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 "사고사망 80%가 영세사업장서 발생, 중처법 반드시 내년 시행해야"

지난해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기업계와 노동계의 '뜨거운 감자'로 지목되며 꾸준히 화두에 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처법 적용 유예를 놓고 양 업계간 찬반 논란이 뜨거워지는 모양새다. 기업계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현장 안전관리를 위한 물적·인적 인프라가 열악한 만큼, 관련법 적용 전까지 추가 유예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 사례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라며 중소 사업장에 대해서도 조속히 중처법을 적용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이에 <뉴스캔>은 논란이 끊이지 않는 중처법 확대 적용에 대한 두 업계의 논리를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일러스트=이하나 기자]
 [일러스트=이하나 기자]

[뉴스캔=박진용 기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처법 확대 적용이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월 27일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다만 정치권을 비롯해 기업·노동계에선 여전히 관련법 확대 적용을 놓고 진통이 적잖은 실정이다. 기업계의 '중처법 유예론'과 노동계의 '중처법 강행론'이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갑론을박도 치열하다. 현재 당정은 건설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 중처법 확대 시행을 추가로 유예할 필요가 있다는 기조를 내비치고 있으나, 야당은 원안대로 내년 1월 시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5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언급하며 중처법 유예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당도 대통령실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처법 적용 시기를 현행에서 2년 더 유예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중처법 유예에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해당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중처법 추가 유예 담론이 '친기업'이냐 '반기업'이냐를 규정하는 진영논리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면서도 산업 안전사고의 근본적 예방과 기업체의 실정을 두루 고려한 실효적 행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양론이 첨예한 만큼 절충안을 찾긴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 중처법은 현재 50인 이상 기업에만 적용되고 있다. 다만 내년 1월부터는 5인~49인 사업장에도 관련법이 적용될 예정이다. 건설업의 경우 기존 공사금 기준 50억 원 규모 이상만 적용됐던 것이 사업 규모와 무관하게 전면 적용되는 것으로 바뀐다. 

산업재해보상 승인 통계 등에 따르면 현재 5∼49인 사업장은 전체의 42.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전체의 50.5%가 5∼49인 규모의 사업체다. 중처법 확대 적용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이 적잖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 노동계 "중처법 시행 유예는 곧 노동자 죽음 방치"


민주노총 인사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생명안전 개악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제공]
민주노총 인사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생명안전 개악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제공]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 유관부처는 최근 중처법 유예에 대해 유보적 스탠스를 내비치고 있다. 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중처법 추가 유예 여부와 관련해 "고민 중"이라고 답했고, 중기부 이영 장관의 경우 사실상 중처법 유예에 맞장구를 친 상황이다.

중처법 확대 적용까지 불과 세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기업계가 정부와 국회를 향한 요구 수위를 높이자, 정부도 이를 의식해 점차 유예 찬성론에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여기엔 현 정부의 정점인 용산 대통령실의 의중도 상당부분 반영됐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노동계는 정부의 이같은 기류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처법 추가 유예를 사실상 '중처법 무력화'에 준하는 조치로 규정하며 이는 중소 규모 사업장이 중대재해 발생의 온상이라는 점에서, 관련법 2차 유예는 곧 노동자들의 죽음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노동계의 양대 축을 이루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반대 진영의 선봉에 섰다.

우선 한국노총은 최근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법 현장적용 및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고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가 전체 산재의 80%에 달하고 있다"며 "중대법 시행을 유예하는 것은 사실상 노동자의 죽음을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아울러 "50인 미만 사업장은 영세하다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상 각종 규제에서도 제외된 채 수십 년간 방치됐다"며 "내년부터 반드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노총의 서강훈 산업안전보건본부 선임차장도 "50인 미만 사업장은 이미 법이 공포되고 3년간 유예기간을 가졌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사안을 (사업장) 사람 수로 차등하는 것은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체 사망사고 희생자 289명 중 62%에 해당하는 179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지난해에는 연간 사고사망자 874명의 81%(707명)가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인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지난 2020년부터 연간 사고사망자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가 차지한 비중은 매년 80%를 상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노총 역시 정부의 중처법 유예 조짐이 보이자 공식 입장문 등을 통해 "중대재해 80%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연기는 중대재해처벌법 전체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시 해당 사업장의 작업을 전면 중지토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일러스트=프리픽]
 중대재해 발생시 해당 사업장의 작업을 전면 중지토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일러스트=프리픽 제공]

민노총 고위 관계자는 4일 <뉴스캔>과의 통화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은 사업여건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각종 산업안전보건법 규제망에서도 면죄부가 적용되고 있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마저 재차 유예된다면 노동자들의 인권과 안전 보장은 요원해진다. 반드시 내년에는 원안대로 관련법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아울러 여당인 국민의힘이 발의한 '50인 미만 사업장 추가 유예 법안' 폐기를 골자로 '10만 서명운동'까지 전개 중이다.

노동계는 또 전임 정부에서 중처법 제정을 주도한 민주당을 향해서도 압도적 다수당인 만큼 반드시 내년 1월 중처법이 확대 시행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거듭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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