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시공능력평가제 안전·시공품질 기준 강화 골자로 대수술
중처법 유죄 판결 시 기존실적 10% 배제…하자도 대폭 감점 요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인천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등 안전사고와 부실시공을 방지하기 위해 '동영상 기록관리(블랙박스)'를 본격 시행한다고 4일 밝혔다. [사진=서울주택도시공사 제공]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인천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등 안전사고와 부실시공을 방지하기 위해 '동영상 기록관리(블랙박스)'를 본격 시행한다고 4일 밝혔다. [사진=서울주택도시공사 제공] 

[뉴스캔=박진용 기자] 국토교통부(국토부)가 건설사에 대한 시공능력평가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현행 시공능력평가제는 인천 검단 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한국주택토지공사(LH) '순살 아파트' 논란 등을 계기로 9년 만에 시공 안전·품질 강화에 방점을 둔 대개편을 맞았다.

국토부는 최근 부실시공 및 감리 공백 등으로 논란이 잇따른 국내 건설업계의 시공품질 및 안전관리 강화, 불행행위 근절 등을 취지로 한 시공능력평가제(시공평가제) 개편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11일 시공평가제 개선을 위한 '건설산업기본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

정부의 이번 시공평가제 개편안에는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유죄 판결을 받은 건설사에 대해선 기존 시공실적의 10%를 빼고 시공능력을 평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시공 하자에 대해서도 더욱 엄격한 평가 잣대가 적용될 전망이다. 

국토부가 이렇듯 시공품질 강화에 대한 강경 기조를 내건 만큼, 국내 건설업계에도 경종이 울릴 전망이다. 건설사들에겐 한 해 성적표와 같은 시공능력평가 점수와 순위가 시공 수주와 직결되는 만큼, 정부의 이번 평가기준 대수술 방침에 국내 건설업계도 바짝 긴장하는 모양새다.    

시공평가제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공사 발주자가 시공을 담당할 건설사를 선택함에 있어 그간의 시공실적과 재무현황, 기술력, 브랜드 인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평가제다. 이와 함께 발주자가 시공평가서를 참고해 특정 건설업체 대한 입찰 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

이처럼 시공평가는 건설사 순위는 물론, 세부 점수와 평가사유 등이 낱낱이 공개되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대규모 공사 수주전에 나설 경우 핵심 지표가 된다. 시공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업체는 한 해 공사 수주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게 되는 만큼, 경영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토부는 매년 7월 해당 평가기준에 따라 건설사별로 점수를 매겨 순위를 책정하고 있다. 올해 시공평가 우수 기업은 삼성물산(1위), 현대건설(2위), 대우건설(3위) 등이다. 


◆ 시공평가제, 어떻게 바뀌나


국토부가 9년 만에 시공품질평가제를 대폭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이미지는 국토부의 시공평가제 개편안에 담긴 세부기준. [자료=국토교통부]
국토부가 9년 만에 시공품질평가제를 대폭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이미지는 국토부의 시공평가제 개편안에 담긴 세부기준. [자료=국토교통부 제공]

국토부의 이번 시공평가제 개편안을 살펴보면 최근 건설현장 안전사고로 인한 경각심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기업 '신인도 평가' 비중이 대폭 상향됐다. 시공 안전관리와 ESG 경영에 충실한 건설사와 그렇지 못한 건설사 간 초격차를 두겠다는 것이다. 

신인도 평가의 경우 하자보수 시정명령을 받은 건설사는 공사실적총액의 4%가 감점되고, 중처법 유죄 판결 시 기존 공사실적총액의 10%가 감정된다. 이와 함께 소음·진동관리법, 폐기물관리법 등 환경법을 위반한 건설사는 공사실적액의 4%가 감점된다.

또한 건설현장 산업재해로 인한 근로자 사망 건수가 해외 주요국에 비해 높은 만큼, 사망사고만인율(사망자 수)에 따라 적게는 5%에서 최대 9%까지 감점을 적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기존에는 사망사고만인율에 따라 3~5%의 감점이 적용됐다. 

