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위반 혐의' 檢 송치 82%, '위험성 평가 소홀' 사례
위험성평가, 단순 '서류절차'로 전락...실효성 제로 지적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 6개월이 지난 가운데 사업주들이 법적 기소된 최대 사유가 '위험성 평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프리픽 제공]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 6개월이 지난 가운데 사업주들이 법적 기소된 최대 사유가 '위험성 평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프리픽 제공]

[뉴스캔=박진용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 6개월가량 지났다. 중처법 시행으로 기업들은 산업재해 발생 시 법적 처벌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상황이다. 최근 사업주들이 산업현장 내 안전사고 발생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되며 실형을 선고받는 등 처벌 수위가 강력해졌기 때문.

이런 가운데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들이 법적 기소된 최대 사유가 '위험성 평가 소홀'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사업현장의 위험요인을 미리 파악하고 이에 조치하는 위험성 평가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는 중처법에 따라 강도 높은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공개한 '중대재해처벌법 주요 기소·선고 사례 분석 및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노동부가 '기소의견'으로 검찰 송치한 34건의 사건 중 위험성 평가 및 필요한 사전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한 중처법(시행령 제4조 3호)을 위반한 혐의가 무려 82.4%에 해당하는 28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뒤이어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 대한 평가 위반 20건(58.8%) ▲비상대응매뉴얼 마련 및 점검 위반 17건(50.0%) ▲안전보건 예산편성 위반 15건(44.1%) 등이 주요 기소 사유로 꼽혔다.

이는 법조계가 중대재해에 대한 혐의점을 판단함에 있어 위험성 평가를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울러 위험성 평가에 대한 기업계의 피상적 인식이 만연해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상공회의소는 중대재해 관련 기소사건들을 전면 분석한 결과, 수사 과정에서 위험성 평가 시행 여부가 범죄성립을 판단하는 핵심 잣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에서도 중처법 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에 대한 판결 근거로 위험성 평가 등 사전조치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가장 많이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기관이 지목한 중점 수사항목은 사고발생 작업에 대한 위험성 평가 여부를 포함해 ▲유해 위험요인 파악절차 마련 유무 ▲경영책임자에 의한 점검 및 필요조치 적정성 등으로, 이는 모두 위험성 평가와 사실상 유기적인 개념으로 봐야 한다.

이에 상공회의소는 보고서를 통해 "기업들은 필수적으로 위험성 평가 절차를 사전에 구비하고 위험성 평가가 누락되는 작업이 없도록 주기적으로 점검하며 관련 기록도 철저히 보존해 혹시 모를 수사에 대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위험성 평가 '거추장스러운 서류절차'로 전락...실효성 복구 시급 


위험성 평가는 노조가 공동 참여해 사업장 내 각종 기계설비 및 공구 등 작업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들을 사전에 색출해 자체적으로 개선방안을 마련토록 한 자율안전관리 제도다.

관련법상 시행 주체는 사업주이며, 모든 사업장은 매년 이같은 위험성 평가를 정기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만약 설비 등 사업장 환경이 바뀌거나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수시평가도 하도록 돼 있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노사가 합심해 안전상의 문제점을 지속 발굴하고 개선토록 한 것이 기본 취지다.

다만 해당 제도의 사각지대도 엄존한다는 지적이다. 위험성 평가는 노사 협업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사업체에 따라 노사 관계가 일방적이거나 원만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야말로 단순 '페이퍼 작업'에 그칠 수 있다.

건설사 등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위험성 평가제는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사실상 관리자 중심의 형식적 서류절차로 방치되고 있다는 평가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공유마당(EBS), 뉴스캔 DB]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공유마당(EBS), 뉴스캔 DB]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뉴스캔>과의 취재에서 "위험성 평가라는 게 일선 노동자들 사이에선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라며 "흔히 고용주들이 서류적으로 하는 '숙제' 정도로 여기지는 실정이다. 일부 현장에서는 작업자들이 사고 위험성이 있는 작업물이나 설비와 같은 위험요소를 (작업)관리소에 보고해도 무시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제시하며 위험성평가를 중대재해 예방·재발방지 핵심수단으로 확립하는 한편,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기존 300인 이상 기업에서 5인 이상 기업으로 위험성평가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따라서 위험성 평가는 내년부터 5인 이상 기업에도 개정법이 적용될 전망이다. 다만 중소기업의 경우 위험성 평가를 위한 제반 인프라를 갖추기까지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만큼 정부 차원의 유예 조치나 재정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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