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절충안 제시했으나 민주당 반대로 결국 25일 본회의 처리 불발
기업계, 중처법 유예 불발에 "이대로 영세업체들 폐업하라는건가"

 [일러스트=이하나 기자]
중처법 유예안의 25일 국회 본회의 처리 무산으로 결국 중처법이 전면 시행될 전망이다. [일러스트=이하나 기자]

[뉴스캔=박진용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2년 유예안이 국회 본회의 처리 불발로 끝내 무산됐다. 이로써 시행일인 27일부로 5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장의 중처법 확대 적용이 불가피해지면서, 중소규모 사업장의 혼선도 깊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국회와 정치권에 따르면 25일 국회 본회의 상정 가능성이 거론됐던 중처법 유예법안이 결국 여야 합의 불발로 무산됐다. 이날 본회의가 중처법 확대 시행 전 유예안을 처리할 수 있었던 데드라인이었던 만큼, 사실상 관련법 유예 가능성이 닫힌 셈이다.

물론 26일 추가 본회의 소집 가능성도 거론되나 국회법상 3일 전에는 소집 공고를 내야 하기 때문에 이 또한 현실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선 여당인 국민의힘이 중처법 유예안 폐기 후 유예 기간을 재설정한 재발의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4월 총선까지 남은 시일을 감안하면 이마저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게 중평이다. 

아울러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관련부처 시행령으로 중처법 계도기간을 둔다는 차선책을 제시한 상황이지만, 이 또한 사고 발생 시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어 실효성을 가져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 중소기업계 생존 걸린 중처법, 여야 정치논리에 '도루묵'


이는 총선이라는 정치권 최대 이벤트를 앞두고 여야 간 이해관계가 엇갈린 데 따른 결과라는 풀이가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기업계의 고충을 적극 수렴해 중처법 유예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적극 설득해 왔다. 앞서 전날(24일) 여야 원내지도부 회동에서 국민의힘은 30인 미만의 초영세 사업장에 대해서라도 1년의 유예기간을 줘야 한다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 앞서 민주당이 제시한 산업안전보건청 도입, 2조원의 산업재해 예방 예산 책정 등에 대해서도 여야 평행선이 지속됐다. 민주당은 당정이 이를 전면 수용하길 원했으나, 국민의힘은 세수 부족을 우려한 현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상 안전청 설립과 재해예방 예산 추가 투입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양측은 본회의가 예정된 이날까지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끝내 협상이 결렬됐다.

유예안 처리의 최종 분수령인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50인 미만 사업장에 모래부터 대기업과 같은 기준으로 중대재해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소상공인과 고용된 서민들에게 결과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법 적용을 2년간 유예할 것을 다시 한번 더불어민주당에 강력히 요청드린다”고 거듭 촉구했다.

그러나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늘 법안은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에서 제가 이야기한 조건에 대해 어떤 것도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년간 준비되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도 없었고 앞으로 유예를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으로 할지도 물었지만 가져온 것이 없었다”며 “정부는 (대안을) 가져왔다지만 기존 정부안의 재탕, 삼탕에 불과했다”고 깎아내렸다.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이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 연장 촉구 기자간담회에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이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 연장 촉구 기자간담회에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제공]

또 그는 “(정부는) 제가 지난해 11월23일부터 산업안전보건청이 핵심이라고 말해 왔음에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며 “법 시행으로 현장의 혼란이 있다면 그 책임은 최소한의 안전판을 만들어 달라는 민주당의 요구를 걷어찬 정부·여당이 져야 한다”고 책임 소재를 돌렸다.

결국 이번 중처법 유예 무산으로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은 표심에 매몰된 형식적 협상에만 골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중소기업계의 실태와 중처법 강행에 따른 업계 혼란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정치권 입법기능에 대한 회의감도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나아가 중처법이 시행된 2022년부터 논란이 지속됐음에도 이에 대한 고찰이나 심도깊은 사전논의를 거치지 않고 선거 전 법정시한에 맞닥뜨려서야 졸속으로 협상에 나서는 정치권의 고질적 병폐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들끓는다.


◆ 중소기업계 "이대로 영세업체들은 문 닫으라는거냐" 반발


그간 중소기업계는 중대재해 발생 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중형을 받게 될 시 폐업에 준하는 위기사태를 맞을 수 있으며, 적어도 관련법 시행에 앞서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 왔다. 실제로 중소기업의 중처법 대비가 미진한 상황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중소업체의 87%가 중처법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중처법 유예가 무산되자 중소기업계에선 지탄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서울의 한 소규모 전문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뉴스캔>과의 통화에서 "이대로 영세규모 사업자들은 다 문을 닫으라는 거냐"라며 "정치하는 사람들이 건설현장 실태를 한 번이라도 들여다봤다면 이런 상황은 있을 수 없다.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현장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는 발상부터가 말이 안 된다. 탁상정치"라고 꼬집었다.

기업계 한 관계자도 "경기불황이 깊은 상황에서 재정이 열악한 중소규모 업체들은 안전관리 인력이나 인프라를 구축하기 쉽지 않다"며 "산업현장의 재해를 줄이는 게 목표라면 애시당초 안전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우선이지, 처벌만 강화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끝내 중대재해법이 확대 시행되면 준비도 안 된 영세업체들은 고사될 게 뻔하다"고 탄식했다.

한편, 지난 2022년 처음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현재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다. 사업장 내 사망 또는 부상 발생 시 기업 오너와 관리자급을 포함해 회사까지 징역 1년 이하, 벌금 10억 원 이하의 처벌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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