공사대금 체불의 경우도 기존에는 '2회 이상' 체불 이력이 있는 건설사에 공사실적액의 30%에 해당하는 감점이 적용됐으나, 향후 1회의 체불 이력만 있더라도 4%가 감점되고 2회 체불 시 30% 감점이 즉시 적용된다. 회생·워크아웃 절차를 밟고 있는 건설업체에 대한 감점 페널티도 현행 5%에서 30%로 대폭 강화했다.  

부실 벌점 부문도 '철퇴 감점'이 적용된다. 부실 벌점을 받은 건설사의 경우 현행 1~3%의 감점이 적용됐으나, 벌점 구간 세분화로 최대 9%까지 감점을 받게 되고 벌점을 1점만 받더라도 마이너스 평가로 이어진다.     

아울러 발주처의 신임도와 평판도 중요해졌다. 발주처가 특정 건설사의 시공·안전관리를 우수하다고 평가할 경우 2~4%의 가점이 부여되는 반면, 평가가 좋지 않으면 동률(2~4%)의 감점이 적용된다.   

영업정지나 과징금 처분이 이뤄진 업체에 대해서도 기준이 더욱 엄격해졌다. 해당 처분 이력이 있는 건설사는 공사실적액의 2%에 영업정지 개월수를 곱한 만큼 감점된다. 가령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로 영업정지 10개월 처분이 유력시되는 GS건설의 경우 총 20%의 감점에 더해 부실벌점 부과에 따른 추가 감점까지 받게 된다. 올해 시공평가 순위 5위 기업인 GS건설은 이번 제도 개편으로 내년 평가에서 순위 추락이 사실상 불가피한 상황이다.

반면 건설신기술 업체로 선정된 건설사에 대한 가산점도 높아졌다. 기존에는 신기술 업체는 2%의 가산점이 주어졌으나, 이번 개편으로 가점 최대치가 4%로 상향됐다.  

국토부의 이번 시공평가제 개편으로 건설사들은 공사 실적뿐만 아니라, 기업 신뢰도나 평판 관리에도 각별한 공을 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인도 기준이 강화됨에 따라 그간 경영평가나 공사실적에만 치중했던 건설사들이 예년과 달리 산업재해 예방과 시공품질 제고에도 품을 들일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다만 신인도 평가 비중이 여전히 전체 평점의 10% 미만이라는 점에서 건설업계의 획기적 체질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일각의 우려도 엄존한다. 

이에 국토부는 중처법 유죄 판결이나 영업정지 등으로 10% 이상 감점이 적용된 건설사는 시공평가 순위가 3~4위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현행 시공평가는 경영평가 40.4%, 공사실적 36.3%, 기술평가 16.3%, 신인도 7.0% 등의 비중으로 이뤄지는 반면, 개정 평가제가 도입되면 공사실적 비중은 2.5%포인트 늘고 경영평가 비중은 3.7%포인트 줄게 된다.  

다만 국토부는 시공평가 항목별 비중에 대한 건설업계의 조정 요구를 수렴해 경영평가액 가중치는 유지하면서도 공사실적에 반영되는 상하한은 현행 3배에서 2.5배로 하향 조정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경영평가액 비중 하향에 따라 시공평가 50위권 내 기업 중 일부는 순위가 3~4단계 하락하는 기업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경영평가는 통상 기업의 재무재표와 브랜드가치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는 만큼, 변수가 아닌 상수에 가까운 평가잣대로 분류돼 왔다. 

한편, 국토부의 이번 개편안은 내년도 평가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18일 <뉴스캔>과의 통화에서 "기업 신인도 평가 세부항목에서 불법하도급 등 신설 규정이 생겼고, 감점 퍼센테이지가 커진 만큼 내년부터 건설사들이 부실시공이나 안전사고 예방에 대한 자체 관리감독 노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신인도 평가 비중을 대폭 상향하는 것은 업계 실정이라든지 여러 사항들을 심도있게 살펴봐야 할 문제라서 업계에 대한 유예 조치 차원에서라도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뉴스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