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홈페이지 화면 캡처)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홈페이지 화면 캡처)

당신이 드라마 제작사 대표라고 가정하자. 다음 중 반드시 1개를 골라야 한다. 2가지 조건을 읽어보고 선택해야 한다.

첫째, 저작권을 포기하는 대신 드라마 제작비용과 10% 수익을 보장받는다. 흥행하든 손해를 보든 추가 수익 지급이 없고 남은 비용에 대한 반납도 없다. 단, 목표보다 흥행하면 다음 시즌 드라마나 새로운 드라마를 같거나 더 나은 조건으로 제작할 수 있다.

둘째, 드라마의 모든 저작권을 제작사가 갖는다. 단, 모든 제작비용은 알아서 부담한다.

코로나, 천재지변 등으로 제작비가 갑자기 상승하거나 중단되더라도 알아서 감당해야한다. 투자를 받든지 빚을 내든지 알아서 정리한다. 단, 완성 후 이 드라마를 구매하거나 방영하는 곳이 있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방송사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회사는 검토 후 방영권을 구매할 수도 있다.

추후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알아서(?) 해야 한다. 극단적인 비교 상황이다. 그럼에도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고를 것인가?

드라마 제작자들은 대부분 1번을 고를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용회수와 안정적인 수익원 확보 때문이다. 

드라마 방송이나 OTT용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 기획단계부터 큰 비용이 들어간다.

기존 창작물인 소설, 웹툰 등을 바탕으로 원작계약을 하는데도 수천만원은 족히 든다. 아니면 처음부터 새로운 소재를 발굴해야 한다.

원작이든 새로운 내용이든 어떤 작가와 계약하느냐 따라 상당한 비용차이가 난다. 이어서 시놉시스와 대본이 나올 때쯤 연출자와 주연배우 계약도 할 수 있다. 계약순서와 관계없이 수억 원의 지출은 기본이다. 이런 상황에서 2백억 원 내외의 제작비를 회수하고 안정적인 수익금이 일부라도 보장된다면 얼마나 안전한가? 저작권이 없어도 큰 문제가 안 된다면 당연히 1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방송사가 전체 비용을 감당했다. 기획과정에서 방송사나 OTT 서비스사와 편성계약을 하면 가문의 영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방송사에 편성잡고 방영권 판매하면 그나마 숨통 트일 정도다. 이것도 방송사의 드라마 맛집 취향에 맞아야 가능한 일이다.

방송사도 예전 같지 않아서 갈수록 비용지출이 줄어들고 있다. 결국 제작사가 제작비 증가에 대해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 이런 모든 위험을 진다고 어느 누구로부터 일정 수익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그래서 제작사는 모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협찬, 유통계약, 해외판매와 2차적 저작물 관련 비즈니스 등의 영업은 기본이다. 문제는 기존 거래처가 있더라도 무조건 원하는 조건으로 계약하고 수익보장해주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아래 뉴스 제목을 보자.

“수익성 ‘뚝뚝’--빛이 보이지 않는다”(매거진 한경,2009,10.26),
​“추노가 뛸 때 ‘외주’는 울었다”(중앙일보,2010.3.31)

이 뉴스는 13년 전에 나온 뉴스다. 드라마 제작사들과 방송사의 저작권 갈등과 경영실패를 다룬 뉴스들이다.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든 드라마 제작사들은 당시 매우 어려운 경영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위의 2가지를 선택하라면 어떤 것을 결정하겠는가?

큰 고민 없이 1번을 선택할 것이다. 특히 망한(?) 경험이 있는 제작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1번을 고를 가능성이 높다. 

망할 걱정 안하고 제작에만 충실하면 되니 말이다. 제작과정 중에 누가 다치거나 다른 문제만 없으면 된다. 1번과 같은 상황처럼 비용 걱정 안하고 마음 편하게 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위 사례에서 1번을 선택한 드라마 제작사는 저작권보다 실질적인 이익을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그래서 ‘오징어게임’과 같은 드라마도 저작권을 포기하고 제작이 된 것이다. 

처음부터 일정 수익이 보장된다면 방송사와 OTT회사 중 어디와 계약해도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수익이 확실히 보장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의 저작권 걱정은 나중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1번처럼 조건을 만족해줄 수 있는 곳이 흔하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해외 OTT사들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흥행성공 대가로 나중에 일부 수익을 추가로 받긴 했지만 대부분의 계약은 그렇지 못했다. 모든 비용을 보전 받는 대신, 저작권(저작재산권)을 전부 넘기는 계약이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 흥행 이후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 해외 유명 OTT사들이 저작권을 독식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제작사들이 글로벌 OTT사들의 공장 역할만 하고 있다며 걱정하기도 한다. 넷플릭스가 저작권을 다 가져가는 계약을 처음 서명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국내방송사와 일하는 드라마 제작사들과 다큐, 교양 외주제작사들은 이와 똑같은 계약을 몇 십 년째 했다. 넷플릭스가 저작권을 전부 가진다해도 크게 반항(?)하지 못했던 것은 이미 능숙한(?)계약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제작사들과 관계자들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넷플릭스 등의 저작권 이슈를 불과 몇 년 전에도 당연한 것처럼 충분히 접하고 있었다.

한 때 저작권을 확보하면서 독자적인 비즈니스를 위해 무리하게 사업하다 망한 드라마 제작사들이 있었다. 반대로 저작권을 포기하는 대신 안정적으로 일하며 적게 벌어도 오래가는 드라마 제작사들이 있었다.

지금의 한국 드라마, 영화 제작사들은 이 회사들의 경영노트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넷플릭스 뿐 아니라 월트디즈니, 애플, 아마존 등이 엄청난 투자금을 내세워 세계 콘텐츠 시장을 키우고 있다. 국내 방송사들과의 저작권 전투(?)에서 패한 제작사가 거대자본을 가진 해외 OTT회사들에 먼저 노크하는 시대가 되었다.

저작권이 없어도 괜찮으니 제발 우리 기획안을 검토해 달라고 노크하는 회사가 많다고 한다. 제작사가 저작권을 포기하더라도 자본이 풍부한 해외 OTT사들을 가장 먼저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제작사들은 투자금의 국적이 중요하다고 안 볼 것이다. 자신이 기획하는 작품이 제작되고 전 세계인들이 많이 볼 수 있다면 국내 방송사, 투자사에 전적으로 의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적이 없는 자본을 받아서 제작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제작사들은 이미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드라마 제작사가 스스로 저작권을 갖고 세계를 향해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모든 콘텐츠, 문화예술 분야에서 한류는 뜨겁게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을 노크하고 있다. OTT 회사들도 우리 제작사들의 문을 먼저 노크할 때가 곧 오리라 본다. 옛정을 생각해서 너무 문열어줄 말지 고민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광수 칼럼리스트(저작권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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