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규제" 의료계 직무자유 및 태아 가족 알권리 침해 헌재 소원 잇따라
헌재 "태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부모로서 누려야 할 권리"

 [일러스트=배모니카 기자]
  '태아 성감별 금지법'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따라 전면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임신 기간과 무관하게 태아 성별을 알 수 있게 됐다.   [일러스트=배모니카 기자]

[뉴스캔=박진용 기자] 임신 32주 전까지 의료인이 부모에게 태아의 성별을 고지하는 행위를 금지했던 '태아 성감별 금지법'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전면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관련 조항이 무효화됨에 따라 임신 기간과 무관하게 태아 성별을 알 수 있게 됐다.  

지난달 28일 헌재는 태아의 성별 고지를 금지했던 의료법 제20조 2항에 대해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관 9명 중 6명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결과다.

기존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는 태아의 성별을 임산부나 그 가족에게 알려줄 수 없었다. 해당 조항은 남아선호사상 문화로 인해 태아 성별이 여자일 경우 낙태를 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지난 1987년 도입된 바 있다.

하지만 태아 성별에 대한 감별 수요가 지속되면서, 일부 의료인들이 성별 감별로 행정처분을 받는 사례도 끊이지 않았다. 또 임산부 등을 중심으로 태아 성별에 대한 '알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는 불만도 이어졌다. 이에 의료계를 중심으로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이 이번 헌재 위헌 판결에 이르렀다.

헌재 판결로 즉시 효력이 발동되는 만큼, 지난달 28일부로 임신 기간과 무관하게 태아에 대한 성별을 알 수 있게 됐다. 

태아 성감별 금지법을 위헌으로 판단한 6명의 재판관은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태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낙태 행위의 전 단계로 취급해 제한하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라며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로 태아의 성별을 비롯해 태아에 대한 모든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부모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라고 판시했다.

반면 해당 조항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 이종석·이은애·김형두 재판관은 "우리 사회에서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으므로 국가는 낙태로부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라며 "태아의 성별 고지를 앞당기는 것으로 개정함으로써 침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기존 32주의 감별 불가 기간을 줄여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앞서 헌재는 의료계의 헌법소원에 따라 지난 2008년 임신 기간 내내 성별 고지를 금한 관련법을 심의한 끝에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고, 그 이듬해 이같은 취지를 반영해 임신 32주 전까지 성별 고지를 금하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뒤 현행 의료 규제로 쭉 이어졌다.

다만 구시대적 유물인 남아선호 문화가 도태되고 저출산을 맞은 시점에 이같은 의료법 조항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잇따랐고, 이는 후속 헌법소원으로 이어졌다. 헌법소원 청구 측은 임신 기간 중 태아 성별 감별은 태아 부모의 알 권리와 행복추구권, 의료계의 직무상 자유 침해 등을 침해한다는 논리를 폈다.


◆논란의 태아 성별 감별, 쟁점 무엇이었나


그간 태아 성별 사전 감별은 숱한 쟁점을 낳았다. 이를 규정한 의료법 조항이 의료인의 직무상 자유와 태아 가족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 헌재 소원의 주된 논리로 작용했다.

특히 이같은 의료법이 시행되던 와중에도 남아선호 사상과 무관하게 태아 성별을 알고싶어 하는 부모들의 요구는 끊이지 않았던 터라, 의료인들이 범법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의료계를 중심으로 헌법 소원도 잇따랐다.

이에 헌재는 의료단체에 태아 성감별 금지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고, 의료계는 "남아선호 사상이 퇴색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법을 유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출생성비는 104.7명으로 여아 100명당 남아가 104.7명 태어났다는 의미로 점차 성비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남아선호 사상이 상대적으로 짙었던 1990년 출생성비 116.5명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남녀 성비 간극이 좁혀진 셈이다.

헌재가 32주 전 태아 성감별 금지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향후 의료법 관련조항이 무효화될 전망이다. [사진=프리픽 제공]

이와 관련, 과거 의사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2010년대 중반부터 자녀 성별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거의 없어지면서, 성감별 금지 조항은 실효성을 상실했다"며 "특히 32주 규제는 명확한 의학적 근거 없이 결정한 것으로 사료된다"고도 했다.

아울러 "개정 이후 14년이 지나면서 우리 사회환경이 급변해, 태아 성감별에 허용 가능 임신주수 논의가 무의미하다"며 "오히려 고위험 임신 증가로 유전질환이 늘어 의학적으로 태아 성감별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또 이들은 "성별 확인을 원하는 건 부모인데 이를 고지한 의사만 처벌하는 규정은 불합리하다"며 "임신 초기에 이뤄지는 낙태의 경우 태아 성감별이 불가능해 관계없다"고 설명했다. 

산부인과의사회도 "낙태죄가 폐지된 상황에서 그 사전행위인 태아 성감별 금지법의 존재는 모순"이라며 "시대 변화에 입법 목적이 상실되고 위법 여부가 모호하며 현재적 의의를 잃은 태아 성감별 금지법은 폐지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표명하며 의협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태아 성감별 규제는 풀렸는데, 시험관 아기는?


한편 이번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태아 성감별 논란이 종식기를 맞았지만, 시험관 아기 배아 과정에서도 착상 전 유전자 검사를 통해 태아의 성별을 감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점차 개진되고 있다. 

착상 전 유전자 검사를 통한 배아 성감별은 현재 금지돼 있다. 일반 태아의 경우 의료법의 규제를 받지만, 시험관 아기의 배아는 생명윤리법 2조 2항(특정의 성을 선택할 목적으로 난자와 정자를 선별하여 수정시키는 행위)에 따라 성감별이 규제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계를 중심으로 시험관 아기에 대해서도 성감별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질 전망이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6일 <뉴스캔>과의 통화에서 "시험관 아기의 경우 의료법과 별개로 생명윤리법에 따라 배아 성감별 규제가 적용되고 있어 이번 위헌 결정의 연장 선상에서 별도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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