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시행 후 中企·소상공인 고통 호소 잇따라
중기중앙회, 청구인단 모집 후 내달 헌재에 중처법 헌법소원 청구서 제출
전문가 "중처법 시행 후 예방지도보다 처벌에 집중해 온 경향 더 심화 돼"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시행되면서 여전히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러스트=이하나 기자]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시행되면서 여전히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러스트=이하나 기자]

[뉴스캔=박진용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유예를 골자로 한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무산된 이후 한 달을 훌쩍 넘긴 시점에도 중소기업계를 중심으로 중처법 개정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직원 안전교육, 안전관리자 채용 등에 필요한 재정 여건이 받쳐주지 않아 불의의 사고나 그에 따른 처벌로 인해 사업 존폐 위기에 취약한 상황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또한 중처법은 사고 예방보다 '처벌 만능주의'에 무게중심이 쏠려있어 산업 생태계의 현실 반영이 제대로 되지 않은 법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중기중앙회 "'처벌 중심' 중처법, 위헌 소지 다분...법 개정 물꼬 틀 것"


이에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는 중처법 유예 개정안 국회 처리 무산에 대한 후속 대책으로 헌법소원심판청구 카드를 꺼내들었다. 헌법재판소를 거쳐 관련법의 위헌 여부를 가려내 중처법 시행에 따른 위기국면 타개를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1월27일부터 50인 미만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청구인단을 모으는 한편, 오는 4월1일에 헌법소원 청구서를 헌재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중기중앙회는 지난 11~18일 동안 회원사 등을 대상으로 헌법소원 참여를 독려하고 나섰다. 22일까지 헌법소원 청구인단 모집을 완료하고, 그에 따른 청구서를 작성해 내달 1일 제출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는 것이 중기중앙회 측 설명이다. 헌법소원은 공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됐거나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기각된 경우 청구가 가능하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21일 본지에 "현재 본회 요청에 응한 헌법소원 청구인단은 예상 규모를 훌쩍 뛰어 넘은 상황"이라며 "다만 청구인단 요건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국한되기 때문에 동참 의지를 보인 일부 업체들은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단에 포함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처법의 경우 영세 업체들이나 소상공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처벌 수위와 예방을 위한 제반여건에 대한 지원도 전무하다"라며 "무엇보다 중처법에 저촉되는 사안들에 대한 세부규정이 모호해서 형법주의 명확성, 과잉금지, 평등과 같은 헌법상 대원칙에 위배된다는 업계 의견이 일맥상통한 상황"이라고 헌법소원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또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이번 헌법소원을 통해 현행 중처법의 위헌이 인정되면 법 개정 추진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중처법 시행에 따른 우려를 성토하고 있는 중소기업들과 소상공인들의 청구인단 참여가 빗발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번 헌법소원에는 건설업계의 참여도가 높은 상황이다. 청구인단 요건에 해당하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영세 건설사의 경우 중처법 시행 후 몸값이 치솟은 안전관리 전문가 채용에 부담이 막중한 실정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22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개최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중처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제공]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22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개최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중처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제공]

경기권의 한 중소 종합건설업체 대표는 이날 <뉴스캔>과의 통화에서 "가뜩이나 일감도 없어서 현상유지도 벅찬 상황인데, (중처)법 시행 이후 채용이 필수화된 안전관리자를 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고용비 지출도 만만찮다"며 "전문 자격증을 보유한 안전관리자 한 명을 고용하려면 지금은 연봉 6000~7000만 원대까지도 봐야 한다. 건설경기도 안 좋아서 공사비, 인건비 현상유지도 힘든데 다짜고짜 법만 시행한다고 해서 사고 예방이 가능하겠나"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서울의 한 건설업체 관계자도 "단순히 규제가 불편한 차원이 아니다. 이 것(중처법 개정)은 생존의 문제"라며 "사고예방에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인력도 부족한데 현실적으로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현장사고를 모두 들여다 볼 수는 없지 않나. 적어도 산업재해를 방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시간을 주거나 지원이 있는 가운데 법을 시행해야지 이건 너무 가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전문가도 "중처법, 사고예방 지도보다 처벌에 과편중"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중처법이 사고예방에 대한 심층적 접근이 아니라 처벌에만 치중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중처법 세부조항에서 법적 유권해석이 모호한 데다, 그에 따른 수사기관의 자의적 법 집행이 이뤄질 수 있음을 우려하는 의견도 개진됐다.  

지난해 말 중대재해예방 산업안전법제포럼에서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중처법 쟁점과 개선방향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자리에서 "중처법 시행 이후 예방지도보다 처벌에 집중해 온 경향이 훨씬 더 심화되고 있다"며 "모호한 법과 취약한 산재예방 인프라 속에서 중소기업들이 기소와 처벌의 타깃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처법 위반으로 중소기업에 처벌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검찰로부터 기소된 28건(급성중독 1건, 사망 27건) 중 엄밀한 의미의 대기업은 1곳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중소업체"라고 부연했다.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사고예방을 위한 매뉴얼 구축 등 선제 조치에 방점을 둬야 하는 것이지,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취지로 읽힌다.  

또 정 교수는 산업재해에 대한 수사·법조 기관의 전문성 결여도 문제로 꼽았다. 

정 교수는 중처법 기소 첫 대상인 두성산업 측에서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이 기각된 사례를 소개하며 "재판부 판결문을 보면, 산업현장에서의 안전 문제에 관한 전문성이 상당히 결여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실질적인 쟁점에 관한 법원의 심리와 판단의 부재로 기업들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며 "중처법 기소 및 처벌의 주된 대상이 현재는 중소기업에 집중되고 있지만, (중처법이 확대 시행되는 지난 1월부터) 영세기업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1월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개최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전국 중소기업인 결의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제공]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1월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개최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전국 중소기업인 결의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이어 "산업재해 사건의 경우 수사기관과 재판부 모두 전문성이 부족해 피고인 측에서 준비를 잘 하지 않으면 법리에 맞지 않은 판단이 내려질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또 "전문성이 결여된 판결이 이어지고 있지만, 중소업체의 경우 전문성을 갖춘 법률대리인을 선임하기 어려워 사법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며 "애초 (중처법이) 대기업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고자 한 취지였음에도 법 시행 전에도 이미 처벌돼 온 중소업체 경영책임자 처벌에 쏠려 있는 이유"라고 거듭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처법 시행 후 판례를 들며 "지금까지의 중처법 판결은 중처법이 낳고 있는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중소·영세기업이 사법 리스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처법 위반의 빌미를 잡히지 않도록 중처법상의 안전보건확보의무(13개 사항)를 가급적 넓은 의미로 이해하고, 서류를 면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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