를 끌어내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렇듯 파묘는 전 세계에 한국 영화의 위력을 과시하는 중이지만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반응을 끌어내며 또 다른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항일코드가 그것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언급을 할 순 없지만 사실 그에 등장하는 내용은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다.

이미 알고 있는 우리 조차도 새삼 놀라운 그 진실은 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세계인들에게는 더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을 터. 결론적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항일코드는 새삼 일본의 식민지배가 얼마나 잔혹한 것이었는지를 일깨우고 있다.

오컬트무비로만 알려졌던 영화 파묘에 숨겨진 항일코드가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사진은 영화포스터. [사진= 쇼박스 제공]
오컬트무비로만 알려졌던 영화 파묘에 숨겨진 항일코드가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사진은 영화포스터. [사진= 쇼박스 제공]

이게 마냥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전에 나왔던 '미스터션사인'이나 '경성크리처' 같은 우리 드라마를 본 외국인들이 앞서 느끼고 토했던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경험이 아님에도 함께 분노해주는 외국인들을 보며 피해 당사자인 우리 국민들이 감사해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호평이 있다면 반드시 악평이 따라붙게 마련인 게 세상 이치인 탓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이른바 친일과 반일을 둘러싼 논쟁이 그것. 악랄한 일제의 식민시대를 경험한 우리 정서로는 친일이라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반일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드높이는 게 사실이다.

다소 불편한 감정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반일이 그르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도 나름의 논리는 존재할 것이다. 문제는 그로 인한 국론 분열이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를 적절히 해소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하지만 그게 쉬운 건 아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를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 채 80년 세월이 흐른 후유증이랄까. 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자를 조사하기 위해 제헌국회에서 설치한 특별위원회인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속칭 반민특위가 해산될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외국인들조차도 분노하는 일본의 만행을 만행이 아닌 선행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여전히 횡행하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맹목적인 일본 숭배


'봉건적 조선의 지배를 받는 것보다는 일제 강점기에 더 살기 좋았을지 모른다'는 이가 있는 가 하면, '보편적인 서울시민의 교양 수준이 일본인 발톱의 때 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도 있다또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 중 대표 사례로 꼽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두고 자의적인 매춘을 했다고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이 같은 발언의 당사자들은 공인이 되기 전에 했던 일개 개인의 주장이라거나 혹은 의미가 곡해된 것이라는 반론으로 사태를 봉합하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을 이해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해명인 것은 분명하다.

이쯤에서 일반적인 국민 정서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맹목적인 일본 비호가 창궐하는 이유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의 배경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식민사관이다. 지배국가가 식민지를 정신적으로 굴복하게 만들기 위해 식민지의 주민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주입되는 역사관인 식민사관이 해방과 함께 종식되지 못한 것이 그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일제 부역자들을 처단하기 위한 반민특위 폐지를 통해 살아남은 상당수 친일인사들이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은 것처럼 식민사관 역시 해방 이후 국내 역사학계 일각에 뿌리내리고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하며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이다.

그를 대표하는 단체가 바로 낙성대 경제연구소다. 지난 1987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던 안병직 교수와 이대근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공동으로 설립한 이 연구소는 한국경제사에 관한 자료수집 및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지난해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일본 기시다 총리. [사진=대통령실]
 지난해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일본 기시다 총리. [사진=대통령실]

설립자들의 면면만 놓고 본다면 경제사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무색무취한 연구소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식민지 근대화론, 그러니까 지금 우리 경제의 놀라운 발전이 모두 일본의 식민통치 시절의 유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주장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단체다.

또한 연구소 설립자인 안병직 교수의 제자인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이영훈 교수의 족적 또한 그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1988년부터 3년간 한일 양국 학자 15명과 함께 도요타 재단으로부터  300만엔(약 3400만원)을 받아 식민지 연구를 진행했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관한 역사적 연구'라는 타이틀로 진행한 이 연구는 이영훈이 주장해온 식민지 근대화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작업이었다. 이 연구는 '일제 강점기 시대는 식민지배의 도덕성 여부와는 별개로 한국의 경제 및 정치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하는 이론을 제공한 것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를 옹호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4년 9월2일 MBC의 '100분 토론'에 출연해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으로 참여로 이뤄진 상업적 공창"이라는 취지의 역사왜곡적 발언을 한 전력도 있다.

그 모든 주장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와 관련된 인사들의 발호는 수시로 불거져 나온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도하고 우리 민족의 열등함을 강조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일삼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식민사관론자들의 존재감은 여전함을 증거하는 대목이다.

그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얼마 전에도 터졌다. 지난 2월1일 국가보훈부 산하 독립기념관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해온 낙성대경제연구소 박이택 소장을 신임 이사로 임명한 사건이 그것이다. 이는 코미디에 가까운 일임이 분명하다깊게 보면 독립의 의의마저 희석시키는 단체의 책임자가 독립기념관의 이사로 임명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기 때문.

당연히 이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임명철회를 요구하는 관계자들의 성명이 뒤따랐지만 박 소장은 물론이고 임명주체인 보훈부 역시 임명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결국 현재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유명한 경구를 새삼 언급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이 역사가 남긴 명백한 교훈이라는 것만은 자명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경구 또한 곱씹어 볼 대목이다. 이미 지나간 시절의 공과만을 따지며 현재를 소비하는 것은 자칫 소모적인 낭비행위일 수도 있다.


◆ 식민사관 발호 막고 역사 제대로 인식...'독일 사례'처럼 새 시대 열어야


그러나 제대로 된 반성과 정리 없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은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주범이라 할 독일과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세계 각국의 철저한 사후대처가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 역시 그랬어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2024년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경제에서부터 문화, 국력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점차 더 커질 것이라 예측되고 있다. , 그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국립민속국악원 주최로 열리는 '2024 한일교류 음악회' 포스터. [사진=국립민속국악원 제공]

바로 앞서 언급한 식민사관의 발호를 막는 일이 그것이다. 일본인이면서 독립기념관 이사를 지냈던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조차도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에서도 극우 정치운동으로 취급받는 흠결투성이의 학문으로 평가했을 정도로 궤변 투성이인 이 이야기를 더 들어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나라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정적으로는 먼 나라라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말조차도 적합하지 않은 상대가 되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한일 양국의 관광객이 상호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왕래가 잦은 나라기 때문이다. 무역교역량 역시 4위에 해당할 정도로 서로에게 필요한 상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양국 간의 건설적인 관계 개선은 서로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의 식민지배 시절 일어났던 역사를 망각하게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더더군다나 그 망각을 재촉하는 대상이 우리 내국인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맞을만해서 맞은 거지'란 말처럼 억지스러운 건 없다. 뭐가 됐건 때린 사람이 잘못한 거니까. '너희들이 못 나서 나라를 뺏긴 걸 가지고 누굴 원망하냐'는 식민사관론자들의 말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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